[조성진의 가창신공] 윤일상, '범죄도시4' 음악이 나오기까지

조성진 기자 2024. 6. 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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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 벗어난 이례적 진행방식
마지막 씬 촬영 후 음악감독 영입
불과 2주 만에 모든 트랙 작곡
국내 영화음악 사상 최단 시간 완성
첫 작업과 막바지 때 가장 힘들어
록과 일렉트로닉의 콜라보
‘범죄도시’ 시리즈 메인 테마음악 탄생
선(형사)과 악(빌런) 캐릭터 음악도 시도
“마동석, 디테일 강한 배우”
“허명행 감독, 거침없는 직진파 스타일”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6일(목) 낮 12시30분 기준 마동석 주연 '범죄도시4' 누적관객수가 1149만5435명을 기록했다.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로, '범죄도시2' 누적관객수 1269만 흥행 기록 돌파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범죄도시'는 강윤성(시즌1), 이상용(시즌2~3), 허명행(시즌4) 등 감독이 바뀌는 가운데 한국영화 시리즈 최초로 누적관객수 4000만 명을 넘어섰다.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현재 상영 중인 '범죄도시' 시즌4는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을 움직이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 백창기(김무열 분)와 IT 천재 기업가 장동철(이동휘 분)을 소탕해나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범죄도시4'는 흥행 기록만큼 OST 제작과정 또한 흥미진진 그 자체다.

국내 정상의 작곡가 윤일상이 음악감독을 맡은 시즌4는 제작과정부터 개봉까지 모든 게 통념, 상식을 깨는 것이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선 윤일상 음악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도시4' OST가 나오기까지 관행을 벗어난 놀라운 스토리를 들어봤다.

음악감독은 영화의 특정 씬(장면) 마다 캐릭터의 감정이나 배경 등 작품이 요구하는 분위기, 지향성을 음악을 통해 각 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때문에 감독과 출연진 및 관계 스태프들과 긴밀하게 교류(공유)하며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 따라서 배우 캐스팅과 비슷한 시점에 섭외하거나 늦어도 촬영에 들어갈 때(크랭크인) 내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범죄도시4'는 이러한 관행과 너무 다르게 진행됐다. 마지막 씬 촬영 때까지도 음악감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2023년 3월의 어느 늦은 저녁, 윤일상 음악감독은 강윤성 감독, 장원석 대표(BA엔터테인먼트)와 자리를 함께했다. 장윤성 감독의 작품 시사회가 끝나고 회포를 풀던 일행은 '범죄도시 4' 마지막 촬영을 마친 스태프들의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이 자리엔 마동석, 이동휘 및 허명행 감독도 있었다.

윤일상 감독은 이전에 마동석과 통화는 하는 사이였지만 이날 회식에서 처음 만났다. 마동석 배우는 반갑게 맞이해주며 '범죄도시4' 비행기씬 영상을 윤일상에게 보여줬다. 윤일상 감독은 씬이 너무 좋아 음악감독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러자 마동석을 비롯해 자리에 있던 스태프들 모두 "윤일상 씨가 맡으셔야죠"라고 자연스럽게 답했다. 그리고 다음 달 4월 장원석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음악감독을 맡아달라"는. 이렇게 해서 '범죄도시 4'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런데 '범죄도시4'는 다음 달 5월 17일 1차 블라인드 시사회가 예정돼 있었다. '범죄도시3' 개봉(5월 31일) 전에 할 만큼 일정 전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것. 윤일상의 입장에선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감독을 맡은 지 불과 한 달 후 시사회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블라인드테스트 시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있는 거 대충 붙여서 씬에 삽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의 음악 인생에 결코 '대충'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윤일상은 여기에 올인하다시피 하며 잠을 자지 않고 무려 70곡을 썼다. 그리곤 영상과 대비해가며 그중 30여 곡을 선별해 트랙으로 완성했다.

블라인드 시사 전에 스태프들이 윤일상 작업실에 와서 이 트랙들을 들으며 모두 충격을 받았다. "이거 진짜 (한 달도 안 된 시간 동안에) 만든 게 맞나요?"라며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윤 감독에 의하면 정확하겐 '한 달'이 아니라 '2주' 동안 몰아치며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2주는 윤 감독에겐 '영혼을 갈며 작업' 하는 시간이었다. 한국 영화뿐 아니라 세계의 영화음악 사상 이렇게 짧은 시간에 OST를 완성한 전례를 찾긴 힘들다.

윤일상의 빠른 작곡 속도는 이미 업계에선 정평 높다.

"저는 제반 음악작업을 혼자 하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설적이지만."

관행을 벗어난 두 번째는 진행순서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먼저 파악해야 하므로 책(대본)을 먼저 주고 영상(촬영본)은 그 다음에 받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범죄도시4'는 음악감독에게 영상이 먼저 왔고 대본은 그 다음에 왔다. 순서가 거꾸로 된 방식이었던 것.

이처럼 통상적인 영화음악 제작 절차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음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게 완성됐다.

"첫 편집본엔 다소 긴 분량의 감정 씬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죽고 엄마가 슬퍼하는 씬이 길었고, 마형사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며 주인집 아줌마와 대화하는 등의 감정 씬이었죠. 따라서 이러한 감정에 맞게 음악도 삽입했는데, '범죄도시4' 시사회 관객들은 이러한 감정 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부분 평점도 좋지 않았고. 그래서 이런 씬들을 다 삭제시켜 버렸습니다."

"'범죄도시4'는 블라인드 시사회를 3번이나 했습니다. 아마 한국 영화사상 블라인드 시사를 이렇게 여러 차례 한 예는 거의 없을 겁니다. '범죄도시3' 개봉 전에 '범죄도시4' 블라인드 시사를 처음 했는데,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어요. 그간 모든 블라인드 시사회 중 역대 최고의 평점을 받았을 정도로."

'범죄도시4'는 세 차례 블라인드 시사회를 통해 불필요한 거 줄이고 속도감 더 올리는 등 더욱 완벽한 작품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고 한다.

윤일상 음악감독은 "시즌1은 이젠 독보적 작품이 됐고, 2와 3은 결이 비슷하다"며 "이렇게 시리즈가 됐음에도 '범죄도시' 하면 떠올릴만한 메인(타이틀) 음악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람보', '미션 임파서블' 등의 테마음악 같은, '범죄도시'의 시그니처가 될만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음악감독을 맡으며 제일 먼저 한 작업도 이러한 테마 음악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범죄도시4'를 상징할 만한 'Final Punishment'다. 비행기 씬에 나오는 이 곡 때문에 이 영화 음악을 맡게 돼 윤일상 감독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Final Punishment'가 흐르는 비행기 씬은 개인적으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봅니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범죄도시4'의 느낌을 충분히 대변한다고 여길 수 있도록 작업하려고 했죠. 이 영화 OST 중에서 제일 처음 쓴 곡도 이 곡입니다. 피아노로 반주 만들고 이걸 계속 다듬어갔어요."

사진='범죄도시4' 메인예고편 공식 유튜브 캡처

'범죄도시4'의 음악에 대해 윤일상 감독은 '록과 일렉트로닉의 콜라보'로 정의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히어로와 빌런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Final Punishment'와 'Round One'을 메인테마라 생각하고 썼을 만큼. 마형사가 싸울 땐 마형사 테마가 나오고 빌런이 우세할 땐 빌런 테마가 나오는 식이다. 이런 방식의 작업은 윤일상으로선 처음 해보는 것이라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고 했다.

마형사 캐릭터 음악은 밴드 악기 기반의 락킹한 사운드를 기본으로 잡았지만, 빌런(김무열)은 일렉트로닉으로 캐릭터를 강조하려고 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범죄도시4'를 찍은 영상을 보니 김무열 얼굴이 너무 착해 보였습니다. 두려움을 주는 캐릭터여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이 부분에 힘을 주려고 했어요."

엔딩에선 박지환 본인이 '대찬인생'을 노래했다. 당사자가 직접 가창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윤일상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윤 감독의 스튜디오에서 기본 보컬트레이닝 및 녹음을 진행했다.

시리즈4 OST는 더 완벽한 작품을 위해 영상과 매치시켜가며 마지막까지 수정‧보완작업이 쉬지 않고 계속됐다. 이렇게 '디벨롭'해가며 지금의 OST로 완성된 것이다. 인터뷰 중 윤 감독은 "쉬지 않고 수정 보완작업(디벨롭)을 계속했다"는 표현에서 길게 한숨을 쉴 정도였다. 당시 얼마나 힘들게 작업했나 알 수 있게 할 정도로. 특히, 처음 작업에 돌입했을 때와 마지막(막바지) 작업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윤일상 감독은 힘들게 작업한 트랙 중 하나로 'Good Will Win'을 꼽았다. 씬이 매우 길게 이어지는 와중에 음악이 이어지는 것이니만큼 마형사의 심리상태와 빌런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Good Will Win'은 제작사 대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고.

'범죄도시4'엔 많은 OST가 삽입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음악감독 당사자는 어떤 곡을 추천하고 싶을까?

"영화 시작을 알리는 'The Beginning', 그리고 이 영화의 테마음악이라 해도 좋을 'Final Punishment'와 'Round One'이 먼저 생각납니다. 그리고 형사들이 마약상을 기습하는 씬에 삽입된 4번째 트랙 'Surprise Attack'의 박진감 있는 진행도 추천하고 싶어요. 이외에 'Mr. Jang' 등 장이수 캐릭터에 삽입된 트랙들, 그리고 'Shut In Down'과 'Attack The Devil' 등의 빌런 테마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범죄도시4'는 음악적으론 시리즈 사상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범죄도시4' 시사회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에 잠깐 들러 윤일상 감독에게 "'범죄도시'가 드디어 시리즈4로 테마음악을 갖게 됐네요.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범죄도시4'를 작업하며 허명행이란 감독의 진가도 새롭게 알게 됐다. 무술감독으로서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접하고 보니 너무 남자답고 통하는 점이 많았다고.

"허명행 감독은 거침이 없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직진하는 소신파 스타일이죠.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대해 주저함이 없어요. 뿐만 아니라 전체를 보는 안목, 프로듀서적인 마인드가 탁월합니다. 한 스태프가 의견을 내면 그에 대해 1분도 걸리지 않고 빠르게 판단하고 진행하는 데 그 결정 또한 너무 적절합니다. 합리적 리더십이죠. 일희일비, 즉 남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매사 길게 보는 타입입니다. 허 감독은 앞으로 더욱 잘될 것 같아요."

엔딩씬에서 박지환의 '대찬인생'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스태프들 사이에선 이 노래를 쿠키 영상으로 넣어도 좋을 것 같단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범죄도시4'엔 유명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배우가 아니다 보니 연기가 부자연스러워 스태프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윤일상 감독은 프로파일러가 나오는 씬을 음악으로 강하게 쏴주며 연기력을 보완하려 했다.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장면의 음악작업이 끝나고 스태프 회의를 했어요.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씬이 한 번 더 나오는데, 허명행 감독은 '이 씬에서도 프로파일러 등장 때 나온 음악을 다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죠. 바로 이런 게 허 감독만의 남다른 디테일과 센스라고 봅니다. 아마 다른 감독들 같으면 (중요하지 않은 씬이라 여겨) 그냥 넘어가 버렸을 수 있었겠지요."

윤일상 음악감독은 '범죄도시4'로 마동석과 처음 작업했다.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인터뷰에선 '동석이형'이라고 불렀지만, 여기에선 '마동석'으로 표기했다.

"외모와는 달리 대단히 치밀한 디테일의 소유자라 놀랐습니다. 영화를 프레임 단위로 분석할 만큼 꼼꼼했어요. 임시편집본이 계속 넘어오는 거 보면 매우 세밀하게 씬의 템포는 물론 대중의 기호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함께 작업하며 많이 놀랐죠. 성룡, 실베스터 스탤론이 그랬듯이 지금의 마동석 배우도 재능과 역량이 정점을 찍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동석 님은 디테일이 강한 배우입니다. 편집본 넘어올 때 코멘트를 써서 보내주는데, 굉장히 자세하게 코멘트를 달아요. 저는 그간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해왔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코멘트를 다는 배우는 처음 봤어요. 그것도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고 매우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어 긴박감, 감정선이 있는 씬에서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프레임 단위로 짧게 짧게 쪼개 노트해서 보낼 정도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폭넓고 디테일하게 씬을 조망하며 코멘트를 다는 배우는 국내에선 마동석 님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회식 자리에서건 현장에서건 마동석 님은 이제 '배우'란 위치는 넘어선 것 같아요. 전체를 아우르는, 마치 제작사 대표 그 이상의 느낌이 들 만큼 대단한 존재감이죠. 단지 미소 짓는 모습만으로도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니까요."

마동석이 결혼한 날은 윤일상 부부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매년 결혼기념일 파티를 같이하자는 말이 나올 만큼 인연이 남다르다.

한편, 윤일상 감독은 '범죄도시4'에 이어 차기 작품으로 내년 방영 예정인 글로벌 OTT 드라마 음악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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