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도 노동자다!"...책 세계의 부조리에 성난 작가들, 노조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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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작업실에 흩어져 있던 작가들이 26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 모였다.
이날부터 30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글 쓰는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글 쓰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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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작가 발언 "책 세계 주체로서 목소리 낼 것"
작가 80명 모여 내년 5월 작가노조 설립 추진
"글쓰기는 노동이고, 우리는 작가노동자입니다. 우리를 끈적끈적하게 감싸고 있던 '고매한 예술', '숭고한 창조', '고독한 분투'라는 질긴 수사를 찢고 나와 글 쓰는 노동자로서 함께 이 자리에 섰습니다."
-기자회견문 '글쓰기도 노동이다' 중
각자의 작업실에 흩어져 있던 작가들이 26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 모였다. 이날부터 30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글 쓰는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글 쓰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행사장 코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작가는 희음(시인)·황모과(SF 작가)·김홍(소설가)·도우리(칼럼니스트)·위래(웹소설)·전혜진(만화스토리작가) 등 6명. 이들의 소속은 '동인'도 '협회'도 아닌 '작가노조준비위원회'다.
기자회견을 기획한 20년 차 편집자 안명희 회원은 "많은 작가들이 불안정 노동, 하청 노동, 종속적 노동을 혼자 겪으며 길을 잃고 있다"며 "글쓰기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작가의 삶과 일상을 보장하기 위해 작가도 노동자라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자 모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비정규노동운동가이기도 한 그의 눈에는 2011년 생활고로 고독한 죽음을 맞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불공정한 매절 계약으로 그림책 '구름빵'의 저작권을 강탈당한 백희나 작가, 베스트셀러 만화 '검정 고무신'을 그리고도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난 고 이우영 작가의 비극이 홀로 남겨진 노동자들의 처절한 분투로 보였다. 안 회원은 "이 자리에서 작가가 노동자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은 굶어 죽는 작가, 혼자서 싸우다 조용히 사라지는 작가, 글 쓰는 노동을 했을 뿐인데 몸과 마음의 병을 크게 얻은 작가들의 곁에 서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고 했다.
"작가로 산다는 건... 식비를 줄여야 하는 것"
작가들은 자신이 겪고 목격한 출판계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5년 차 전업 작가인 황모과는 "웹 연재 후 출간을 계약했던 한 출판사에서 연재 비용이 연체됐고, 출간 계약을 해지했는데 중쇄를 하지 않으면 이미 판매된 책의 인세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며 "연간 1회라도 인세 정산을 하라고 했더니 출판사는 판매 부수를 중간에 집계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신인 작가의 설움으로 삼킬 수 있는 문제인가"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칼럼니스트 도우리는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식비를 줄이는 것이고, 부모님이 지인들에게 (자식을) '작가'라기보다 '기자'라고 소개하는 것이고, 파트너로서 조건 미달인 것이고, 작가임을 포기하거나 포기하려는 동료들을 지켜보는 것이었다"며 "작가 개인으로서 절망하고 검열하기보다 작가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부당한 처우와 열악한 현실은 최초의 작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동력이 됐다. 내년 5월 노조 출범을 목표로 활동 중인 '작가노조준비위'에는 소설, 에세이, 평론, 번역, 어린이책, 웹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 80여 명이 모였다. 지난해 9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수차례 포럼을 열었고,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 이슈와 알라딘 전자책 유출 사건 등에 공동대응했다. 소설가 김홍은 "작가로서 응당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작가의 권익을 소리 높여 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노동자라는 생생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며 "글쓰기라는 노동을 통해 작업물을 납품하는 예술창작 노동자로서 선의가 아닌 권리를 생각하며 노동에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작가들이 작가 노조 깃발 아래 모여들길 바란다"고 작가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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