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 박 홍 “제도와 역사 주목하면 차별이 보인다”[2024 경향포럼]

김원진 기자 2024. 6. 26. 15: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캐시 박 홍 미국 UC버클리대 영문과 교수(왼쪽)와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가 26일 <2024 경향포럼>에서 대담하고 있다. 이날 포럼은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조태형 기자

캐시 박 홍 UC버클리대 영문과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 대담에서 ‘모범 소수자’ 신화를 언급했다. 모범 소수자는 근면하고 우등하며 사회적 성공을 이룩한 소수자를 뜻한다. 미국계 아시아인들 사이에 자리 잡은 모범 소수자 신화는 다른 소수 인종을 낮춰보는 차별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모범 소수자는 홍 교수의 책 <마이너 필링스>에서 소개된 개념이다.

이날 박 홍 교수와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와 대담에서는 역사적 맥락과 제도 속에 담긴 ‘차별’을 둘러싼 이야기가 오갔다. 박 홍 교수는 모범 소수자 신화의 제도적 근원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미국은 (아시아인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하지만 (미국에서) 아시아인의 성공은 미국의 이민정책 때문에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홍 교수는 미국은 1965년 이후 의사나 공학자 등 고등교육을 받은 아시아계 이민자를 선별해 받으면서 아시아인 사이 모범소수자 신화가 커졌다고 본다. 일종의 ‘선발효과’가 미국의 이민정책에도 작용했다는 취지의 분석이다. 박 홍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인을 가려 받았기 때문에 성공 사례가 많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박 홍 교수에게 “제도가 어떻게 인종주의를 만드는지 통찰을 주신 것 같다”며 한국의 이주노동자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올 수 있는 국적을 16개로 제한한다”며 “주로 동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인데, 한국에선 이제 동남아시아에서 본 분들은 곧 ‘이주노동자’라는 관념이 자리잡혀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쓰는 나라는 많지만 한국에선 영어교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뉴질랜드, 호주, 미국 등 7개 나라 국적자로 한정됐다”며 “이런 제도를 잘 모르면 현상적으로 인종·출신 국가에 따라 계급적, 직업적 특성을 갖게 된다고 오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박 홍 교수는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례로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을 꼽았다. 그는 “AI와 알고리즘이 편향이 있다는 증거는 많이 쌓였다”며 “AI와 알고리즘을 만드는 엔지니어의 대다수가 백인 남성인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책입안자도, 기관도, 제도도, 대학도, 기업도 마찬가지로 누가 운영하는 주체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박 홍 교수는 제도와 법으로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항상 걸림돌과 지연이 발생하기 때문에 ‘문화의 문제’로도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육·세제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도적으로 제공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아 보인다”며 “그 이유 중 하나가 뿌리 깊은 가부장제 문화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설득할 게 아니라, 남성에게 ‘평등한 파트너가 될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밝히는 게 금기시되는 것 같은데 매우 놀랍게 다가온다. 일종의 마녀사냥과도 유사하게 느껴진다”며 “오래 걸리겠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좌시하지 않겠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문화가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