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노무현의 언론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DJ, 명함에 글 써서 조·중·동 사장에 전달
보수 언론과 좋은 관계 가지려 많은 노력
노무현은 조선일보와 아예 접촉조차 꺼려
“DJ가 얼마나 당했나? 잘해주면 달라지나”
언론에 대한 ‘정치인 김대중’과 ‘정치인 노무현’의 접근 방식은 달랐다. 한국 현대사에서 김대중만큼 언론의 왜곡과 공격에 시달린 정치인은 없다. 1971년 제7대 대선 이후 수십년간 ‘빨갱이’라는 모략을 받았고, ‘과격하다’ ‘믿을 수 없다’ ‘부정축재’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래도 김대중은 언제나 보수 주류 언론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 노력했다. 이런 태도는 집권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인 1993~97년 비서실장을 지낸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얘기는 흥미롭다. 정 전 장관은 2002년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뒤엔 노 후보의 비서실장도 지냈다.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시절에 디제이 지시로 조·중·동 사장을 찾아간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때 디제이는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이라 적힌 명함에 만년필로 ‘제 비서실장인 정동채 의원을 보냅니다. 설명 듣고 선처 바랍니다’라고 써서 나한테 줬고, 나는 그 명함을 전달하며 디제이의 얘기를 전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보수 언론에도 그렇게 했다. 노무현 후보는 달랐다. 2002년 전당대회가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노무현 후보에게 국회 의원동산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단한 회식을 겸한 기자간담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건의했더니 ‘하지 말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조선일보 등과는 아예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디제이가 언론에 얼마나 당했나요? 잘해준다고 논조가 달라지기나 합디까?’라고 되물은 적도 있다.”
그렇게 주류 언론과 정면으로 맞서며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을 김대중은 내심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200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당선자와의 국정 인수인계 오찬에서 특별히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한 내용을 메모에 적어 건네준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집권 이후 ‘과거를 잊고 잘 지내자. 도와달라’는 디제이의 유화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거대 보수 신문들은 김대중 정부 비판과 공세의 수위를 점점 높여갔다. 대표적인 게 2000년 9월9일치 동아일보 1면 톱으로 실린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는 기사였다. “추석 분위기가 썰렁하다”로 시작하는 기사는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우방이 부도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구 지역은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 한국 제2의 도시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때는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굳이 대구·부산을 끄집어낸 건 지역감정을 부추기려는 의도라고 청와대와 민주당은 분노했다. “이 기사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전국 도별 부도율 표다. 부산과 대구 경제가 엉망이라는 기사에 사용된 표에는 광주지역 부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배달판에서 이 표를 삭제하고 우방의 부도 여파를 중심으로 기사를 수정했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했다.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던 김성재씨(현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는 “그 무렵 김대중 정부는 ‘밀라노 프로젝트’라고, 대구의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 매우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민간 투자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사가 나니까 오히려 대구에서 반발했다. 문희갑 대구시장이 직접 청와대를 찾아와 ‘이 기사 때문에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고 푸념했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의 의도적인 비판 기사가 김대중 대통령의 2001년 신년 기자회견에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청와대와 민주당에서 일했던 핵심 관계자들은 말했다.
김 대통령은 끝까지 언론사 세무조사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김 대통령을 잘 아는 인사는 ‘꼭 언론사 세무조사를 해야만 했느냐’는 질문에 김 대통령이 “법에 정해진 걸 안 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세무조사는 세무조사일 뿐 인위적인 언론개혁은 아니라고 김 대통령은 되뇌었을 것이다. 언론의 숱한 핍박을 받았고, 그래서 언론의 도움을 더 갈구했던 디제이는 이런 논리로 스스로를 방어하며 시민사회 단체가 주장한 법적·제도적 언론개혁과는 선을 그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보수 언론이 디제이의 절제력을 평가해줄 리는 없었다.
(다음 회에 계속)
박찬수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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