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의 아침] 정수만 “5·18 종합보고서 폐기해야…앞으로 왜곡·폄훼 시달릴 것”

윤주성 2024. 6. 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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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 프로그램명 : [출발! 무등의 아침]
■ 방송시간 : 08:30~09:00 KBS광주 1R FM 90.5 MHZ
■ 진행 : 윤주성 앵커
■ 전화연결 :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
■ 구성 : 정유라 작가
■ 기술 : 이종규 감독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7jXPtwfq_4E

◇ 윤주성 앵커(이하 윤주성):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엊그제 종합보고서 대국민 보고회를 끝으로 4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동안 왜곡 우려가 제기됐던 내용이 일부 수정됐습니다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과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 (이하 정수만): 안녕하십니까?

◇ 윤주성: 종합 보고서 보셨을 텐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정수만: 보고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보고서 내용이 수록된 사건보다 수록이 되지 못한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있다는 이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 윤주성: 대표적으로 빠진 중요 사건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 정수만: 중요한 것이 굉장히 맞지요. 5·18의 원인을 이야기했을 때 조사를 받았던 지휘관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 원인이 과잉 진압이었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과잉 진압이 과연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가, 이런 것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뭘 조사를 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지휘 체계가 이원화가 되어 있었던 것은 확실하거든요. 특전사와 일반 군인들하고 소통이 되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서 무전기 같은 것을 따로 썼거든요. 무전기 방식이 특전사는 AM 방식을 쓰고 일반 군인들은 FM 방식이어서 호환이 안 되는 것이지요. 서로가 보고를 할 수 없어요. 11공수가 들어왔을 때 31사단에 배속이 됐거든요. 배속이 됐으니까 모든 보고가 31사단으로 이루어져야 돼요. 그런데 31사단과는 정작 무전기가 달라 가지고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들이 돼 있어서 정말 수록이 많이 빠졌어요. 지휘 체계 이원화도 그렇고 유언비어도 그렇고 도청 앞 발포 상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원인이 무엇이었고 정확한 실태가 나오지 않았어요. 또 주남마을 사건도 마찬가지고요. 21일 도청 앞 장갑차 압사 사건 이것 완전히 잘못된 사건이거든요. 이러한 것들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어요. 교도소 습격 사건을 보면 약간 바뀌었더라고요. 교도소 습격이 아니고 다른 것으로 조금 단어를 바꿨더라고요. 공격으로 바꿨더라고요. 이렇게 됐는데 조사 보고서 742쪽 같은 것을 보면 5월 21일 광주교도소에서 31사단 병력에 의해 발포가 이루어졌고 2명의 부상자가 발생을 했다, 이렇게 기록이 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것은 정말 조사를 해봤어야 될 사항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그날 총상을 입었던 것인가, 31사단 병력에 의해서 이런 것인데 실명이 안 돼 있기 때문에 확인을 못해 봤는데 한 사람이 실명으로 돼 있었어요, 김 모 씨가. 그래서 그분 내용을 확인해 보니까 사실 5월 21일 광주교도소에서 총을 맞았다고 주장한 것이 5월 20일에 맞았다고 주장을 했어요, 기록을 보면. 그런데 정작 병원 기록은 5월 22일로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러한 것들도 조금 더 심도 있는 조사를 한 이후 이 보고서가 나왔어야 한다. 너무 소홀히 다루어졌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윤주성: 조사위 종합보고서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것이 조사위의 설명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정수만: 제가 읽어본 것으로는 4년간 고생은 하셨지요. 그렇지만 새롭게 밝혀진 사건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기록에 빠진 사건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 윤주성: 조사위가 성과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보수 세력이 5·18을 폄훼하면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이 실체와 증거가 없는 허위 주장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충분히 규명이 됐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 정수만: 그런데 이 문제는 왜 여기에서 다뤘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북한군 투입설은 논할 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전국 계엄이 확대돼 있었고 광주는 계엄군에 의해서 외지로 오가는 길은 전부 차단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그 많은 북한군이 광주로 들어왔다면 이것은 군의 책임이 아닌가요? 자기들은 철통같은 방어를 했는데 광주에 들어오려고 했던 이창용 간첩 한 사람도 광주로 들어오지 못하고 부산으로 갔다 서울에서 체포가 됐거든요. 이렇게 된 것인데 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들어왔느냐, 이런 것들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국방부와 보수 세력 간의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광주와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 윤주성: 조사위에서는 5·18 당시 행불자로 신고된 242명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55명은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무명열사 다섯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은 유전자 대조 검사를 통해서 이름을 포함한 신상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것도 성과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 정수만: 조사는 했지요. 55명이 사실은 실종자로 신고가 되어 있지만 살아있다거나 확인이 된 사람 숫자고요. 이 내용은 DNA 감정으로 무명열사 가족을 찾았다는 것 그것이 실적이지 암매장 유해를 발굴해서 행방불명자 가족들을 찾았다거나 이런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이번 조사위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과 어떤 실적이 있었는지는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 윤주성: 앞서 교도소 습격 사건에 대해서 언급을 해주셨는데요.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수만: 이번 종합 조사 보고서에서는 교도소 습격 사건을 공격으로 이렇게 표기를 했더라고요. 교도소 습격이 아니고 교도소 공격, 똑같은 말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5회가 명기가 되어 있어요. 지금까지는 군이 주장을 했지만, 주장한 것도 특전사에서는 4회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번 종합 보고서에는 5회로 딱 기록이 되어 있더라고요. 시간과 장소까지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80년 당시 5월에 광주 시민이 정말 교도소를 공격했나요? 저는 알 수 없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교도소를 습격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을 해왔거든요. 그런데 이번 조사위에서 정부 공식 기록으로 5번의 공격을 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이 들고. 조사위는 무엇을, 누구를 위해 조사를 했고 어떤 근거로 이런 것들에 해당되지도 않는 기록을 남겼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윤주성: 또 사망자가 언제 어떻게 사망을 했는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문제 제기를 하셨는데요. 왜 이것이 또 문제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 정수만: 당시 사망자를 166명으로 했어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조사 기록이 나왔어요. 그랬는데 이 사망자 조사는 당시 사건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기초 조사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망하였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정확히 조사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상당수가 잘못 조사되었거나 조사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사망자 숫자가 이 정도 조사 보고서로 돼 있다고 하면 이 사건 조사 보고서의 사건 자체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 윤주성: 여러 가지 논쟁 지점이 있지만, 꼭 짚어야 할 부분이 주남마을 부분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왜 그렇습니까?

◆ 정수만: 주남마을 사건은 원래 저희가 파악을 한 것은 네 번이었어요. 군에서도 주장하는 것은 한 번이었거든요. 지난번에 12.12, 5·18 조사할 때 한 번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이번에 조사위원회에서도 한 건으로 기록이 되어 있더라고요. 왜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냐 하면 사망자가 한 장소에서 전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혀 맞지 않거든요. 주남마을 쪽 사망자 시신이 5월 25일에 12구가 차량에 실려서 시내로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식 기록이에요. 기록이 있는데 이 시신이 도청으로 오지 않고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왜 이것을 조사를 안 했는지. 1건이라고 한다면 17명이 죽었다는 1건밖에 안 되는데 사망자 수가 거기에 비해서 훨씬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5월 28일 주남마을 쪽에서 들어온 시신이 8구가 있어요. 8구가 있고 그 이전에 5구가 상무관으로 이동이 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된다고 하면 그 예를 제외하고 12구 시체가 또 이것이 없어졌거든요. 없어졌고 당시 5월 28일 앰뷸런스에 있었던 시신 1구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런 것들 어쨌든 앰뷸런스가 습격을 받았고 거기에 죽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것이 다 어떻게 됐는지 그 조사도 잘못됐더라고요. 보니까.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기록을 해야 될 것인가, 한 건으로 해서 마무리를 해야 되는 것인가. 이것은 조금 더 심도 있는 조사를 하고 또 거기에 대한 기록도 많고 또 목격자도 많아요. 목격자도 많은데 왜 이런 것들을 이렇게 정리를 했는가, 정말 답답한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 윤주성: 왜 이런 보고서가 나왔다고 생각을 하시고 이 보고서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정수만: 현재 조사위에서 소지하고 있는 기록물을 제대로 살펴봤어도 이 정도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는 들어요. 그리고 조사위가 처음 만들어질 때 그 구조나 구성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런 생각을 저는 해봅니다. 사실 어떠한 강제성을 띠고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고요. 또 거짓말을 한 사람들에 대한 기소도 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보니까 결정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 예를 본다면 권용운 일병 도청 앞 장갑차 압사 사건을 보면 한쪽에서는 우리가 분명히 시민 장갑차가 치였다고 주장을 했고 한쪽에서는 우리는 그런 사실이 없다, 계엄군 장갑차가 후진하다가 이렇게 했다고 해서 서로 첨예하게 대립이 되니까 결국은 포기했잖아요. 이렇게 되면 안 되지요. 지금까지 나왔던 조사 기록을 제대로 살펴만 봤어도 이런 정도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 윤주성: 이 보고서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정수만: 이 보고서가 정부 공식 기록으로 남으면 앞으로 5·18은 끝없는 왜곡과 폄훼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 공식 문서로 남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윤주성: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주성 기자 (y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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