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 박 홍 “젠더 갈등, 여성들의 ‘역사적 폭력’ 트라우마가 인정되지 않아 생긴 것”[2024 경향포럼]

박채연 기자 2024. 6. 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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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박 홍 미국 UC버클리대 영문과 교수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 중 첫 번째 세션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여성 혐오 등 여러 혐오는 결국 권력들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혐오를 조성해) 그들이 소유한 재원과 자본의 독점에서 사람들이 눈 돌리도록 하죠. 이들의 얘기를 계속 들으며 설득당하면 우리는 고통의 원천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겪고 있거나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마이너 필링스>의 저자이자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캐시 박 홍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2024 경향포럼> 첫 번째 세션 ‘다양성과 포용의 리더십’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 교수는 202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문학에서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박 홍 교수는 서구 제국주의나 백인 우월주의 등으로 사회에 분열이 만들어지면 억압받는 사람들이 억압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성차별, 인종차별, 제국주의 등은 결국 자기 자신을 혐오하도록 한다. 이런 혐오와 차별이 어떤 심리적인 영향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문제의 원천은 나를 고립시키는 사회이고, 그러한 인식은 집단 행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이것이 마이너 필링스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의 책 <마이너 필링스>는 미국 사회 내에서의 분열을 다룬다. 홍 교수는 “부모님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갔지만, 미국도 분열된 나라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흔히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 사회는 사실 “흑인과 백인으로 오랫동안 분열된 사회”였다는 것이다.

<마이너 필링스>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미국 내 어떤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본다. 홍 교수는 “백인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모범적인 집단이라고 주로 칭한다. ‘흑인보다는 우리가 낫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라며 “결국 흑인, 백인과 인종적인 3자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백인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문화적, 인종적 이유로 동화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면서 시민 구성원으로부터 배척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더이상 수적으로도 다수가 아닌 백인들이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정치에 투영하고 있다”고 봤다.

2021년 <마이너 필링스>를 출간한 현재 그는 한국 사회의 분열에 집중해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않은 이 소설은 한국과 재미 교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기자로,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당신 어머니가 겪는 고통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홍 교수는 “해는 어머니가 경험한 고통의 근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제국주의와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북한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김현희나 김정일이 1970년대 납치했던 신상옥·최은희의 딸을 인터뷰하는 등 냉전에 이용당한 여성들에게도 관심을 가진다.

여성들의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이나 혐오와 맞붙어있다. 이 소설은 해가 현대의 서울에 오면서 마무리가 된다. 홍 교수는 “해는 서울에서 ‘젠더 갈등’을 목격하게 된다”며 “이 갈등은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당해온 젠더 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에 폭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에서 해는 아이를 낳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많은 젊은 여성들이 같은 다짐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홍 교수는 “유교적 가부장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여성들을 비판하고 반대한다”며 “한국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역사적 폭력의 트라우마가 이 사회에서 인정되지도, 극복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이 두 책을 비롯해 여러 글을 집필하면서 “작가로서 공감의 능력을 통해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 변화하는 주변부에 존재하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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