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정육점에서 불법 낙태약을 팔고 있다? [취재파일]

박수진 기자 2024. 6. 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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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리 <낙태죄 폐지 후 방치된 '임신중지'> 취재후기 ①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 등을 처벌해온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새 법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새 법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 법엔 낙태를 처벌한다는 규정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없다.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의료 체계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런 제도의 공백 속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을까? 첫 번째 이야기는 불법 낙태약 시장이다.

"뭘 판다고요? 낙태약이요? 여기 정육점인데요."
휴대폰 너머로 의아함과 약간의 짜증이 뒤섞인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낙태약'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까지도 한 참의 시간이 걸렸다. 불법 낙태약 판매처를 취재 중인 기자임을 밝혔고, 당신의 정육점 주소에서 발송된 약을 택배로 받았다고 설명했다. "여기가 시장 같은 곳이라서 여러 가게가 같은 주소를 써요. 그런데 약 같은 걸 파는 곳은 없는데?" 택배 상자에 적혀있던 김○○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그녀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법 낙태약이 담겨있던 택배 상자 운송장에 그의 번호가 적혀있었다.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관련영상: ▷ [뉴스토리] 낙태죄 폐지 후 방치된 '임신 중지')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693870]
 
"혹시 김○○씨 휴대폰 맞나요?"
"아니요"
"저는 박수진이라고 하는데요, 저한테 물건을 발송한 일이 없으신가요?"
"네"
"미프진○○(불법 낙태약 판매 업체)와는 관련이 없는 분인가요?"
"네, 몰라요"

모든 걸 모른다고 답하는 건 정육점과의 통화와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젊은 여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낙태약, 미프진○○이라는 단어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고, 대답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마치 이런 전화를 여러 번 받아본 사람처럼.

'비밀 거래'에서 '빠른 배송'으로 진화한 불법 시장


병원을 가지 않아도 낙태, 즉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약물이다.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져 있는 유산유도제는 해외에선 임신 초기에 안전한 임신 중지 방법으로 권고되기도 한다. 여러 약이 있지만 프랑스 제약사가 만든 '미프진'이라는 약이 가장 유명하다. 임신을 유지시키는 호르몬(프로게스테론)을 줄이는 성분의 약과 자궁을 수축시켜 태아를 배출하게 하는 성분의 약으로 구성돼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 약을 임신 9주 이내에 사용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자가 정육점에 전화해서 찾았던 불법 낙태약이 바로 미프진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인정한 약을 왜 불법이라고 표현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나라에는 정식 도입 되지 않은 무허가의약품이기 때문. 판매도 구매도 유통도 불법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모든 형태의 '불법'은 '불법 시장'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 불법 낙태약 시장도 그렇다. 미프진 도입이 여러 이유로 미뤄지는 시간 동안 불법 시장은 계속 몸집을 불렸다. 한 때는 어느 장소를 지정해 판매자와 구매자가 '접선'하는 형태로, 또 지하철 사물함을 이용해 '비밀 거래'를 하는 형태였다면 2024년 현재는 주문 하루 만에 집 앞에 택배로 배송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7주는 35만 원, 15주는 95만 원…"정품 인증은 안 돼요"


온라인에서 미프진을 판다고 광고하는 사이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5개의 사이트 중 3곳에서 주문을 해봤다. 가격은 7주까지가 35만 원 수준, 12주까지는 59만 원 정도였다. 이후는 상담을 거치라고 쓰여 있었다. 한 사이트에서 임신 15주라고 상담을 받아봤다. 15주일 경우는 약을 6일 동안 복용해야 한다며 95만 원을 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설명은 의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이야기다. 세계보건기구는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임신 9주 이내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15주 이상은 약물로는 임신 중지를 할 수 없다는 게 취재하면서 만난 의사, 약사들의 이야기였다.

이 사이트의 판매자는 자신을 약사라고 소개했다. 자신이 안내하는 대로 복용하면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약이 정품 미프진이 맞는지, 정품 인증이 가능한지를 묻자 그는 여러 장의 후기를 보내줬다. 정확히 말하면 먼저 이 약을 먹고 임신 중지에 성공한 여성들이 보내왔다는 카카오톡 대화 캡처였다. 하지만 보증서나 정품인증을 따로 해줄 순 없다고 했다. 구매를 망설이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후기 보여드렸는데 그래도 걱정 되신다면 도와드릴 방법이 없어요." 구매자보다 판매자가 더 우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 만에 택배로 도착한 불법 낙태약의 실체


다른 사이트에서 1-7주 제품을 주문했다. 주문서를 작성하니 계좌번호가 떴다. 오후 3시 전 입금하면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 택배비는 무료라는 메시지도 함께 떴다. 동시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며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대화를 걸었더니 주문자 정보를 확인 후 대뜸 다른 계좌번호를 줬다. 이미 36만 원을 입금을 했다고 말하니 예금주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이들은 여러 개의 계좌를 돌리고 있었다. 판매자는 입금 여부를 확인한 후 "내일 배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하루 만에 택배가 도착했다. 앞서 말했던 목포 정육점 주소로 발송된 그 택배였다.

불법 낙태약은 문구, 잡화로 둔갑해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비닐에 흰색 약통이 들어있었다. 홈페이지에서 봤던 미프진의 정식 패키지와는 모양이 달랐다. 약통 겉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영어가 쓰여 있었다. 미페프리스톤 성분의 약 25mg, 미소프리스톨 성분의 약 200mg이 들어있다는 설명으로 추정되는 내용과, 이 약이 미국 뉴욕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내용도 있었다. 약통 안에는 흰색 알약이 3알, 6알씩 나눠 담겨있었다. 무엇이 미페프리스톤이고 미소프리스톨인지 육안으론 구분이 어려웠다. 이 약은 정말 정품 미프진이 맞을까? 약사와 산부인과 의사에게 물었다.

"이게 참 이상한 게 여기 보시면 미페프리스톤 25mg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용량이 200mg이어야 돼요. 뉴욕이라고 적혀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왜 말이 안 되죠?) 뉴욕에서는 25mg은 팔지 않아요. 미국에선 200mg 단위로 팔죠. 성분 분석을 해보진 못했지만 일단 겉모습만 봐도 재포장된 건 분명한 거고요. 재포장 과정에서 어떻게 품질이 관리되는지 알 수가 없죠."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약사))

"좀 이상하게 왔네요. 생긴 것도 좀 이상하게 생겼고요. 여기 설명에 쓰여 있는 용량도 맞지 않아요.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은 200mg 한 알이거든요? 한 번 먹고 그 다음에 하루 지나서 미소프로스톨 총 200마이크로그램 짜리 4알을 먹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약 개수도 맞지 않고, 실제 그 약인지도 알 수가 없고요."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산부인과 전문의))


판매자는 기자에게 이 약들을 약 4일에 걸쳐 먹으라고 했다. 판매자가 보내준 복용법은 길고 자세한 듯 보였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설명해준 실제 미프진 복용법과는 크게 달랐다. 정품 인증도 해주지 않고, 정품인지 알 수도 없으며, 복용법도 엉망인 약을 수십만 원에 팔고 있는 현실.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불법 통로를 통해 약을 구매하는지 공식 통계는 없지만, 임신 중지를 고민하는 여성 중 병원에 가거나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여성들이 여전히 이런 불법 통로를 통해 약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식 도입은 미뤄지고, 불법은 사실상 방치…피해는 누구에게?


식약처는 온라인에서 불법 유통되는 임신중절의약품을 지난해 491건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적발을 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 사이트를 차단해달라고 요청한다고 한다. 무허가의약품 판매와 구매는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지만 현재 단속의 수준은 불법 판매업 사이트가 발견되면 접속이 안 되게끔 막는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있는 셈. 식약처는 온라인상에서 무허가 의약품을 불법 유통하는 사이트나 업자들 대부분이 해외에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취재에서 확인했듯, 불법 낙태약 판매자들은 해외에서 어떤 경로를 이용해 물건을 국내로 들여와 비축해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하루 이틀 안에 배송을 하는 시스템을 이미 구축하고 있었다. 해외에 있으니 단속이 어렵다는 보편적 편견이 진화한 불법 시스템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미프진이 국내에 정식 도입되면 이런 불법 시장은 자연스럽게 소멸되겠지만 정식 도입을 위해선 많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제약사가 식약처에 미프진 도입을 위한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한국인 대상 임상 결과 등 자료보완을 이유로 승인을 미루고 있다. 식약처는 의약품의 구체적 승인 과정에 대해선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혀 구체적 지연 이유는 들을 수 없지만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대체 입법이 되지 않는 상황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이견 없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입법예고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엔 약물 임신중절을 허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지만 이 법은 21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서 폐기됐고 정부는 아직 재발의를 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낙태죄 대체입법이 돼야 그 이후의 의약품 허가나 제도 마련이 가능하단 입장이다. 또 산부인과의사회 등에서 미프진 도입에 신중한 입장인 점, 종교단체가 반대하고 있는 점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요소'다. 미프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여성단체는 의약품 허가와 입법 과정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식약처가 근거 없이 도입을 미루고 있다며 곧 감사원에 국민감사도 청구할 예정이다.

낙태죄 대체 입법이 의학적, 과학적 영역을 벗어나 정치적, 사회적 합의의 영역의 논의가 된 지금 상황에서 식약처가 선제적으로 미프진 도입을 결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불법인줄 알면서도 위험한 통로를 이용해 약을 구매하는 여성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이용해 수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제도와 법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이런 위험한 시도와 이로 인한 피해는 계속되고 더 커질 것이란 점이다.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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