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26일, 전력난으로 밤 8시 이후 TV 중단

장슬기 기자 2024. 6. 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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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26일, 전력부족으로 정부가 밤 8시 이후 TV 프로그램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날 동아일보는 이란 기사에서 "수력발전소가 집중돼있는 영동지방에는 강우량이 아직도 태부족해서 전력사정은 악화일로, 26일부터 밤 8시 이후 모든 텔레비존(텔레비전)방송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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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역사 속 오늘] 백범 김구,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 당해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TV. 사진=pixabay

1967년 6월26일, 전력부족으로 정부가 밤 8시 이후 TV 프로그램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날 동아일보는 <TV방송을 중단>이란 기사에서 “수력발전소가 집중돼있는 영동지방에는 강우량이 아직도 태부족해서 전력사정은 악화일로, 26일부터 밤 8시 이후 모든 텔레비존(텔레비전)방송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날부터 8시 이후 송신이 전면 중단되는 텔레비존은 KBS·TBC 등 국내방송은 물론 미군방송인 AFKN도 이에 협조키로 미8군사령관과도 합의됐다”고 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1967년 6월26일 당시 전력공급량은 55만KW로 총 수요 77만KW보다 22만KW가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대규모 공장도 당초 '7일에 하루 단전'에서 '4일에 하루 단전'으로 강화됐다.

원인은 가뭄과 일부 발전소 고장 등이었다. 같은날 경향신문 <전력사정 최악 TV방송 등 제한>에서 “26일 상공부는 계속된 가뭄과 일부 화력발전소의 고장 때문에 전력수급사정이 크게 악화되었다고 지적, TV방송과 비료공업 및 농사용 전력까지 제한 송전하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상공부 장관은 가뭄에 따른 불가피한 사정이므로 일반가정이나 전력실수요자들은 선풍기 냉방기계 등 전열기구 사용을 자율적으로 중단해 전력난 해소에 온 국민들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전력 대란은 길게는 1988년 서울올림픽 전까지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일경제 2013년 6월5일자 <전력대란>이란 칼럼을 보면 1967년 11월9일 서울시는 3단계 단전 순위를 정해 발표했다. 1단계는 호텔, 극장, 카바레, 바, 상점, 약방의 네온사인 끄기, 2단계는 관공서·국영기업체 야간등 끄기, 3단계는 외등과 도심가의 가로등까지 끄는 계획이라고 한다.

1968년 5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가뭄으로 전력난이 심화되자 TV방송 시간을 단축하고 에어컨과 냉장고에 대해서는 송전을 제한하는 대신 산업시설과 관광호텔, 외국인 시설에 우선 송전하라고 지시했다. 1973년 10월 1차 오일쇼크로 전 국민적 에너지 절약운동을 시작했고 1977년에는 조명기구 상회에서 판매용 조명등을 켜두는 일, TV판매점에서 진열된 TV를 켜두는 일 등이 모두 금지됐다고 한다.

한편 1949년 6월26일 낮 12시30분경 서울 경교장(현재 강북 삼성의료원)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가 김구 선생을 총으로 살해했다.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1년 뒤 한국전쟁 발발 이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군으로 복귀했다. 이승만 배후설이 제기됐지만 사건 초기 진상규명에 실패하면서 의혹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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