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스러진 이들의 추모분향소엔 사진도 이름도 없었다[배터리 공장 화재]

2024. 6. 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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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확인된 사망자 3명뿐… 분향소 찾은 유족들은 통곡만
시민들, 아침 일찍 합동분향소 찾아 조문·헌화 “마음 아프다”
사망자 부검 완료… 시신 6개 장례식장 각각 안치
26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청에 마련된 추모분향소에서 화재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김도윤 수습기자

[헤럴드경제(화성)=이용경 기자·김도윤·정호원 수습기자]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 전곡산업단지 내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근로자 23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로 기록됐다. 화재 현장에서 수습된 사망자들의 시신은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절차가 끝났으나 신원 확인이 완료된 사람은 한국인 근로자 3명뿐. 아직도 장례식장에는 번호로 기록된 이름 없는 망자들이 ‘신원미상’ 상태로 안치돼 있다. 합동 추모분향소에는 단 하나의 영정사진이나 이름도 없이 남은 이들의 슬픔과 공허만으로 가득찼다.

26일 오전 헤럴드경제가 찾은 화성시청 아리셀 화재사고 희생자 추모분향소는 적막했다. 추모 방명록에는 11명 안팎의 추모객들이 서명한 흔적이 있었다. 한 시청 관계자는 “25일 밤에도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분향소 운영시간인 오전 9시가 다가오면서 차츰 사망자들의 명복을 비는 유족과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드물게 이어졌다. 다만 추모는 엄숙한 분위기 하에 진행됐다. 아침 일찍 분향소를 찾은 유족들은 영정사진도 채 걸리지 못한 빈 단상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중국에서 온 한 유족은 이번 화재 참사로 딸을 잃었지만, 아직 사망한 딸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어떻게든 빨리 애를 찾아 주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너무 허무하고 불쌍하다”고 통곡했다.

시민들도 침울한 표정으로 애도를 표했다. 시민들 중에선 휠체어를 타고 분향소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시청 공무원인 강모 씨(41)도 업무 전 추모분향소를 들렀다. 그는 “타지에서 온 외국인 분들이 어째서 이렇게 많이 돌아가셨을까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며 “주변에 많이 알리고 있다. 속상하다”고 말했다. 출근길에 분향소를 찾은 또 다른 중국동포 이모 씨도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 들어온 지 10여년이 넘었다는 그는 “일용직으로 일하는 동료들이 있는 데, 안전 사고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나타냈다.

화성시의회 의원들도 이날 오전 9시 20분께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시의원들은 “화성시에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업무를 맡기는 공장들이 많기 때문에 유사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화성시 예산을 들여 배터리 공장 등 화학 공장을 중심으로 소화기 화재 교육 및 안전 관리에 신경 쓰겠다”고 덧붙였다.

화성시의원들이 26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청에 마련된 추모분향소에서 화성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도윤 수습기자

이날 오전 신원미상 시신 4구가 안치돼 있는 화성중앙종합병원 장례식장에는 화성시와 고용노동부 관계자, 장례식장 직원만 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 현재까지 빈소가 마련된 경우는 없었다. 장례식장 내 빈소현황에는 사망자 ‘5번’, ‘10번’, ‘15번’, ‘20번’이 지난 25일 부검을 완료했다는 기록만 표시돼 있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들 대부분은 시신 훼손이 심해 지문 감정이 불가능했다. 관계당국은 상대적으로 훼손 정도가 덜한 신체 부위 표피와 대퇴골에서 DNA를 채취해 가족 DNA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신원 특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사망자 23명 중 신원이 확인된 한국인 근로자 3명을 제외하면 빈소가 차려질 수 있는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유족들은 사망한 가족을 확인하지 못한 채 하염 없이 여러 장례식장을 오갔다.

화성중앙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9년간 근무해 왔다는 한 관계자는 “장례식은 가족들이 와야 뭘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것인데, 돌아가신 분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국과수가 부검을 끝내고 DNA 검사를 하고 있을텐데, 결과가 나오면 사망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고 가족분들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흥경찰서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현재 부검은 완료했지만, 신원을 계속 파악 중이기 때문에 우선 경찰서로 안내해 DNA 샘플 대조를 하고 있다”며 “샘플 대조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날 헤럴드경제가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현재 각 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시신은 화성중앙종합병원 4구, 화성유일병원 4구, 베스티안서울병원 1구, 교원예움 화성장례식장 5구, 송산장례식장 6구, 함백산 장례식장 3구 등이다.

26일 오전 신원미상 사망자들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화성중앙종합병원 장례식장 빈소 모습. 정호원 기자

이번 참사로 희생된 망자들은 전곡산업단지 내에서도 외부와 큰 교류 없이 지냈다는 게 인근 업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화재 현장에서 200m 인근에 위치한 한 식당업주는 이날 오전 헤럴드경제와 만나 “아리셀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밖에 나와 식사를 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통근버스로 출퇴근하면 곧장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식사도 회사 내부에서만 해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산단 내 위치한 업체 상당수가 일용직 외국인 근로자 파견을 받고 있을 것”이라며 “애초에 산단 위치 자체가 시내와 상당히 떨어져 있고, 버스도 제대로 오지 않아 일하겠다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오전 10시 31분께 경기 화성시 소재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번 화재는 공장 3동 2층에서 리튬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급격히 확산했다. 사망자 다수는 2층에서 리튬 배터리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작업 등을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화재로 사망한 근로자는 한국인 5명을 포함해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 등으로 외국인이 유독 많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취업했을 이들 근로자들은 황망한 사고로 목숨을 잃고 아직까지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yklee@heraldcorp.com

won@heraldcorp.com

kimdoy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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