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외동딸·한살 터울 조카 한순간에 잃었다… “믿기 어려워 눈물도 안나”
“외동딸과 전날밤까지도 연락했는데...”
26일 오전 8시 경기 화성시 모두누림센터 5층 야외 정원에서 만난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희생자 A(29)씨 아버지 B씨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유족이 B씨에게 담배를 권했으나 극구 사양했다.
그는 “아직도 너무 황망하고 믿을 수 없다”며 입을 열었다. 딸이 일하는 공장에 불이 났다는 걸 알게 된 건 사고 당일 오후였다. 평소와 같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오후 2시쯤에 동서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 살며 수도권 공사현장 등에서 막일을 한다.
동서의 전화는 다급했다. “뉴스에서 아리셀 공장에 큰불이 났다고 한다. 따님이 일하는 회사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라 딸에게 수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공장에 전화도 걸었으나 역시 불통이었다. 결국 경찰에 연락했으나 ‘확인 중’이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결국 하던 일을 접고 사고현장인 화성 공장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찰에게 “딸이 사고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도저히 믿기 어려워 눈물도 안 나왔어요”.
그의 딸 A씨는 지난 12월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먼저 건너 온 부모님과 만나게 됐고, 직장도 구했다며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딸 A씨는 평소에 과묵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는 “일이 많이 힘들었을텐데 평소에 내색도 안 하고 자기 할 일을 묵묵하게 했지요. 이런 딸이 늘 대견하고 안쓰러웠죠”라고 말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사고로 A씨의 사촌인 C(28)씨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외동딸인 A씨처럼 C씨 또한 외동아들로, 역시 미혼이라고 한다. C씨는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작년에 한국에 건너와 공부를 하다가 사촌누나인 A씨를 따라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 이와 같은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A씨의 유족이라 밝힌 박모(65)씨는 “둘이 같은 공장에서 이런 참변을 당할 줄 몰랐다”며 “아직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해 괴롭다”고 했다.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 리튬 배터리 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숨졌다. 다만 사망자의 시신 훼손이 심해 26일 오전 기준 수습된 시신 중 신원이 파악된 시신은 단 3구뿐으로, 모두 내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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