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 사태' 롯데리아 '오징어 버거' 개발자는 왜 다리와 외로운 싸움을 펼쳤나 [New & Good]
유럽식 튀김 칼라마리서 아이디어
오징어 다리 넣어 시각적 즐거움 선사
우엉·라면·라이스·밀리터리버거...
롯데리아 1990년대부터 이색 시도
한국적 재료로 '토종 브랜드' 이미지 돋보이게
먼저 오징어 다리를 튀기고요. 빵에 하나씩 조합을 해보죠. 갈릭 아이올리 소스에 채소를 올리고 튀김을 얹습니다."
양정호 롯데GRS 상품개발팀 책임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GRS 본사 개발실에는 고소한 오징어 다리 튀김 냄새가 진동했다. 기자와 만난 양정호 QSR상품개발팀 책임이 한정판 신메뉴 '오징어 얼라이브 버거'를 만드는 법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여느 햄버거 만드는 방식과 비슷해 보이지만 두툼한 고기 패티에 오징어 다리 튀김까지 올라가니 더 맛깔나는 모양새의 햄버거가 탄생했다. 기획부터 개발을 도맡은 양 책임은 "햄버거를 즐겨 먹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타깃으로 삼아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풍성한 햄버거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2003년 '원조 오징어 버거'와 무엇이 다를까
롯데리아가 5월 30일 출시한 오징어 얼라이브 버거는 출시 후 11일 동안 70만 개 넘게 팔렸다. 올 초 선보인 한정판 메뉴 '왕돈가스 버거'와 '전주비빔밥 버거'는 판매 2주 동안 각각 55만 개, 60만 개가 팔렸으니 확실히 고객 반응이 더 뜨거운 셈이다. 해당 메뉴는 물량 부족으로 출시 2주 만에 판매 중단에 들어가 24일부터 판매가 재개된 상태다.
이전부터 롯데리아에서 판매와 단종을 반복해왔던 오징어 버거와는 엄밀히 따지면 다른 메뉴다. 양 책임은 "과거 오징어 버거가 마니아 층에게 사랑받았다면 이번엔 고객층을 더 넓히는 게 목표였다"며 "고기 패티를 추가한 햄버거까지 오징어 버거를 네 가지 종류로 세분화해수산물이나 매운 소스를 못 먹는 고객까지 부담 없이 찾게 된 것 같다"고 인기의 배경을 설명했다.
롯데리아는 2003년 웰빙 열풍을 반영해 오징어 버거를 처음 내놓았고 2008년에는 매운 소스를 곁들인 '불타는 오징어 버거'로 큰 호응을 얻었다. 오징어 버거는 2017년 생산을 멈췄지만 2019년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진행한 투표에서 '다시 맛보고 싶은 레전드 버거'로 꼽히면서 재출시됐다.
기존 오징어 버거는 오징어 연육을 다져 넣은 패티를 빵 사이에 끼워 넣은 형태였다. 오징어의 풍미는 있었지만 겉으로만 봐서는 새우버거와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고민하던 양 책임은 유럽식 오징어 튀김인 칼라마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징어 다리의 원래 모양새를 그대로 살리면 시각적으로 눈에 띌뿐더러 씹는 맛까지 더해질 것이란 발상이었다.
그러나 오징어 다리를 다루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징어 다리마다 크기와 길이가 제각각이라 비슷한 사이즈로 규격화하기 어려웠던 것. 협력사와 조율해 오징어 다리를 적당한 크기와 모양으로 맞추는 데만 4개월이 걸렸다.
그런가 하면 오징어 다리를 최대한 두껍고 커 보이게 하려고 다리 10개를 모두 살려 튀겨보기도 했다. 양 책임은 "다리 10개를 다 사용했더니 외형이 부담스럽고 소비자 가격도 올라가더라"며 "큰 오징어 다리를 5, 6개 정도 잘라 넣었더니 훨씬 먹음직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번 신메뉴는 크게 매운맛과 갈릭맛으로 나뉜다. 갈릭맛의 소스는 칼라마리와 어울리는 '아이올리 소스'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마늘 맛을 추가해 '갈릭 아이올리 소스'를 만들고 느끼하거나 질리는 걸 막기 위해 케첩을 추가했다. 오징어 다리와 함께 들어가는 소고기 패티는 평소 매장에서 쓰던 것이다. 기존 식재료를 활용해 단가를 낮추면서 보다 풍성한 햄버거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라면버거·밀리터리 버거까지…롯데리아, 파격 시도 이어가는 이유
롯데리아의 이색 시도는 꽤 오래전인 1990년대 시작됐다. 1996년 '우엉버거'를 시작으로 '라이스버거'(1999년), '라면버거'(2015년), '밀리터리버거'(2020년) 등 한국적 맛과 개성을 입힌 메뉴를 꾸준히 선보여 화제를 불렀다.
롯데리아가 잠깐 팔고 마는 한정판 메뉴 개발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양 책임은 "롯데리아는 그동안 맛있는 즐거움을 주는 메뉴들로 고객과의 소통을 확대했다"며 "이런 유쾌한 소통이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결국에는 한 번 더 매장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면서 제품의 생명 주기가 짧아져 한정판 메뉴가 효율적인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시도는 한국 최초의 햄버거 프랜차이즈로서 여느 경쟁사보다 한국인의 입맛을 가장 잘 맞춘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적 식재료를 적용하면서 토종 브랜드로 정체성을 강화해가는 것이다. 롯데리아는 지역 맛집과 협업하는 '롯리단길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사이드 메뉴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시적으로 선보인 청주의 '매운 만두'와 부산의 '깡돼후 돼지후라이드'는 판매 기간 각각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돌파했다. 맛에 있어 글로벌 기준을 맞춰야 하는 다른 외국계 햄버거 프랜차이즈와 달리 롯데리아는 정형화된 틀 없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 있는 구조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지난해 출시된 얼얼한 맛의 '마라로드 버거'와 '불고기 버거 익스텐션'도 양 책임의 손길이 닿은 메뉴이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요소를 살리면서도 Z세대 입맛에 맞는 이색 메뉴를 꾸준히 개발한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양 책임은 "마케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색 메뉴가 흥행하려면 무엇보다 입소문을 타야 한다"며 "그동안 세상에 없던 햄버거로 고객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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