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달래기용 상법개정 세미나…당근책 제시한 이복현 원장

김보라 2024. 6. 2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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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기업활동 저해하는 법‧제도 장애요인 제거해야"
기업측 "20년간 지배구조개선 노력에도 증시는 제자리"
전문가들 "경영권 방어 수단‧상속세 완화 등 보완 필요"
26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금융감독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개정 필요성을 언급해 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기업 활동의 숨을 트여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한국증시 저평가(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면서도 기업 활동 예측가능성을 저해해온 법적‧제도적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하되 기업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당근책을 내주자는 것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코스닥협회‧한국경제인협회는 26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을 담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그동안 반대 입장을 피력해 온 상장기업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12일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 주최로 열린 상법개정 세미나에 이어 이번 두 번째 상법개정 세미나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상법개정은 글로벌 스탠다드…기업 장애물은 제거해야

축사를 맡은 이복현 원장은 "우리 자본시장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사회의 기업 및 주주들에 대한 책임, 모든 주주들이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G20(주요 20개국)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기업지배구조원칙을 예로 들었다. 해외에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 입법사례가 없다는 일부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 원장은 지난 14일 상법개정을 주제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솔직히 주요선진국에서 너무 당연히 여겨진다"며 "일부 논객들이 해외에는 이사의 주주충실의무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건 유감스럽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이 원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기업 활동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각종 법, 제도 등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국제적 정합성이 부족한 과도한 규제나 세금 부담 등 그동안 한국적 기업지배구조 특수성과 맞물려 기업 활동 예측 가능성을 저해해 온 다양한 법적‧제도적 장애요인은 제거할 필요가 있다"며 "창의적‧모험적 기업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제도개선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원장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개정을 하되 반대급부로 배임죄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원장은 당시 간담회에서 "상법개정으로 소액주주 보호장치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배임죄 처벌을 없애거나 배임죄의 기준을 명확히 해 형사처벌을 보류하는 것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번엔 배임죄 폐지 꺼내든 이복현…"세상 어디에도 없는 제도"(6월 14일)

상법을 개정하되 이로 인한 기업들의 우려가 크니 그 당근책으로 배임죄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기업에도 당근책을 주자는 이복현 원장의 입장은 두 번째 상법개정 세미나에서도 이어졌다. 기업들, 당근 줘도 상법개정은 싫다

이 원장의 당근책 제시에도 기업측 입장을 대변하는 참석자들은 주주에 대한 이사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에 난색을 표했다. 이미 지난 20년 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해온 만큼 기업 경쟁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구용 상장사협의회 회장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20여년 간 이어졌음에도 국내 증시는 제자리걸음 중"이라며 "기업경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철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총괄대표는 "이번 상법개정은 장기적 기업 발전을 저해하고 경영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기업들의 신속한 경영판단이 어려워지고 이사회의 정상적 의사결정도 온갖 소송과 사법 리스크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입법례는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 한정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강조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이사 책임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주식투자 인구가 1400만명이 넘고 주식소유 목적도 제각각인데 이사가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권 교수는 또 "주식회사는 채권자, 소비자, 지역사회, 정부 등 여러가지 이해관계자가 있음에도 왜 이사회와 계약관계가 없는 주주만 비례적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오히려 이사와 이해관계만 따지면 채권자, 근로자는 왜 논의에서 빠져있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경영권방어, 상속·증여세 개편 등 보완책 필요 

반면 주주에 대한 이사충실의무를 담은 상법개정에는 동의하지만 기업들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성부 KCGI 대표는 "해외도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가 포함되고 설사 규정하지 않더라도 주주가 포함된다는 것으로 당연히 해석하고 있다"며 "다만 상속세 및 증여세는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야 하고 배당소득세 역시 분리과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충실의무 규정은 일반규정이기 때문에 구체적 사안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며 "상법 개정이 구체적 상황별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공적인 기업 밸류업을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경영권 방어법제 구축이 필요하다"며 "지배구조개선은 경영권에 대한 위협요인으로 기능할 수 있는 만큼 방어법제의 개선도 병행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현재 코리아디스카운트에 영향을 주는 세목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상속세와 증여세"라며 "고세율, 최대주주할증 등 가업상속공제의 불합리한 요인으로 기업승계의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본부장은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는 경영 축소나 매각을 유인해 기업의 유지‧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기업승계를 원활히 하고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위해 현행 상속세 과세체계의 손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지현 헥토이노베이션 상무는 "이사의 경영적 판단은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똑같이 만족시키기 어렵다"며 "기업의 주주가치제고 노력과 함께 코스닥 밸류업 ETF활성화 등 종합적인 투자환경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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