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벼 고고학 연구로 작물화 비밀 밝힌 中 과학의 '힘'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4. 6.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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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원전 7500년 이전 1000년 동안의 중국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현재로서는 중국의 식량 생산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동시대에 시작되었는지 조금 빠르거나 늦었는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에서

지난주 약간 놀라운 과학 뉴스가 나왔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발간하는 스프링거 네이처가 지난 18일 발표한 각국의 과학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2024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이 처음으로 종합 순위에서 미국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각 분야 상위 학술지 145종에 실린 논문 7만 5707편을 분석한 결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1위를 지켜온 미국이 2위로 밀려난 것이다. 연구기관 순위는 더 놀라운데 상위 10개 기관 가운데 7개가 중국 소속으로 1위가 중국과학원이다. 참고로 한국은 작년과 같은 8위이고 기관 가운데는 서울대가 59위로 가장 높다. 

첫 문장에 '약간'이란 표현을 쓴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뉴스는 아니어서다. 지난 2022년 출간한 책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약진에 이미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2년 작물로는 처음 벼의 게놈이 해독된 이래 10년 동안 해독된 작물은 10여 종에 그쳤고 대부분 주산지인 나라가 주도했다. 포도 게놈 해독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공동연구팀의 프로젝트인 식이다.

게놈 해독 효율이 올라가고 비용이 떨어지면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두 번째 10년 동안 이전 10년의 10배인 100여 종의 작물 게놈이 해독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 연구진의 성과였다. 그뿐만 아니라 벼 같은 주요 작물은 여러 지역에서 채집한 재래종 등의 게놈을 추가로 해독해 품종개량에 활용하는 등 응용연구도 활발한데 역시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18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은 다양한 품종의 벼 3000여 개체(유전자원)의 게놈을 해독해 참조 게놈에는 없는 유전자 1만 2000여 개를 발굴했다는 내용이다. 다국적 공동연구팀의 성과이지만 중국의 엄청난 연구 인력과 인프라, 예산이 없었다면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 만 1000년 전부터 작물 벼 재배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도 중국 과학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4 네이처 인덱스에서 최고 연구기관으로 뽑힌 중국과학원 산하 지질학·지구물리학연구소가 주도한 중국 공동연구팀의 결과로 동아시아에서 벼농사 전개 과정을 재구성한 고고학 분야의 논문이다.

이에 따르면 벼농사를 시작한 건 1만 3000년 전이고 작물 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1만 1000년 전부터다. 동아시아에서 벼가 작물화된 시기가 서아시아에서 보리와 밀이 작물화된 시기와 비슷하다. 서아시아의 보리나 밀보다 짧게는 1000년에서 길게는 3000년 늦은 1만~8000년 전 벼가 작물화됐다는 기존 시나리오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작물 벼와 그 조상인 야생 벼를 구분하는 여러 특징 가운데 고고학 유적지에 남아있는 기동세포의 식물석에 주목했다. 식물석(phytolith)이란 지하수의 실리카 성분(규산)이 침투해 화석화된 식물조직이다.

기동세포(bulliform cell)란 볏과 식물 잎의 위쪽 면 잎맥 주변에 있는 큰 세포로 액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건조해지면 물이 빠져나가 액포가 쪼그라들어 부피가 줄면서 잎이 위로 말린다. 그 결과 수분 손실을 막고 직립성을 도와 식물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작물 벼는 야생 벼보다 건조할 때 잎이 더 잘 말리는데 여기에는 기동세포 생김새의 차이도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동세포 한쪽 표면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생긴 구조가 있는데 평균 개수는 작물 벼가 더 많지만 일정하지는 않다.

기동세포의 비늘 개수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야생 벼는 4~33%이고 작물 벼는 40~67%이다. 따라서 유적지에서 나온 기동세포 식물석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을 분석하면 야생 벼인지 재배 벼인지 알 수 있다.

북위 29도인 양쯔강 하류 지역 상산 유적지 8개 구역(C, D)과 허화산 유적지 5개 구역(E)에서 채취한 시료 359개를 분석한 결과 약 2만4000년부터 야생 벼 씨앗(쌀) 채집이 시작됐고 작물 벼는 약 1만1000년 전부터 재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늦어도 10만 년 전부터 야생 벼가 자생한 것으로 알려진 양쯔강 하류 지역인 상산(上山) 유적지와 허화산(荷花山) 유적지의 퇴적층을 주목했다. 상산의 퇴적층은 3.5m 두께로 약 10만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데 8개 구역으로 나뉜다. 허화산의 퇴적층은 2m 두께에 약 9만 년이 걸쳐있고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연구자들은 상산 8개 구역에서 240개, 허화산 5개 구역에서 119개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볏과 식물의 잎에 있는 기동세포는 가물 때 잎이 말리게 해 수분 손실을 막는 역할을 하고 직립성에도 영향을 준다. 벼의 기동세포에는 비늘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는데, 야생 벼가 작물화되면서 평균 개수가 늘어났다. 즉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야생 벼(wild rice)는 4~33%이고 작물 벼(domesticated rice)는 40~67%다. 따라서 유적지에서 나온 기동세포 식물석은 야생 벼인지 작물 벼인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플러스원 제공 

그 결과 예상대로 모든 구역에서 벼의 식물석이 존재했고 1만 1000년 전이 돼서야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이 무렵부터 작물화된 벼를 경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까지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나온다. 약 2만 4000년 전부터 쌀의 겉껍질, 왕겨의 식물석이 크게 는 것이다. 반면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은 20% 내외로 여전히 야생 벼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야생 벼에서 씨앗(쌀)을 채집해 먹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여태 지나쳤던 야생 벼에 새삼스럽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 기후변화로 야생 벼 씨앗 채집

이 시기는 마지막 빙하기(11만 5000~1만 1700년 전)에서도 가장 추웠던 마지막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2만 6000~1만 9000년 전)로 육지 면적의 30%가 빙하에 덮여있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추위를 피해 저위도 지역으로 이동했고 양쯔강 하류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아졌다. 

결국 먹을 게 궁해진 수렵채집인들은 야생 벼의 씨앗, 쌀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 서아시아에서도 야생의 보리와 밀을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최대 빙하기라는 기후변화가 아시아 일대에서 볏과 식물의 씨앗을 채집해 먹기 시작하게 한 계기였던 셈이다.

마지막 최대 빙하기가 끝나고 이전 빙하기 기후로 돌아가 수천 년이 지난 뒤 이번에는 마지막 아빙기로 불리는 지구온난화 시기(1만 4700~1만 2900년 전)가 찾아왔다. 이때 북반구 평균 기온이 2℃나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다시 북쪽으로 퍼져나갔다.

그 뒤 다시 영거 드라이아스라고 부르는 일시적 빙하기(1만 2900~1만 1700년 전)가 찾아왔고 이 시기를 끝으로 마지막 빙하기도 막을 내리고 간빙기(또는 후빙기)가 시작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아빙기를 거치면서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20에서 34%로 높아졌다. 여전히 야생 벼의 범위이지만 뭔가 변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이전까지 채집만 하다가 야생 벼의 씨앗을 직접 심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이 기간 유적지의 왕겨 식물석도 많아져 식량에서 쌀의 비중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는 동아시아인이 쌀을 식량으로 이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 최대 빙하기(노란색)로 양쯔강 하류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약 2만4000년 전부터 야생 벼의 씨앗, 즉 쌀을 채집해 먹기 시작했다(아래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림으로 색 표시는 오류다(자생이므로 파란색으로 나타내야)). 그 뒤 마지막 아빙기(BA. 분홍색)를 겪으며 약 1만3000년 전부터 야생 벼를 재배했고(아래 왼쪽에서 두 번째) 홀로세가 시작한 직후인 약 1만1000년 전부터 작물 벼를 재배했다(아래 맨 왼쪽). 이 기간 기동세포 비늘 개수가 9개 이상인 비율을 보면 마지막 아빙기부터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해 약 1만1000년 전 40%를 넘어섰다(위). 사이언스 제공

고기후 분석 결과 마지막 아빙기 동안 동아시아 몬순이 강해져 강수량이 늘었다. 그럼에도 유적지의 나무와 수생식물 흔적은 오히려 줄었다.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물을 끌어오다 보니 주변은 오히려 물이 부족해졌다는 말이다. 한편 재배 환경 역시 물이 부족한 때가 많아 결국 잎이 잘 말려 가뭄을 견디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그 결과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한편 이어지는 영거 드라이아스 동안 기온이 내려가며 양쯔강 하류 지역의 야생 벼 재배가 크게 줄었고 기후변화가 선택압으로 작용해 벼의 유전적 다양성도 줄어들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변화가 훗날 간빙기가 시작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부들이 재배하는 야생 벼에서 작물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개체를 선별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신석기 문화가 벼 작물화 촉진

이 과정에서 신석기 문화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1만 17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하면서 양쯔강 하류 일대에서 토기와 절구 등 농업 관련 도구들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며 오늘날 '상산 문화'라고 부르는 신석기 시대가 시작됐다.

이때 날카로운 돌낫도 만들어졌고 그 결과 벼 밑동을 잘라 수확하기 시작하면서 탈립성, 씨앗이 여물면 흩어지는 성질이 작은 변이체가 선택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1만1000년 전부터 작물 특성을 지닌 벼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고 고고학 유적지에 그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볏과 식물(벼, 밀, 보리, 기장)을 식량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약 2만 4000년 전으로 거의 같고 작물화도 약 1만 1000년 전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게 공교로운 우연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신석기 문화 교류의 결과임을 고고학 증거를 분석해 보여줬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논문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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