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우산[유희경의 시:선(詩:選)]

2024. 6. 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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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비가 많다.

우산을 두고 왔는데 거기 있느냐 묻는다.

전화를 끊고 우산을 집어 온다.

노시인의 우산을 보관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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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의 하향하는 곡선/ 그 친밀한 밀착감 속에서/ 착각보다는 조금 더/ 숭고한 기분으로서의// 꼭지와/ 꼭지에 이끌린 온몸이 살짝 곤두서 있고// 그 아래/ 투둑 툭 툭/ 보호받는 나의/ 얌전하고 조용한 세계가/ 언제나 여기에 있고’

- 조성래 ‘몰두’(시집 ‘천국어 사전’)

제법 비가 많다. 이른 장마가 찾아올 거라는 예보를 보았다. 유난히 무더운 유월을 보내는 중이라 그런지 큰 감흥이 없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적응해서는 안 되는 이상기온에도 적응해가는 모양이다.

서점 전화기가 울린다. 건너편 목소리가 퍽 절박하다. 우산을 두고 왔는데 거기 있느냐 묻는다. 그러고 보니 우산꽂이에 삐쭉하니 혼자 도드라진 우산이 있다. 잠시 비 그쳤던 사이 두고 간 모양이다. 지금 찾으러 오겠다는 이의 목소리에 화색이 느껴진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전화를 끊고 우산을 집어 온다. 살펴보니 그럴 만큼 고급 우산이다. 아껴 사용한 티가 역력하다. 누군가로부터의 귀한 선물인 모양이네. 문득 예전 일이 생각난다. 노시인의 우산을 보관한 적이 있다. 내가 일하던 출판사에 우산을 놓고 간 그가 전화를 걸어 우산을 맡아 달라 부탁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우산이었다. 며칠 뒤 우산을 찾으러 온 그가 유난을 떨어 미안하다며 웃었다. “나 어릴 적엔 우산만큼 귀한 게 또 없었어요. 그게 습관이 되어서 우산을 잃어버리면 무척 불안해지지요.”

정말 귀한 건 우산마저 아끼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없어서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버려지고, 그 때문에 우리는 이상기온 속에 살게 된 것 아니겠나. 내 우산을 찾는다. 손잡이 끝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노시인의 말씀에 탄복을 받아 적어놓은 것이다. 그리해놓은 뒤론 우산을 잃어버린 적 없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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