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밀양 10년, 여전히 살아내며 싸우는 사람들

한겨레21 2024. 6. 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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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10년, 여전히 살아내며 싸우는 사람들

2024년 6월8일, 전국에 비 예보가 있었다.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던 중에, 경남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이는 날만 되면 비가 오다니.

이날 동행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 동료들로, 10년 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밀양의 친구들' 집회를 함께 기획한 희원과, 이번 희망버스에 타며 밀양 투쟁에 관심 갖게 된 슬기다.

10년 전 BIYN은 기본소득 청년단체로서 왜 밀양 주민들과 연대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토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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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2024년 6월8일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공원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에 참여한 김장옥(80)씨. 한겨레 최상원 기자

2024년 6월8일, 전국에 비 예보가 있었다.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던 중에, 경남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이는 날만 되면 비가 오다니. 하지만 내 기억 속 잊지 못할 집회엔 대부분 비가 왔다. 다 같이 비 맞으며 걷고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면 서러움과 분노, 연대의 황홀함과 빗속의 해방감 혹은 축축함을 온몸으로 기억하게 된다.

마음의 고향

이날 동행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 동료들로, 10년 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밀양의 친구들’ 집회를 함께 기획한 희원과, 이번 희망버스에 타며 밀양 투쟁에 관심 갖게 된 슬기다. 10년 전 BIYN은 기본소득 청년단체로서 왜 밀양 주민들과 연대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토론했다. 포클레인과 불도저에 맨몸으로 맞서는 할머니들의 사진을 보고 일단 밀양에 다녀온 뒤였다. 밀양과 서울을 오가며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우리의 운동을 확장했다. 미래세대를 위한 공적 안전망을 요구하려면 불평등하고 위험한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어디에서 만들어져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면 훤히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밀양 할매들이 알려주기 전엔 몰랐다. 우리의 일상을 작동시키는 전기가 발전소와 송전선로 인근 주민, 전력노동자의 피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말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더니 꼭 전기가 오는 길을 되짚어가는 듯했다. 그 끝에는 핵발전소들이 있지만, 일단은 밀양에서 내렸다. 여수마을 송전탑을 가까이 보러 갔다.

비 때문에 더 애틋해진 들꽃과 달리 강한 전자파 때문에 기괴한 소리를 내는 철탑이 논 한복판에 박혀 있었다. 이걸 세우려고 주민들에게 합당한 설명도 토론도 없이 다짜고짜 돈부터 들이밀며 합의를 종용했던 한국전력. 생업인 농사, 자식들 직장, 마을의 여러 자원을 볼모로 잡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겠다고 고령의 주민들을 협박해온 그들의 수법은 지금도 전국에서 반복되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은 새울원전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가 생산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었다. 대도시에서 필요한 전기를 해당 지역에서 분산해서 생산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부당한 ‘나랏일’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서로 의지하고 살던 시골 마을을 산산이 조각내고, 아끼던 사람들의 바닥을 보게 하는 게 국가기관이 몇십 년간 해온 일이라니 정말로 가슴이 미어진다. 다른 지역에서 “결국 밀양도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 포기하고 합의하라”며 더욱 뻔뻔해졌다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밀양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더 볼 것도 없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오산이다.

10년 전엔 깊은 산에서, 지금은 상호부조와 자치가 무너진 마을에서 매일 살아감으로써 싸우는 주민들이 있다. 그들과 연대하고자 그립고 반가운 마음으로 전국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를 착취하고 미래를 저당 잡아야만 쓸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에 공모하기를 그만두려는 이들의 마음의 고향이 밀양이다.

이제는 송전탑 뽑아내는 시간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슬기는 <전기, 밀양–서울>(김영희 저)을 읽으며 상상했던 할매의 목소리와 기운을 실감하며 고무됐다. 나 또한 밀양에 처음 온 날이 떠올랐다. 산을 에워싼 경찰들과 힘겨운 대치 상황이 일단락되고 어둠이 내린 뒤, 나눠주신 막걸리 사발을 들고 고개를 들자 내게로 쏟아지던 무수한 별들. 낮의 아비규환과는 너무도 다른 밤하늘을 보며 주민들이 지키고 싶은 게 뭔지 헤아려봤다. 그 뒤 10년은 내게 밀양 어르신들께 배운 운동과 연대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10년은 송전탑을 뽑아내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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