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간 사연, 이스탄불 금각만 이야기[함영훈의 멋·맛·쉼]
-보스포러스해협-골든혼에 싸인 신시가지
[헤럴드경제(이스탄불)=함영훈 기자] 이스탄불의 골든 혼(Golden Horn)은 마치 하구 처럼 생긴 만(灣)이다. 육지쪽으로 바닷물이 12㎞ 길이로 들어온 곳이다. 영광의 법성포 비슷한 지형이다.
수심은 40m, 최대 폭은 800m인 자연항만. 이를 기준으로 남쪽은 아야소피아(성소피아성당), 히포드럼광장 등 구시가지이고, 북쪽은 탁심광장, 이스티클랄, 갈라타포트가 있는 신시가지이다.
▶황금 뿔 이야기= 물길 지도로 보면 보스포러스해협에서 서쪽으로 뿔처럼 튀어나왔다. 해질녘, 햇빛이 수면에 반사돼 황금빛으로 변하기에 금빛 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국 등 동양인들은 금각만(金角灣)이라 이름 붙인다.
골든혼 주변엔 잔디밭, 분수대, 예쁜 별장, 사원과 성당이 들어서 휴식하거나 산책하기에 좋다. 밤에는 다리 밑 먹자골목, 만 주변의 선술집 등이 시끌벅적하다.
돌궐(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할 때 거함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함대를 정면으로 상대했다가는 질 것이 뻔해보이자, 배를 산으로 끌고 올라간 뒤 썰매타듯 내려가, ‘골든 혼’에 띄운 다음, 후방에서 기습해 로마 해군을 무찌른 이야기로 유명하다.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작전’이다. 오스만투르크가 승기를 잡은 것은 이 작전 때문이고 결국 로마제국이라는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신,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아타투르크 다리, 할리치 다리는 과거 큰 배가 드나들 때, 부산 영도대교 처럼 상판을 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지상철 건설 이후 고정시킨 상태다.
이스탄불 신시가지는 동서로 난 골든 혼과 남북으로 뚫린 유라시아 경계, 보스포러스 해협이 ‘누운 L’자 모양으로 감싸는 지역이다. 여기엔 중세, 근세 역사유산도 있지만 현대 감각의 노는 곳이 더 많다.
▶모든 길은 탁심으로 통한다= K-드라마 ‘빈센조’의 주인공 송중기가 거액의 비자금을 인출해 큰 문을 활짝 열고 나간 돌마바흐체 궁전, 작고 빨간 단거리 트램이 트레이드 마크인 서울 명동 느낌의 이스티클랄 거리, 요즘 뜨는 빈티지 젊음의 광장 ‘테쉬비키예’거리, 쇼핑-미식-산책-크루즈탑승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칼라타 포트가 이 구역에 있다.
구시가지에 로마시대 마차경주장 히포드럼 광장이 있다면 신시가지엔 탁심광장이 있다. 탁심(Taksim)은 ‘분할, 분배’를 의미하는 아랍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는 15세기 이후 이곳이 이스탄불 북쪽에서 온 수로(水路)가 도시의 각 지역으로 갈라져 물을 분배하는 허브였기 때문이다. 이런 수도 체계는 술탄 메메드 1세(재위 1413-1421)가 세웠다.
튀르키예 관광청과 ‘투어 이스탄불’, ‘스탑오버’ 환승객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터키항공에 따르면, 오늘날 탁심광장은 이스탄불의 교통, 상업, 관광의 중심지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지하철 노선인 튀넬(Tünel, 1875년)의 정차역이 있고, 이스티클랄 거리로 이어져 있으며, 수 많은 상점, 호텔, 여행사 및 항공사, 요식업소 등이 밀집해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 와서 젤리인 로쿰, 튀르키예식 묽은 치즈인 카이막, 꿀 등을 쇼핑한다.
광장 중앙에는 1928년에 세워진 튀르키예 공화국 기념비(Cumhuriyet Anıtı)가 있다. 해매다 신년 행사가 이 곳에서 개최되며, 다양한 거리 행진과 공공행사, 집회 등이 열린다.
▶이스탄불 명동거리= 3㎞ 길이의 이스티클랄 거리는 서울 명동, 부산 서면, 광주 충장로 같은 곳이다. 수십개의 부티크, 음반매장, 커피숍, 영화관, 미술관, 도서관, 펍, 나이트클럽, 제과점이 있다.
거리 곳곳에서 아마추어 아랍가수들이 버스킹하는데, 동양인들이 듣기에 민요 같은 노래인데 버스킹 현장에 모인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사실 요즘 ‘조선 팝’ 가수라 불리는 국악인도 중세, 근세에는 아이돌이었다. 이 거리의 트레이드 마크는 주홍색 미니 트램으로, 인생샷의 좋은 소품이 되어준다.
이 거리에 있는 세인트 앙투안 성당은 이슬람이 주류인 이스탄불에서 크리스트교 신도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투르크가 지배하기 이전인 1230년 목조로 지어진 크리스트교회이다. 17세기에 화마를 입고 무너졌지만 복원을 바라는 크리스트교 신도들의 의지에 이슬람 리더들이 찬동해, 자리를 약간 옮겨 1724년 재건했다. 재건 당시 붉은 벽돌로 새롭게 했으며, 어느 종교 신앙자이든 촛불을 켜고 기도한다.
이스티클랄 거리 인근엔 16세기말에 후세인 아가에 의해 지어진 아가 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의 정원에는 건축가 시난이 설계한 샘이 명물이다. 람보 먹자골목은 늘 북적인다.
워낙 유명한 돌마바흐체 궁전은 보스포러스 해협의 신시가지 연안에 있다. 동로마제국 시절 작은 항구였던 지역을 오스만제국이 19세기에 메운 다음 슐탄의 별장으로 지었다. 돌마바흐체는 글자 그대로 ‘땅을 메워 만든 정원’이라는 뜻이다.
▶여러 종교, 여러 민족이 공생, 알록달록 알바니아 마을= 탁심광장에서 북서쪽으로 30㎞ 가량 떨어진 아르나부트쾨이(Arnavutköy)는 아름다운 해안 마을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19세기 말과 20세기초에 지어진 아름다운 목조 주택이 줄지어 있으며, 그 중 다수는 아르누보 스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체코 알폰스무하가 이끈 아르누보는 숱한 생활공간, 용품에 예술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다.
아르나부트쾨이의 원뜻은 알바니아 마을이다. 15세기부터 슐탄의 요청에 따라 오스만투르크에 일하러 왔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이방인들이 편하게 들어가 살수 있었기에 기독교인, 아르메이니아인, 유대인 등 돌궐족·이슬람 아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물론 튀르키예인도 살았지만, 높은 비율로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 다양한 문화와 양식이 반영된 건축물들이 하모니를 이룬다.
모스크, 성당, 유대교 회당이 공존하는 ‘문명 화해’의 이상적인 축소판 마을이다.
해안 도로에는 일반적으로 낚시꾼이 늘어서 있으며, 이곳 앞바다(보스포러스 해협)를 오가는 작은 어선의 어부들이 낚은 생선을 이 마을 레스토랑에 팔기도 한다. 페리 터미널도 있다.
1863년에 미국 이외 지역 중 가장 오래된 미국 학교인 로버트 칼리지가 세워지기도 했다. 칼리지는 튀르키예 토착 대학과 병합됐지만, 같은 이름의 고등학교는 미국학교로서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수산물 외에, 보통의 딸기보다 약간 작은 오스만 딸기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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