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14년 만에 끝난 ‘위키리크스’ 설립자의 도피극

정미하 기자 2024. 6. 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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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어산지, 2006년 위키리크스 설립
2010년부터 美 기밀 수십만 건 폭로
美서 재판 받으면 175년 징역형 예상깨고
美정부와 합의해 간첩법 위반 인정
유죄 인정과 동시에 석방
모국인 호주로 갈 듯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 수십만 건을 폭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53)가 기밀 정보를 획득하고 전파하기 위해 공모한 것에 대한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어산지는 석방될 예정이다. 미국 정부와의 합의로 이뤄진 결과로, 14년 동안 이어진 미국 정부와 어산지의 법적 다툼이 일단락되는 것이다. 어산지는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 5년 동안 복역했던 영국 교도소를 떠나 미국령 사이판에 25일(현지 시각) 도착했다. 어산지는 사이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풀려나면 모국인 호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어산지는 26일 오전 사이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해 미국의 간첩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검은 양복과 금색 넥타이를 매고 출석한 어산지는 법정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내 정보원에게 기밀로 알려진 정보를 제공하도록 독려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미국령 사이판 법원에 26일(현지 시각) 도착했다. 어산지는 미국 국방과 관련된 기밀문서 입수 및 공개 공모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 EPA 연합뉴스

어산지가 혐의를 인정하면서 미국 법무부는 62개월 형을 선고한다. 다만 영국 교도소에서 복역한 5년을 인정받아 바로 석방된다. 이는 어산지가 미 법무부와 플리바게닝(유죄·형량 협상)을 통한 결과다. 그동안 어산지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으면 최고 17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전망과 매우 다른 결과다.

1971년 호주 퀸즈랜드에서 태어난 어산지는 지난 2006년, 내부 고발 웹 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설립했다. 그는 서구의 권력 구조에 도전하고,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위키리크스를 만들었다고 주장했고, 2010년부터 미 국무부와 국방부, 연방수사국(FBI) 등 주요 국가기관 관료들이 주고받은 기밀 문서와 외교 전문을 해킹한 뒤 폭로했다. 당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기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위키리크스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위키리크스는 2007년 미군 헬리콥터가 언론인 2명과 이라크 민간인 여러 명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고, 미국 당국은 간첩 혐의로 어산지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어산지는 미국의 수배, 기밀 폭로와 별개로 지난 2010년 위키리크스 서버를 둔 스웨덴에서 현지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국제 체포 영장이 발부됐고,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어산지는 후원자들 덕분에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2012년, 영국 대법원은 어산지를 스웨덴으로 송환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어산지는 향후 미국으로 송환될 것을 우려해 그해 오토바이 택배 배달원으로 변장해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숨어들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이후 2019년까지 7년 동안 에콰도르 대사관에 머물렀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누오보 성에 어산지의 석방을 축하하는 문구를 조명으로 쏘아올린 모습. / EPA 연합뉴스

하지만 에콰도르는 2019년 4월 11일 어산지의 망명을 철회하고 어산지를 대사관에서 추방했다. 에콰도르가 친미 외교로 돌아선 영향이었다. 이 즉시 영국 경찰은 어산지를 체포했고, 어산지는 런던 벨마시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어산지는 이곳에서 1901일을 보낸 24일 아침, 벨마시 교도소를 떠나 사이판으로 이동했다.

◇ 어산지 모국과 가까운 사이판서 유죄 인정 재판…”사이판에 더없는 기회”

미국 법무부는 2019년, 방첩법 위반 등 총 18가지 혐의로 어산지를 기소했다. 영국에는 어산지의 미국 송환을 요청했다. 각각의 혐의에 대해 미국 정부는 최소 10년 형을 선고했고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가 확정될 경우 어산지는 최대 17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이에 어산지는 미국 본토에서 재판받기를 거부해 왔다. 어산지는 그동안 “자신에 대한 소송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며 “공정한 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미국 정부는 어산지의 미국 송환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어산지의 범죄인 인도 심리는 2020년 2월 시작됐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연기돼 그해 9월에야 재개됐다. 2021년 1월, 영국 재판부가 “어산지의 정신 상태가 미국으로 송환을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라고 판단하면서 어산지의 미국 송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법원이 2022년 4월, 어산지의 미국 송환을 승인하고, 당시 영국 내무장관이었던 프리티 파텔이 범죄인 인도에 서명했다. 이에 어산지는 이의를 제기하고 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지난 3월 고등법원은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 사이 미국 정부는 어산지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석방되는 조건의 합의를 했다. 어산지가 유죄를 인정하는 재판이 미국 본토가 아닌 어산지의 모국인 사이판에서 열리는 것도 양측이 조율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어산지가 사이판의 외딴 미국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며 “팬데믹 이후 관광 산업이 타격을 입은 사이판에 이보다 좋은 광고 기회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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