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 의원이 말하는 넷플릭스가 콘텐츠에 '독' 되는 이유
[국회, 미디어를 묻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글로벌 OTT 저작권·수익배분 문제 "법적 규정부터 만들어야"
"영화산업 지속가능성 위해 영화발전기금의 안정성 보장해야"
[미디어오늘 윤수현, 금준경 기자]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고등학생의 '윤석열차' 풍자 작품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경고 조치를 내린 사건은 윤석열 정부 문화예술계 표현의 자유 위축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명박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유인촌씨는 또다시 문체부 장관에 올랐다. 강유정 문학·영화 평론가는 현 정부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위협받는다고 느꼈고,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강유정 의원은 문화예술계 관련 정책을 중점적으로 내고 있다. 1호 법안은 문화예술계 표준계약서 보급을 위한 '나는솔로 방지법'이었다.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OTT 법적 규정을 통해 창작자 수익 배분, 저작권 문제를 개선하겠다고도 밝혔다. 원내대변인을 역임하며 언론과의 소통도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유정 의원을 만나 문화예술계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진단과 개선방안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회에 오기 전 뚜렷한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
“민주당에서 '문화예술계 인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왔다. 문화예술계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관련 정책을 제안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정치 현안 비평을 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 억압이 많았고, 문화예술가들이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조차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문화예술인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지 고민했고, 선거에 나간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도 하나의 이유였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도 있지만, 언론의 알 권리가 오인됐다. 레거시 미디어가 개인의 사생활까지 무차별적으로 보도하고, 이용자들은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뉴스를 소비하고 있었다. 비평을 넘어, 바꿀 수 있는 건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 코로나19 이후 최근 영화계가 큰 위기에 직면했다. 영화발전기금은 고갈 위기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입장권 부과금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입장권 부과금이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인 만큼, 영화발전기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심성 민생대책이다. 부과금은 입장권 가액의 3% 수준인데, 평균 450원 정도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돈은 한국 영화의 저력을 다지는 종잣돈이다. 문제는 정부가 부과금을 폐지하겠다고만 발표했지,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산으로 부과금을 대체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계획은 모호하다. 부과금 폐지에 대한 대안을 먼저 마련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화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영화발전기금의 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에 대한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대작 영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영화산업 전반의 상황은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올해 1000만 관객 영화가 두 편('서울의봄', '범죄도시4') 나왔지만, 지금의 영화계는 건강하지 않다.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중간 규모의 영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작 영화는 영화산업 성공의 지표가 될 수 없다. 과거에는 대작 영화가 있으면 다른 영화들도 낙수효과를 봤지만, 지금은 소수 영화만 혜택을 보고 있다.”
- 일부에선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OTT에 영화발전기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 정부는 OTT 기업에 영화발전기금을 징수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OTT 부과금 징수를 논의하기 이전에, OTT에 대한 법적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 OTT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데,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선 'OTT는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이며, 말만 오갈 뿐이다.”
-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매절 계약(창작자가 제작비를 받는 대신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OTT에 위임하는 계약)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오징어게임'은 막대한 수익을 거뒀지만, 이에 걸맞은 추가 수익이 제작사에 돌아가진 않았다.
“해외 유명 마트가 한국에 진출하면 한국기업과 비슷한 노동체계를 갖는 것처럼, 넷플릭스는 미국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매절계약을 국내에서 하고 있다. '오징어게임'도 매절계약을 했지 않나. 콘텐츠를 통으로 구입해 그 안의 저작권까지 다 가져간 것 아닌가. 저작권 문제가 불거진 구름빵 사태를 넷플릭스가 그대로 학습한 것 같다. OTT에서 K-콘텐츠가 많이 제작되는데, 이런 식이라면 콘텐츠 수익이 선순환되지 않고 조기 소진 현상이 불거질 수 있다. 물론 글로벌 OTT의 장점도 있다. 기존 콘텐츠 제작 대기업들의 독점을 막고, 힘의 분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자들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 AI 시대가 오면서 창작자들의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AI가 웹소설·웹툰 작가들의 작품을 무단 학습하거나, 음악·소설·웹툰·그림·사진 등 공모전에 AI를 활용한 작품들이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AI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발족했으나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진 않았다.
“AI가 창작자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하는 건 막아야 한다. 산업 발전 속도가 빠르고, 예비 노동자들이 많은 환경에서 개인의 저작권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미국 영화·TV 프로그램 제작자연맹은 지난해 AI 저작권 침해에 대한 문제 해결과 OTT 추가소득 보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실시했는데, 한국 직능단체의 집단적 대응은 미진하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국회 차원에서도 빠른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AI가 만든 콘텐츠에 'Made by AI'를 표기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AI가 만든 작품인지, 사람이 만든 작품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데, AI 작품에 명확한 표기가 있어야 한다.”
- 1호 법안으로 '나는 솔로 방지법'을 냈다. 최근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는 솔로' 작가들이 표준계약서가 아닌 불공정 계약 조건이 담긴 용역계약서로 집필 계약을 맺어 논란이 됐는데, 방송작가를 포함한 문화예술 분야의 표준계약서 사용이 확산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해주는 내용이다. 이 법안을 첫 번째로 낸 이유는.
“표준화된 규칙이나 법이 없으면 상대적 약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표준계약서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다. 하지만 표준계약서 활용률은 분야별로 굉장히 다르다. 영화계의 경우 표준계약서가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봉준호 감독이 2019년 영화 '기생충'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반면 드라마·웹툰 분야는 그렇지 않다. 표준계약서 없이 관례대로, 관습대로 일을 진행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규제가 아닌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표준계약서를 잘 활용하는 사업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법안을 제안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표준계약서가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수년간 KBS '저널리즘토크쇼J' 패널로 출연해 언론을 비평했다. 현재 언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뭐라고 보는가.
“질문의 적절성과 적시성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경우를 봤다. 가령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출입기자를 불러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들어줬는데,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유명인에 대한 무책임한 사생활 보도도 문제라고 본다. 2022년 MBC가 대통령 전용기를 못 탔을 때, 언론사들이 집단 항의를 하지 않은 점도 인상 깊었다. 모두가 연대해 대통령실에 사과를 요구했다면 달라졌을 수 있지 않을까.권력의 '언론 옥죄기'에 대한 대응도 단체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정 한두 곳 언론사가 표적이 돼서 공격받고 있는데, 외롭게 보이기까지 하다.”
- 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언론중재법 개정안)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추진해 언론계 비판을 받았다.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언론에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가 있는 건 맞지만,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소한의 피해구제 차원에서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정보도만으론 완전한 회복이 어렵기도 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면 기사를 출고하기 전 한 번 더 고민하는 관문이 생긴다는 의미가 있다.”
- 하지만 일반 소시민들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 결국 정치인·경제인 등 권력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실제 정청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정부직 공무원 및 후보자, 대기업과 주요 주주와 관련한 언론보도에는 징벌적 손배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권력 악용 방지' 조항이 빠졌다.
“그래서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법률안의 구체적인 부분은 조율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징벌적 손배제가 나온 취지다. 법안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취지는 뒤흔들 수 없다. 언론에 대한 자율규제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면, 언론에 대한 규범들이 잘 지켜졌다면 법안이 발의될 일이 없었을 거다. 언론이 실수를 되돌아보는 마지막 단초가 되길 바란다.”
- 윤석열 정부에서 문화예술 분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우려가 있는데,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통과된다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실 징벌적 손배제가 통과되지 않더라도 수많은 언론사가 고발당하고,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일들이 있다. 징벌적 손배제가 없어도 정부는 개의치 않고 있다. 이미 언론자유는 침해받고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배제를 통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준다면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민주당이 기자들에게 어떤 정당으로 기억되길 원하나.
“'미디어 프렌들리'한 정당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사실 민주당이 언론 친화적이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좋은 정책이 있는데, 긍정적인 부분은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언론이 민주당을 감시·견제하는 건 당연한 역할인데, 긍정적인 관계가 기반이 됐으면 한다. 22대 국회 민주당은 이전과 달라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칙에 대해선 굽히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속도감 있게 처리하려 한다. 지금의 민주당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를 봐주면 좋겠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옛날에는 황석영·김지하·박노해 등 문화예술계의 중심을 잡아주는 문화예술인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중심이 되는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면서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데, 지금은 어렵다.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계를 지탱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현재 민주당에서 유일한 문화예술인인데, 관련 정책 어젠다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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