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쪽샘유적에서 5세기 ‘둘레돌 없는’ 돌무지덧널무덤 최초 확인

장상민 기자 2024. 6. 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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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600년 전 장례문화의 변이 과정을 짐작하게 하는 것으로, '둘레돌(호석·護石)'이 없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이 경주 쪽샘유적에서 처음 발견됐다.

실제 발굴에 참여한 국가유산청 국립경주문화연구소의 정인태 연구사는 "목관묘에서 석실묘로 무덤 양식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돌무지덧널무덤이 다양한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조심스레 추측해본다"며 "쪽샘유적 봉분 발굴이 10% 정도밖에 이뤄지지 않은 만큼 앞으로 4세기 후반의 둘레돌 없는 돌무지덧널무덤이 발견된다면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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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돌(호석)’이 없는 돌무지덧널무덤 J171호(아래 큰 직사각형 무덤)·J172호(위 네모난 무덤 2개) 조사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J172호 부곽(덧널무덤에 딸린 묘)에서 발굴된 말갖춤 및 삼단투창 굽다리접시(오른쪽 아래). 국가유산청 제공
J172호 부곽에서 나온 꽃잎형 선각문 뚜껑. 국가유산청 제공
J172호에서 출토된 삼단투창 굽다리접시. 국가유산청 제공
J172호 부곽에서 발견된 꽃잎형 선각문 뚜껑. 국가유산청 제공

약 1600년 전 장례문화의 변이 과정을 짐작하게 하는 것으로, ‘둘레돌(호석·護石)’이 없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이 경주 쪽샘유적에서 처음 발견됐다.

3세기쯤부터 지배자급 무덤으로 돌방무덤(석실묘)을 만들었던 고구려, 백제와 달리 신라의 돌방무덤은 6세기 중반에야 나타난다. 대신 5세기 초부터 6세기 초까지는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이 많았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전 세계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유적으로 한반도 내에서도 경주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밖에서 전래했다는 의견과 자체 발전했다는 의견 등이 팽팽히 대립해왔다.

그러나 쪽샘유적에서 둘레돌이 없는 돌무지덧널무덤이 새롭게 발견됨에 따라 돌무지덧널무덤이 자체 발전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돌무지덧널무덤이 돌무지덧널(목곽)을 흙으로 덮은 뒤 주변에 둘레돌을 설치해 마무리한 모습이기에 둘레돌이 돌무지덧널무덤의 필수 요소로 여겨져 왔는데, 이번 발견은 발전 단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발굴에 참여한 국가유산청 국립경주문화연구소의 정인태 연구사는 "목관묘에서 석실묘로 무덤 양식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돌무지덧널무덤이 다양한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조심스레 추측해본다"며 "쪽샘유적 봉분 발굴이 10% 정도밖에 이뤄지지 않은 만큼 앞으로 4세기 후반의 둘레돌 없는 돌무지덧널무덤이 발견된다면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한편 같이 출토된 부장품 중 희귀한 유물도 눈길을 끈다. 이번에 발견된 말갖춤(말을 부리기 위해 장착했던 도구)은 은을 입힌 철제 테두리에 볼록렌즈형의 황동으로 꾸민 것으로 두 가지 금속 소재가 결합된 유물은 출토 사례가 거의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꽃잎 모양을 반복적으로 새긴 토기와 다리에 세 줄로 구멍을 뚫은(삼단투창) 굽다리접시는 대구·창녕 등 낙동강 지역의 토기로 경주 대릉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정 연구사는 "장례를 위해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이 조의를 표하기 위해 가져온 유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27일 이같은 조사 성과와 출토된 유물을 공개하는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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