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톡] 화성 리튬전지 화재 참사… 시대 변화 못 좇아가는 후진적 자화상
소방청이 다음 달 9일까지 전국 213곳의 전지 관련 시설 화재 안전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위험물 저장과 취급 및 안전관리 규정 준수, 전기·가스 등 안전 관리, 공장 내부 비상 탈출로 확보, 근로자 대상 화재 안전교육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박성열 소방청 화재예방총괄과장은 25일 "법령 위반이 발견될 시 관계 법령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전지제품 다량 적재 작업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확인하고, 소방시설 및 피난·방화시설 유지관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대형 참사 발생하자 화들짝… 시대 변하는데 제도는 제자리
24일 경기도 화성시 소재 리튬전지 제조공장 화재 참사가 발생하자 부랴부랴 사후약방문식의 조치에 나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라도 화재위험 요인을 제거해 유사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되지만, 대형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이번 참사도 매번 되풀이돼 온 인재와 다름없는 상황이다. 화학시설 관련 산업의 위험도는 증가하는데 반해, 사고 예방과 안전 확보를 위한 법적인 규제와 제도적 대응책은 미흡한 까닭이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25일 TV 방송을 통해 "전기공사업법, 소방공사업법, 정보통신공사업법 등은 해당 면허자가 설계하고 감리를 하는데 위험물은 공사업법이 없다"며 "소방서가 위험물들을 인·허가는 하지만, (관련 산업을) 설계, 감리, 감독하는 사람들의 기술력이 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위험도는 가중되는데,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입법화가 절실한 부분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리튬전지 산업을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분류한다. 그만큼 산업의 규모와 활용도 등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지만, 그에 따르는 안전대책은 미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백 교수는 "시대가 변하면서 전기차, 노트북, TV, 휴대전화 등은 첨단기기로 진화하는데 관련된 소방시설과 위험물에 관련 규정들은 수십 년째 그대로 쓰고 있다"며 "사고가 날 때마다 그 부분만 대처하며 조금씩 바꿔온다. 안전을 위한 대책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안전점검의 허술함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달 17일 안전점검을 실시, '이상 없다'는 결론을 냈다. 결과론적이지만, 형식적이고 허술한 점검이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배터리는 특성상 다른 제조물보다 화재 위험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대강 훑어보는 식의 점검이었다면, 사고 개연성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함은구 을지대 바이오공학부 안전공학전공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환경부의 점검이) 대부분 리튬 원재료와 공정 관리상 위험도를 평가하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완제품에 대한 특별 관리 등에 대한 현행 지침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 위험 요소에 대한 점검은 상당 부분 간과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함 교수는 "어떤 위험이 있는지 인식을 해야 대응방법 등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제품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하리란 생각은 못하고 있었던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 역시 "(리튬 전지를 이용하는) 자동차나 휴대기기 등에서의 개별적 위험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더 많은 배터리가 보관되고 있는 생산공정에서의 위험성을 덜 인식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더 확실한 보관방법과 진압방법 등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명피해 컸던 이유… 잘못된 공정설계, 안전의식도 미흡
화재가 발생한 곳이 다량의 완제품 리튬전지를 검품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화재 위험성은 더 컸다. 리튬전지가 열폭주 현상 등으로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정설계와 근로자들의 안전의식 등이 미흡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장 1층은 인화성 액체 보관, 2층은 다량의 리튬전지 검품 장소다. 검품 작업을 진행하는 장소에서 비상계단까지는 여러 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
백 교수는 "작업장이 아니라 창고로 사용해야 하는 막다른 장소에서 50여 명의 근로자들이 작업을 했다"며 "공정설계는 인명안전을 본질로, 어떻게 했을 때 가장 위험한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해야 한다. 저런 건물, 저런 장소에서의 작업은 불합리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리튬은 3류 위험물질인 자연발화 금수성 물질이다. 물 접촉도 안 되고, 180도 이상이면 자연발화 한다. 검품 과정에서 불량품 적재는 분리형으로 해야 배터리 연쇄 폭발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참사에서는 물과 녹슨 철을 피해야 하는 보관 수칙이 잘 지켜졌는지 여부 등이 논란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또 사망자 위치를 보면 안전 관련 교육이나 훈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사망자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인 만큼, 좀 더 철저한 안전교육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와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신종 참사에 속수무책… 시대변화 맞는 국가차원 대책 절실
25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군 납품용 일차전지'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장소다. 군용 리튬전지는 실제 군에서도 폭발사고가 자주 발생하면서, 폭발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리튬전지는 자열발화물질 및 금수성 위험물질로 화재 발생 시 물이나 이산화탄소 등으로 진압이 안 된다. 또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도 이상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 연속 폭발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소방법상 금속화재는 화재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전용 소화기나 소화 약제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1차전지, 2차전지 등 각종 배터리는 안 쓰이는 데가 없을 정도로 일상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생산시설의 안전관리뿐만 아니라 작업장 근로자들의 안전과 숙련도 제고, 소화 능력 향상 등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는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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