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신념… ‘선넘는 정치’[넷플릭스 ‘돌풍’]

안진용 기자 2024. 6. 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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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위해서 대통령 시해한 그
‘대통령 비리 고발’국무총리
“선넘은 자에게 한계란 없다”
■ ‘안정’내세워 부패 눈감는 그녀
‘정경유착 몸통’ 경제부총리
“인간은 어둠에 금방 적응해”
현실정치 모순 날카롭게 그려
넷플릭스 ‘돌풍’의 박동호(사진 왼쪽·설경구 분) 국무총리와 정수진(오른쪽·김희애 분) 경제부총리는 각각 부패한 정치판의 전복과 유지를 꿈꾸며 치열하게 대립한다. 넷플릭스 제공

정치를 ‘여야 대결’로 단순화할 순 없다. 여당 내에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중심 권력이 있고,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있다. 정권을 쥐려는 야당의 공세는 늘 매섭다. 권력의 향방을 두고 검찰, 국가정보원, 언론의 셈법도 복잡하다. 여기에 권력에 기대 돈을 지키려는 재벌이 가세한다. 좀처럼 깨기 힘든 동상이몽, 이처럼 정치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을 시해하며 “대통령을 죽인 게 아니라 이 나라를 살린 것”이라는 신념을 드러낸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는 정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치는 산수가 아니라 수학이다. 변수·미지수가 있다.” 오는 2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정치 드라마 ‘돌풍’(12부작)이다.

‘돌풍’은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 등 선굵은 이야기를 담은 ‘권력 3부작’으로 유명한 박경수 작가가 7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비리와 다툼으로 점철된 정치·재벌·검찰이 형성하는 복마전을 치밀하게 그리며 권력의 폐부를 찔렀던 박 작가의 송곳은 여전히 날카롭다.

이 이야기는 긴급체포 명령이 발동된 박동호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대통령의 비리를 캐려던 박동호는 오히려 누명을 쓰고 체포 명령을 받자 대통령을 찾아간다. 난초를 닦던 대통령은 “난초나 정치나 내 편이 속 썩이는 건 매한가지”라며 “내가 입혀준 옷으로 내 허물을 덮어주는 게 옳다”고 말한다.

결국 박동호는 대의를 명분 삼아 대통령을 시해하기로 결심한다. 국가 원수의 유고 상황으로 박동호는 긴급체포 직전 권한대행 임무를 부여받아 불체포 특권을 누린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대통령과 함께 대진그룹을 비호하며 정경유착의 몸통이 된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은 대진그룹과 측근의 손을 빌려 박동호를 제거하려 한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두 축은 박동호와 정수진이다. 박동호는 대통령 시해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추악한 세상을 견딜 수 없어 공멸의 길을 택하며 스스로 제물이 된다. 반면 정수진은 대통령과 함께 정경유착 부패의 고리로 엮이고 그 고리를 강화시키는 인물이다.

말 속에 뼈를 심은 두 인물의 티키타카 대화는 ‘돌풍’의 백미다. 정수진은 “우리 둘이 눈감으면 세상은 살짝 어두워지지만 사람들은 금방 적응한다”고 회유하고, 박동호는 “정권은 무너져도, 나라가 무너지는 건 막아야 한다”고 대거리한다. “선을 넘은 자에게 한계는 없다”는 박동호에게 정수진은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라고 경고하고, 박동호는 “당신보다 한 걸음 더”라고 응수하며 팽팽한 평행선을 유지한다. 퇴로를 닫은 채 돌진하는 설경구의 연기가 단단하다면, 특유의 우아함을 배제하고 요설을 일삼는 김희애의 연기는 날카롭다.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사람에 대해 대본을 쓴 박 작가는 “욕망은 법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신념은 통제마저 어렵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돌풍’의 주요 등장 인물은 각자의 신념을 갖고 기능한다. 박동호는 정경유착의 카르텔을 깨고자 비록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지만, 권한대행 자리에 오른 후에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도 정의로워야 한다’고 믿는 친구 이장석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다. 여당의 수장 격인 박창식 의원은 ‘자리’가 탐나도 내 식구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신념을 앞세우고, 대통령비서실장 최연숙은 대통령 시해 내막을 알면서도 나라를 구하자는 충정으로 박동호와 타협한다. 그리고 대진그룹 강 회장의 신념은 끝까지 돈이다. 자신의 가석방을 위해 힘쓰는 아들에게 “너에게 그룹을 물려줄 아버지는 1명이지? 나는 그룹을 물려줄 아들이 둘 더 있다”고 경각심을 일깨우며 자식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식이다.

‘돌풍’의 소재는 정치요, 그 소재의 씨앗은 권력욕이다. 하지만 박 작가는 “권력을 소재로 기획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인간사의 모순이 결국 권력으로 귀결됐다는 주장이다. 그 모순을 없애고 답답한 세상을 쓸어버리자는, 현실의 표피를 두른 판타지가 ‘돌풍’의 장르인 셈이다. 박 작가는 말한다. “저는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믿지 않습니다. 답답해도 뭔가 우리끼리 고쳐가면서 쓰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답답한 현실에서 백마 타고 올 초인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드라마로 만들어본 겁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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