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신념… ‘선넘는 정치’[넷플릭스 ‘돌풍’]
‘대통령 비리 고발’국무총리
“선넘은 자에게 한계란 없다”
■ ‘안정’내세워 부패 눈감는 그녀
‘정경유착 몸통’ 경제부총리
“인간은 어둠에 금방 적응해”
현실정치 모순 날카롭게 그려
정치를 ‘여야 대결’로 단순화할 순 없다. 여당 내에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중심 권력이 있고,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있다. 정권을 쥐려는 야당의 공세는 늘 매섭다. 권력의 향방을 두고 검찰, 국가정보원, 언론의 셈법도 복잡하다. 여기에 권력에 기대 돈을 지키려는 재벌이 가세한다. 좀처럼 깨기 힘든 동상이몽, 이처럼 정치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을 시해하며 “대통령을 죽인 게 아니라 이 나라를 살린 것”이라는 신념을 드러낸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는 정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치는 산수가 아니라 수학이다. 변수·미지수가 있다.” 오는 2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정치 드라마 ‘돌풍’(12부작)이다.
‘돌풍’은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 등 선굵은 이야기를 담은 ‘권력 3부작’으로 유명한 박경수 작가가 7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비리와 다툼으로 점철된 정치·재벌·검찰이 형성하는 복마전을 치밀하게 그리며 권력의 폐부를 찔렀던 박 작가의 송곳은 여전히 날카롭다.
이 이야기는 긴급체포 명령이 발동된 박동호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대통령의 비리를 캐려던 박동호는 오히려 누명을 쓰고 체포 명령을 받자 대통령을 찾아간다. 난초를 닦던 대통령은 “난초나 정치나 내 편이 속 썩이는 건 매한가지”라며 “내가 입혀준 옷으로 내 허물을 덮어주는 게 옳다”고 말한다.
결국 박동호는 대의를 명분 삼아 대통령을 시해하기로 결심한다. 국가 원수의 유고 상황으로 박동호는 긴급체포 직전 권한대행 임무를 부여받아 불체포 특권을 누린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대통령과 함께 대진그룹을 비호하며 정경유착의 몸통이 된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은 대진그룹과 측근의 손을 빌려 박동호를 제거하려 한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두 축은 박동호와 정수진이다. 박동호는 대통령 시해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추악한 세상을 견딜 수 없어 공멸의 길을 택하며 스스로 제물이 된다. 반면 정수진은 대통령과 함께 정경유착 부패의 고리로 엮이고 그 고리를 강화시키는 인물이다.
말 속에 뼈를 심은 두 인물의 티키타카 대화는 ‘돌풍’의 백미다. 정수진은 “우리 둘이 눈감으면 세상은 살짝 어두워지지만 사람들은 금방 적응한다”고 회유하고, 박동호는 “정권은 무너져도, 나라가 무너지는 건 막아야 한다”고 대거리한다. “선을 넘은 자에게 한계는 없다”는 박동호에게 정수진은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라고 경고하고, 박동호는 “당신보다 한 걸음 더”라고 응수하며 팽팽한 평행선을 유지한다. 퇴로를 닫은 채 돌진하는 설경구의 연기가 단단하다면, 특유의 우아함을 배제하고 요설을 일삼는 김희애의 연기는 날카롭다.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사람에 대해 대본을 쓴 박 작가는 “욕망은 법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신념은 통제마저 어렵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돌풍’의 주요 등장 인물은 각자의 신념을 갖고 기능한다. 박동호는 정경유착의 카르텔을 깨고자 비록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지만, 권한대행 자리에 오른 후에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도 정의로워야 한다’고 믿는 친구 이장석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다. 여당의 수장 격인 박창식 의원은 ‘자리’가 탐나도 내 식구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신념을 앞세우고, 대통령비서실장 최연숙은 대통령 시해 내막을 알면서도 나라를 구하자는 충정으로 박동호와 타협한다. 그리고 대진그룹 강 회장의 신념은 끝까지 돈이다. 자신의 가석방을 위해 힘쓰는 아들에게 “너에게 그룹을 물려줄 아버지는 1명이지? 나는 그룹을 물려줄 아들이 둘 더 있다”고 경각심을 일깨우며 자식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식이다.
‘돌풍’의 소재는 정치요, 그 소재의 씨앗은 권력욕이다. 하지만 박 작가는 “권력을 소재로 기획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인간사의 모순이 결국 권력으로 귀결됐다는 주장이다. 그 모순을 없애고 답답한 세상을 쓸어버리자는, 현실의 표피를 두른 판타지가 ‘돌풍’의 장르인 셈이다. 박 작가는 말한다. “저는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믿지 않습니다. 답답해도 뭔가 우리끼리 고쳐가면서 쓰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답답한 현실에서 백마 타고 올 초인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드라마로 만들어본 겁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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