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직전까지 먹지 않는 청소년, 병원 밖으로 내몰리다 [스프]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4. 6. 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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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조동찬] 의료 대란의 파장은 어디까지...


죽기 직전까지 먹지 않는 어린이 청소년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배가 아프다며 소아청소년과 소화기내과를 찾아왔다. 복통을 호소하는 어린이에게 소아과 전문의는 '배가 언제부터 어떻게 아팠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의사는 다른 질문부터 꺼냈다.

"(여학생의 손목을 보며) 지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나요?"
"네, 하지만 (자신의 손목을 가리키며) 이것 때문에 온 건 아니에요."

배가 아프다는 청소년에게 자살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던 것은 그녀의 손목에 있는 자해 흔적 때문이었다. 그녀의 팔은 너무 말라 있어서 자해 흔적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위험해 보일 정도로 깡말랐지만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말한다. 의사는 그런 그녀에게 '배 아픈 것만 치료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하며 입원장을 발부했다.

뒤이어 초등학교 5학년 소녀가 엄마와 함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역시 배가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는 복통보다 체중을 먼저 묻는다.

"지금 체중이 얼마예요?"
"19kg이요..."

소녀의 대답에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을 잇는다.

"5개월 전까지는 26kg이었는데, 지금은 7kg이나 빠졌어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여러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했는데도 정상이라고 해서 큰 병원 찾아왔어요."

이유 없이 체중의 10%가 줄면 성인도 심각한 질병을 의심해야 한다. 성장기 어린이가 27%나 체중이 빠진 건 매우 위중하다는 걸 의미한다. 의사는 엄마가 가져온 복부 CT, MRI 등을 꼼꼼하게 다시 살폈다. 하지만 어떤 이상 소견도 없다. 소녀는 복부에 이상이 있어서 먹지 못한 것이 아니다. 정신건강 질병으로 먹기를 거부한 것이다. 섭식장애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거식증과 폭식증이다.

거식증은 '신경성 식욕 부진증'라고 하는데 비만이 아닌데도 스스로 비만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것을 극도로 꺼리면서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한다. 폭식증은 '신경성 대식증'이라고 하는데, 자제력을 잃고 과도하게 먹은 후 의도적으로 구토와 설사를 한다. 섭식장애 환자는 우리나라에서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섭식장애로 5만 213명이 진료받았는데, 2018년 8,321명에서 2022년 1만 2,477명으로 49.9%나 껑충 뛰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4.2배 많았고, 특히 신경성 폭식증의 경우 약 13배 많았다. 나이별로 보면 20대 여성이 43.5%로 가장 많았고, 30대 여성 21.1%, 40대 여성 11.5%, 10대 여성 8.8% 순이었다.

섭식장애가 왜 발병하는지 그리고 최근 왜 급증했는지 밝혀진 게 없다.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섭식장애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발견이 증가한 것으로 보여요. 과거에는 극단적인 증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병원을 찾지 않아서 진단 환자 수는 실제 환자 수보다 적었으니까요. 20대 여성 환자가 가장 많은 것도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환자들을 진료해 보면 사춘기 시절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의 개입으로 간신히 정상처럼 보이는 생활을 유지하다가 20대 때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급격히 악화해 병원을 찾게 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20대 환자가 가장 많다는 것은 아직도 10대 때 제대로 진단받는 환자가 적다는 걸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의료 대란, 섭식장애를 병원 밖으로 몰아내다

거식증과 폭식증은 증세가 약간 다른 것 같지만, 그 결과는 유사하다. 심각한 저체중, 생리불순, 저성장뿐만 아니라 심각한 영양실조와 면역 저하이다. 마치 백혈병 환자처럼 모든 혈액 성분들이 감소돼 있다. 예를 들어 백혈구 정상 수치는 4천-1만 개/uL인데, 위의 중3 여학생, 초5 소녀는 이 수치가 1천 개/uL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까닭에 감기와 독감에 잘 걸리고, 걸려도 심각한 폐렴으로 악화하기 쉬워 목숨을 잃는 경우도 흔하다.

섭식장애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각한 우울증을 동반해 자살로 악화할 위험이 크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 연구에서 자살 위험도가 거식증은 18배, 폭식증은 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Eating Disorders and Suicidality: What we know, what we don't know, and suggestions for future research).

심각한 영양실조, 면역 저하 그리고 높은 자살 위험도를 보이는 섭식장애 어린이 청소년은 입원 치료가 필수적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비뚤어진 영양과 면역을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자살 위험도를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이지만 섭식장애 환자를 많이 입원시킬수록 병원의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의료 대란으로 적자가 누적되자 대형 병원들은 소아청소년 정신과 병동부터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경남 지역 유일 소아청소년 정신병동인 양산부산대병원 53병동도 넉 달 전 문을 닫았다. 소아청소년과 이연주 교수는 섭식장애 환자가 올 때마다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최근 생명이 위중할 수 있는 심각한 아이들을 4명 입원시켜 내과적인 치료를 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같이 했어요. 하지만 충분히 입원시킬 수 있는 병동이 폐쇄돼 당장 사망에 이르지 않을 정도로 급한 불만 끄고 퇴원시켜야만 했습니다. 외래 추적 관찰 중인데요, 그 아이들은 여전히 체중에 대한 강박, 부모와의 갈등으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냥 끌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원래부터 전공의가 별로 없어서 의료 대란에 대한 타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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