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자전거 여행]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풍경…이곳은 시인이 와야 했다

이남석 오지 자전거 여행가 2024. 6. 2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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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안나푸르나산군 한 바퀴 도는 386km, 최고고도 5,416m 여행의 끝
마르빠를 지나 사랑고트 마을로 가는 길. 해발 5,416m의 얼어붙은 고개를 내려와야 했기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드물었다. 마르빠를 지나며 자전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토롱라 정상(5,416m)에서 내려가는 길은 혼자였다. 트레커들은 이미 묵티나트로 하산한 후였다. 고개 반대 방향은 여러모로 달랐다. 경사는 더 급했으며 아래에서 위로 부는 바람이 몹시 강했다. 전체 지형과 산세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사막처럼 황량했다. 음지에는 트레커들이 밟은 눈이 녹고 얼기를 반복해 미끄러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해발 5,000m대 봉우리들이 아직 아래에 있었다. 흰 눈을 인 검은 봉우리들은 주변의 짙은 주황색 흙과 잘 어울렸다. 그들은 마치 서로 속삭이며 이야기 나누는 것 같았으며, 구름이 만든 그림자는 산맥과 계곡의 옅은 회갈색 흙 위에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 인간이 그린 어떤 그림보다 교묘하고 예측 불가하며, 신성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생각 같아서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고 싶었으나 급경사인 데다가 짐이 무거워 타기 어려웠다.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마음먹고 안장에 앉았으나 곧 포기했다. 고개 북쪽의 풍경은 전반적으로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반대편보다 탁하고 어둡고 거칠었다.

그러나 하늘빛만큼은 더 상냥하고 경쾌했다. 평화롭고 높이 뜬 적당한 구름과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하늘, 그리고 가까운 곳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중첩된 산맥을 덮은 눈을 감상하는 것은 이 여행의 백미였다.

좀솜마을 계곡 풍경. 네팔의 가을은 은은한 색이다

이른 오후, 마침내 해발 3,800m 묵티나트에 도착했다. 묵티나트에는 유명한 사원이 있으며 곳곳에 호텔과 기념품 가게들이 빼곡했다. 그러나 호텔은 먼저 내려온 트레커들로 꽉 차 있어, 방 구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도중에 알게 된 한 가이드 겸 포터를 만나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도중 유명한 고대 왕국인 로만탕Lomanthang에 관한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찍 짐을 챙겨 여관을 나왔다. 빛이 풍성한 아침 풍경을 즐기고 또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얼마 안 가서 티베트 가옥을 닮은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과 흙벽돌을 쌓아 만든 집으로 지붕은 나무와 흙으로 평평하게 덮었는데 강수량이 많지 않다는 증거였다.

마을 동쪽은 토롱라와 높고 긴 산맥에 가려 아직 어두웠다. 산맥에 걸친 햇빛에 의해 이동하는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니 빠른 속도로 해가 올라왔다. 마침내 빛이 들자 산맥 위로 늘어선 봉우리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덩어리가 어울려 엄청난 풍광이 펼쳐졌다. 산줄기 너머가 바로 로만탕 왕국이 있는 무스탕Musthang이었다. 얼마 안 내려와 무스탕으로 가는 길이 있는 좀솜Jomshom마을에 도착했다.

토롱라(5,416m)에서 급경사를 내려와 묵티나트에 도착했다. 곡식을 맷돌에 분쇄하는 여인들이 있는 이 마을도 겨울처럼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란색으로 탈색한 백양나무는 산맥과 구릉의 흙, 그리고 경작지로 둘러싸인 마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냈다. 나는 그림자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어느 시인의 노트에 적힌 아름다운 시구가 노래로 바뀌어 들리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기막힌 풍광이었다.

오른쪽으로 망망히 펼쳐진 무스탕의 비경은 자꾸만 자전거를 세우게 했다. 이번 여행은 안나푸르나 여행도 중요하지만, 다음 자전거 여행지로 결정한 무스탕에 관한 확실한 정보와 자전거 이동 방법을 안 것도 큰 수확이었다.

좀솜을 지나니 도로는 거의 평지거나 약한 내리막의 비포장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좁고 가는 흰색 천처럼 산맥 위에 떠 있던 구름이 굵고 두꺼운 솜처럼 바뀌었다. 길고 가파른 계곡은 산맥을 비켜 안쪽으로 이어졌다. 마을은 계곡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을 관개하여 길과 구릉을 따라 경작지가 가지런했다.

강물을 가로지르는 다리. 네팔 산간지역은 대부분 이런 행어브릿지 형태의 다리가 놓여 있다.

더한 것은 더해져 아름답고,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잘 어울렸다. 길은 어느새 밑으로 떨어져 계곡과 동행했다. 출발 초반에 경험했던 뜨겁고 습한 날씨와 열대림으로 덮인 숲과 산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바파숭 묵티크세트파 무스탕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지역 전통 복장을 한 사람 조형물이 너무 코믹하고 특이해 잠깐 자전거를 멈췄다. 촌스럽지만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관광객을 태우고 달리던 차가 내 앞에서 섰다. 그들은 조형물보다는 오히려 내 모습이 더 재미있었던지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유물이 아닌 것이 유물처럼 보이는 것 또한 참신한 볼거리였다.

사랑고트 경치에 반해 계획 바꿔

토롱라 정상에서는 거의 눈높이로 보이던 설산이 좀솜을 지나자 고개를 들고 봐야 할 정도로 높아졌다. 해발 2,600m의 마르빠Marpa마을에 도착하자 골목에는 여관과 기념품 가게가 빼곡하고 마을 전체가 타르초로 덮여 있었다. 이 마을은 고명한 승려인 마르빠에 관한 전설과 그가 수행했던 장소가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역을 알리는 관광 표지판. 독특한 디자인의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고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몬순(계절풍)의 영향이 적고 맑은 날이 길다. 더구나 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물에 의한 퇴적토가 쌓이고 평평한 곳이 많아 네팔의 중요한 사과 생산지이다. 그런 이유로 곳곳에 넓은 사과 농장이 많고 사과를 이용한 주스와 와인이 유명하다. 수확한 사과 중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깎아서 고리처럼 만든 후 나무에 끼워 말리는데 이 또한 마르빠의 명물이다. 마르빠 사과는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울려 특유한 향미가 있다.

날이 저물어 어느 마을의 한 여관에 머물렀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엄청난 설산이 막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났다. 식당에서 만난 영국인 트레커는 산에 대한 경외심이 많았으며, 특히 네팔 히말라야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날부터는 숲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기온도 올랐다.

마을을 벗어나서 절벽으로 난 길을 달리는데 지프 한 대가 다가와 내 옆에 서더니 창문을 열고 스웨덴에서 온 트레커가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마낭을 출발해 토롱라까지 나흘간 함께한 여정이 서로를 기억할 만한 인연이 된 것이다. 버스 휴게소에서 만난 독일인 트레커는 포카라까지 로컬버스로 이동 중이었다. 지프 대신 불편한 로컬버스를 탄 이유를 물어보자 진짜 여행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독일인다운 답변이었다.

숙소에서 만난 영국인 트레커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도가 더 낮아지면서 마을과 경작지가 자주 나타났다. 한쪽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지력이 떨어진 경작지에 거름을 내기 위해 가족이 합심해서 거름을 퍼 수레에 싣고 있었다. 반대편에 있는 대장간에서는 마침 낫을 만들고 있었는데 규모는 작아도 어지간한 농구는 다 만들었다. 씨 뿌리고 가꾸어 수확하는 네팔 농촌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네팔은 아열대 기후부터 시작해 눈이 내리고 빙하가 있는 추운 지역까지 고도에 따른 온도 차이가 크다. 덕분에 저지대에서 생산되는 과일과 채소는 물론이고 비교적 고도가 높은 지역의 초지에서 키우는 가축에 이르기까지 식품 재료가 다양하다.

포카라에 가까워지면서 고도가 1,000m 이하로 떨어지자 날씨가 마치 여름처럼 덥고 습했다. 11월 늦가을임에도 가을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루하리만치 길고 높은 고개를 올라 해발 1,600m인 사랑고트Sarangkot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여관이라기보다는 그냥 옥탑방 수준이었지만 짐 풀어놓고 침대에 누우니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세상만사가 모두 내 품에 있는 듯 편안했다.

마침내 사랑고트 마을에 도착. 여행을 출발한 곳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오늘 중에 충분히 포카라까지 갈 수 있었지만, 계획을 바꿨다. 소박한 마을 풍경과 마을 뒤로 멋지게 펼쳐진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다울라기리 설산에 매료되어 자전거를 세우고 짐을 풀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가까이서 봤던 풍광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여행 기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한 덕분이기도 했다. 보통 젊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설정한 여행 기간보다 3일 정도 더 길게 잡았다. 여관 주인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네팔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여행 말미로 가며 숙소에서 늦게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저녁에는 근처 가게에서 생면과 닭고기를 사다가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 생뚱맞은 비유지만 페루 음식인 '칼도'와 같은 음식이 네팔에도 있었다. 닭을 푹 삶아 낸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양파, 감자를 썰어 넣은 후 면과 함께 끓인다.

두 끼 먹을 분량을 요리했는데 먹다 보니 한 번에 다 먹어버렸다. 덕분에 식곤증인지 피로 누적인지 다음날 아침 늦도록 눈을 뜨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사랑고트'는 포카라에 관광 온 사람들이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같은 눈 덮인 히말라야 설산을 보기 위해 올라오는 경치 좋은 명소였다.

벼를 베어 탈곡하는 네팔 농부들.

사랑고트에서 포카라로 가는 길, 지나치는 마을들은 전형적인 네팔 농촌이다. 작은 마을과 경작지가 이어지며 오른쪽으로는 히말라야 설산군이 장관이다. 대부분 논농사를 짓는데 기후가 알맞고 무엇보다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가을빛이 좋기에 마을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부엌과 방을 만든 가옥 구조가 우리의 옛날 초가삼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침 논 한가운데에서 벤 벼를 탈곡하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농부들은 대부분 낫으로 벼를 베어 단으로 묶는다. 그리고 적당히 볏단이 마르면 돌이나 나무통에 메쳐 나락을 턴다. 그리고 아직 볏짚에 남은 나락은 소가 밟아서 최종적으로 낟알을 털어낸다. 아마 이런 작업은 수백 년에 걸쳐서 이어져 온 방법일 것이다.

카트만두 타멜 거리의 티하르 축제 풍경. 대문 입구에 꽃 장식을 하고, 그림을 그린 후 촛불이나 양유 등잔불을 가져다 놓는다.

산등성이 낮은 구릉에서 바라본 포카라는 그야말로 히말라야 산자락 너른 분지에 있는 큰 도시였다. 뒤에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설산이 우뚝하고 그 아래 포카라가 넓은 터를 자리 잡고 있었다.

오전 일찍 포카라에 도착했다. 사랑고트 마을 정점으로부터 급격한 내리막이기에 고도차는 600m가 넘지만 단번에 내려왔다. 보름 전 포카라를 출발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만약 누군가 안나푸르나를 돌아본 감회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다웠다"며 웃을 것이다.

네팔의 가장 큰 축제 날, 여행을 마치다

포카라에서는 '레이크 사이드Lake Side'에 머물렀다. 거리는 대부분 외국인들로 북적였으며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호텔로 가득했다. 낮에는 시내버스를 타고 포카라 중앙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 그 나라의 정서와 일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보면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바자르(시장)나 광장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그걸 느낄 수 있다. 걷는 모습, 말하는 모양,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다양한 흐름이 그 안에 존재한다.

포카라에서 버스로 이동해 카트만두의 '타멜'에 도착한 날은 바로 네팔의 가장 큰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티하르Thihar 축제라고 하며 '빛의 축제'라는 의미라고 한다. 거의 모든 상점마다 불을 밝히고 벽에는 금잔화 꽃을 걸어 놨다. 길에서 상점 입구까지는 색깔을 입힌 가루를 뿌리고 그 위에 촛불을 세워 놨다.

카트만두 타멜 거리의 티하르 축제 풍경. 대문 입구에 꽃 장식을 하고, 그림을 그린 후 촛불이나 양유 등잔불을 가져다 놓는다.

상인들은 곳곳에서 축제에 사용하는 금잔화와 색을 입힌 가루, 그리고 초나 음식을 팔았다. 설에 세배하러 다니면서 세뱃돈을 받는 우리나라의 풍속처럼 여기 어린이들도 상점이나 가정집을 방문해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주인이 나와 이들에게 음식과 돈을 준다.

나는 축제의 물결이 최고조일 때 타멜에 있었다. 축제는 요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사치스럽지도 않았다. 적당하고 오히려 질박했다. 답답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조금 더 활발하게 축제를 즐겼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다음에는 조금 더 사업이 잘돼 이익이 많이 나기를 신께 기도했다. 어떤 계율 때문에 숨어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그날만큼은 드러내고 마셨다. 큰소리로 노래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도 용납이 되는 날이다. 안나푸르나 자전거 여행은 그동안 네팔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확인하고 경이로운 히말라야의 비경을 몸으로 경험한 중요한 여행이었다. <연재 끝>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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