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이야기가 굽이치듯… ‘큰물’ 품은 문학 공간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물 있는 곳서 문명 꽃피운 인류처럼
제주 ‘용천수’ 상징적 의미 담아 건립
문학관 옆 숲에 ‘큰물 마당’ 만들고
탁 트인 유리벽으로 1층 경계 허물어
고사리·현무암… 제주 식생정원 눈길
자연·민속·언어 ‘三寶’ 오롯이 드러내
인간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리를 이루기 위한 최초의 매개체는 물이나 식량 같은 인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마을과 동네를 뜻하는 한자 ‘洞(동)’을 통해 ‘무리(同)’를 이루기 위한 매개체로 ‘물(?)’의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보다 규모가 큰 고을을 의미하는 한자 ‘州(주)’는 거주자들이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천(川) 변에 고을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물이 있는 곳에서 인류는 문명과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고 그 형태 중 하나가 문학이다. 제주도 마찬가지였다. 큰물에 모여 빨래와 식사 준비, 그리고 목욕을 하면서 이웃들과 나누던 대화가 문학의 소재가 됐다. 가끔 말재주가 있는 사람의 허풍은 이야기에 극적인 요소를 더해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문학관을 설계한 조정구는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문학의 원천으로 큰물이라는 공간의 실체와 상징성에 주목했다(구가건축 홈페이지).”
둘째는 1층 천장을 매끈하게 처리했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천장에는 상층 슬래브의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는 보(Beam)가 놓이고 그 사이에 천장형 에어컨과 같은 공조 장치나 조명기구가 설치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천장이 어수선해지고 층고가 낮아져 시야가 눌린다. 제주문학관에서 설계자는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1층 천장 아래에 배치되어야 하는 보를 2층 바닥에 설치하는 ‘역보’ 구조를 적용했다.
셋째는 1층 바닥을 문학관 입구로 들어와 큰물마당으로 나가는 문까지 점차 낮아지게 했다. 그래서 로비와 북카페를 이용하는 방문객들은 다양한 높이에서 큰물마당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큰물마당을 나갈 때까지 시야가 점차적으로 터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왕복 6차로의 연북로에 면한 남쪽 입면은 각층이 다른데, 도로에 가까운 2층은 폐쇄적이지만 3층은 수직 창틀, 4층은 한라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리 패널이 설치돼 있다. 문학관 안에서 주변의 자연과 멀리 한라산 등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풍경 속의 문학관”이라는 설계자의 설명이 와 닿는다.
문학은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부대끼고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경로다. 그렇기에 지역에 들어서는 문학관이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대상은 외지인이 아닌 현지 거주자들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학가들이 지역문학관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제주문학관도 2005년 추진위원회가 처음 구성되고 8년 후 문학인과 지역 단체를 중심으로 공론화됐다. 최종적으로 2019년에 개관됐다. 문학관에는 창작공간, 문학살롱, 소모임공간, 세미나실을 마련해 지역 주민들이 더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문학관 2층에 마련된 상설전시실을 둘러보다 ‘바당문학’과 ‘해녀문학’, 그리고 ‘4.3문학’ 섹션에 눈길이 갔다. ‘바당’은 바다의 제주 사투리다. ‘바다’와 ‘해녀’는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 ‘민속’이다. 그리고 ‘4.3’은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아픈 기억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삼다(三多)도’와 ‘삼무(三無)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제주에는 ‘삼보(三寶)’도 있다. 세 가지 보물 중 두 가지는 ‘자연’과 ‘민속’이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의 풍토가 만들어낸 특별한 ‘언어’다. 제주문학관은 제주의 언어로 제주의 자연과 민속을 표현하고 있는 문학을 담고 있는 집이다. 그래서 제주의 보물함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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