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번영을 위해 신뢰사회 구축과 공동체 가치 회복이 급선무

2024. 6.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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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Legatum Institute)는 2007년 이래 매년 레가툼 번영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레가툼 번영 지수(Legatum Prosperity Index ™)는 개별 국가의 균형을 갖춘 번영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물질적 부유 정도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를 함께 분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번영은 돈이나 부 그 이상의 개념으로서 성장, 기회, 자유, 책임에 관한 것을 모두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번영이란 무엇인가? 레가툼연구소의 설명을 요약한다. 번영은 단지 부유함을 누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이 번영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를 누리는 때이자 시기이며 시대이다. 진정한 번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유한 잠재력을 실현하고 지역 사회와 국가를 강화하는 데 제 역할을 다함으로써 번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2023년 레가툼 번영 지수에서는 전 세계를 8개 지역으로 분류하고 167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했다. 안전·안보, 개인의 자유, 거버넌스, 사회적 자본, 투자 환경, 기업 환경, 사회의 공공 기반시설과 시장 접근성, 경제적 질, 생활 환경, 보건의료, 교육, 자연환경 등 12가지 주요지표(pillars)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각국에 순위를 매겼다.

한국은 2016년 이래 2023년까지 세계 순위가 29위로 변동이 없다. 한국의 2023년 번영지수는 74.1점이다. 2013년 72.7점에 비해 10년 동안 소폭 상승하였다. 교육과 의료·보건 지표에서는 각각 최상위권인 3등으로 평가되었다. 반면 최하위로 평가받은 핵심지표들은 사회적 자본과 자연 환경으로 각각 107위, 63위로 평가되었다.

세부 항목의 평가점수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개인과 가족 관계, 사회관계망 등 사회적 자본이 심각하게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관계망은 162등으로 가장 낮은 순위로 평가되었다. 세부 항목은 존경과 존중 160위, 친구를 사귈 기회가 153위로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친구를 사귈 기회 항목에서는 10년 동안 점수로는 9점, 순위로는 40위가 하락하였다. 낯선 사람 돕기 항목은 129위, 자원봉사는 144위로 불과 일 년 만에 각각 39등과 110등이 추락하여 끔찍한 수준이다. 누가 봐도 공동체 가치가 무너진 결과이다. 협력과 상생의 공동체 문화가 퇴락하고 경쟁과 생존으로 대변되는 무한경쟁 시대가 되어버린 방증으로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 지수도 낮아서 기관에 대한 신뢰 분야(46점)의 순위는 조사대상 167개국 중 100위를 기록하여 심각한 수준이다. 세부 항목에서는 정치인 114위, 사법시스템 155위, 정부 111위, 군 132위 등으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정부정책의 투명성은 104위다. 사법시스템은 2013년 146위에서 2023년 155위로 9계단 하락해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더 악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치인과 정부, 사법시스템 및 시민단체, 노조 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허물어지고 있는 점이 평가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한민국은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국력이 상승하고 국운이 융성하는 번영의 단계에 접어든 듯했다. 외국에 나가보면 금방 알게 된다. 대한민국은 분명히 발전했고 세계 속에서 인정을 받아가고 있다. 하지만 케이 팝, 케이 드라마 등 속칭 케이 시리즈에 취해서 내부가 병든 줄은 잘 몰랐다. 협력과 상생이 없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지속성 있는 번영의 기대는 어렵다.

고결한 개인들이 신뢰 기반 사회를 구축하여 결국에는 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 번영의 핵심 기반이자 기초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신념, 가치, 문화 및 전통을 어떻게 다시 살려야 할까? 먼저 공동체 가치를 살려야 한다. 독일에서 생활해 보니 더욱 그렇다. 독일은 우리 사회에서 예전에 많이 보았던 공동체 가치가 아직 살아 있고 개인의 책임을 바탕으로 자율과 책임성 함양의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가족이 주는 긍정적 에너지' 항목이 130위이다. 집안이 화목(和睦)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의미인 가화만사성은 버려진 액자에 써 있었던 예전의 좋은 글씨에 불과한 것인가. 가족부터 먼저 살리자. 그리고 사회공동체의 핵심 가치인 '같이의 가치'에 대해서 다 같이 생각해볼 일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서는 신뢰사회 구축과 공동체 가치 회복이 급선무이다. 허환일 충남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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