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충망 다는데 월 1000만원씩 벌리더라"…젊은 기술자의 반란
태권도 그만뒀을 때 막막했던 24살, 처음 시작했던 방충망 기술자
"젊음만으로 '장점' 될 수 있더라…스펙 없어 막막한 이들에게 기회 있다고 알리고 싶어"
스물네 살. 방충망 설치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이창현씨는 어머니께, 자신이 결심한 게 그렇다고 말했다. 지금 그는 서른네 살. 그러니까 10년 전 얘기였다.
"창현이가 높은데 올라가서 방충망을 설치한대. 너 그거 위험한 거 아니니, 하지 말아라. 트럭도 타야 한다고, 외지도 많이 가야하고. 아무래도 험한 일 아니냐.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누나도 반대하더라고요. 심지어 점집까지 가서 물어보고 왔다고요."
그걸 듣는 창현씨 속도 무너졌다. 그 역시 가슴 뛰거나 좋아서 뛰어드는 건 아녔기에. 아버지가 밥은 굶지 말라고 권했던 일. 그걸 어떻게든 해보기로 한 거였다.
절박해서, 길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전까진 한 길만 죽어라 달려왔었다. 그게 태권도였다. 공부할 시간까지 다 갈아 넣어 운동에만 매진했었다.
매일 숨이 터질 듯했던 힘겨운 시간. 그러나 태권도 메달 하나 걸기가 힘들었다. 노력으로 넘어설 수 없는 재능이 있음을 받아들였다. 운동이 좋아 8살에 보내달라고 그리 졸랐던 태권도장. 무수히 발차기하던 그 공간을 떠날 때가 온 거였다.
전부라고 믿었던 게 다 사라졌던 날. 어쩌면 해왔던 태권도에 기대어, 태권도장을 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었던 순간.
창현씨가 방충망을 트럭에 싣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새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무거운 걸 들고, 드릴을 잡고. 다 한 번도 안 해봤던 일이라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게 이거였어요. 일이 없구나. 일이 있어야 일을 하는데 말이죠."
아무리 방충망 설치를 잘해도 소용없었다. 일이 없다면. 저절로 들어오는 게 아녔다. 어떡해야 하나. 홀로 원룸에서 고뇌하는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차올랐단다.
경쟁 상대인 방충망 기술자들은 연륜이 많았다. 스스로 일을 잘 찾았다. 넉살 좋고 인맥도 있고 동네 주민 소개도 잘 받고. 그런 능력이 부러웠다고.
반면 제대 후 얼마 안 돼 빡빡 깎은 머리에, 어릴 적 슈퍼 심부름도 부끄러울 만큼 숫기 없던 청년은 서툴렀다. 창현씨가 당시를 회상했다.
"더는 뒤로 갈 곳이 없더라고요.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 들었지요. 사람을 상대해서 설득하고 일을 따내지 않으면요.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부동산 하는 부모님께서 쓰시던 커다란 노트북을 품어 가져왔다. 그걸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정말 진부한 얘기인데, 그냥 요령없이 매일매일 했어요. 보든 안 보든 하루에 3~4개씩 계속 올렸지요. 방법이 잘못됐어도 그냥 이걸 해야 한다, 그런 열망이 있었나 봅니다."
삶에서 잠을 가장 적게 자던 때였다. 방충망 일이 끝나면 새벽 2시까지 블로그를 올리는 데에 몰두했다. 방충망 시공하는 것도 올리고, 밥 먹는 것도, 음악 새로 나온 것도 막 올렸다. 새벽 6시면 일어났다. 하루 4~5시간만 자던 때였다.
6개월을 그렇게 하니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글을 쓰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블로그를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효과가 있는 거였다.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돈도 안 들였는데 홍보가 되는구나, 부닥치며 배운 것들이 있었다. 월 500만원에서 많을 땐 1000만원까지 벌던 때였다.
"방충망 일을 하며 제 장점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온라인으로 들어가니 제가 유리한 거예요. 경쟁 상대가 대부분 50~60대이니까요.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을 했다면 경쟁력이 크게 없었겠지만요. 이거다 싶었어요. 젊음을 무기로 마케팅을 하자. 정체성을 '젊은 기술자'로 하자."
고객 눈에 깔끔해 보이도록 외모도 더 신경 썼다고. 항상 왁스를 발라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작업 조끼를 입었다. 신뢰감이 가서 좋단 말, 젊은 사람이라 잘할 것 같단 말, 그리 열심히 사니 보기 좋단 말. 똑같은 노력을 넣어도 얻는 게 더 많은 느낌이었다고.
하나의 씨앗이 만들어졌다. 그게 재밌었다. 그러니 더 몰입했다. 더 잘할 방법을 계속 찾았다. 가장 좋은 건 '칭찬'이었다.
"집에 방문해서 아이가 있으면요. 몇 살이냐고, 씩씩해 보인다고, 예쁘다고, 칭찬해줬지요. 집이 크면 큰대로 좋다고 하고, 작으면 작은 대로 요즘 작은 평수가 대세라고 했지요. 말로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잖아요. 삶의 지혜들을 그때 얻었지요."
청소하는 일을 한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또 반대했다.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인식, 이런 걸 또 직면했다. 그때 창현씨가 떠오른 게 있었다.
"방충망 기술로 돈을 벌었는데도, 청소를 해본다고 하니 반대하시는 거예요. 그런 인식 때문에, 현장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친구들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 뭔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도 있다. 대학에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한다. 스펙이 뛰어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좋은 대학 간 사람이 몇 퍼센트 정도 되겠어요. 그러지 못한 친구들은 선택지가 적잖아요. 제 얘기이기도 하고요. 저도 그랬는데, 이렇게 해보니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고,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 '열현남아'를 시작했다. '열정적인 남자'를 뜻하는 '열혈남아'에서, 글자 하나를 그의 이름 중 하나인 '현'으로 바꿨다.
몸을 써서 기회 만드는 이들이 있다고. 사회에서 흔히 떠올리는 밥벌이가 아닌, 기술을 배우고 현장에서 땀 흘리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목수가 된 31살 청년. 아이돌을 그만두고 페인트 기술을 배우는 29살 청년. 20살에 방충망 기술을 배운 여성 청년까지.
열정이 느껴진다, 설렌다, 힘을 얻었다, 형 채널을 보고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존경한다, 멋지다. 상상하지 못한 직업의 상세함을 본 이들의 반응이 이랬다. 그로 인해 인식과 처우도 더 많이 바뀔 거라고. 창현씨는 이런 게 뿌듯하다고 했다.
"1만명이 영상을 보고 영향이 됐을 때 정말 가치가 있다고 느껴요. '열현남아님 덕분에 스펙도 없는 제가 1년에 얼마를 벌고 있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피곤하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고요. 한때는 뒤처졌던 내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구나, 쓸모 있는 존재구나,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지요."
창현씨 채널을 보고 기술직에 뛰어들었다고. '기술직 키즈'가 나온 것 같아 좋았단다.
"스무 살이란 젊은 나이에 누구의 도움도 안 받고 홀로 창업했어요. 길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기존에 방충망 가는 일이 50~60대 분들이 주로 했거든요.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고민. 현장 기술직의 경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란다. 어떤 직업이 인식이 좋은 이유 중 중요한 부분이, 다 돈을 잘 버는 것과 연관 돼 있다고.
에어컨 설치로 하루 일당 50만원, 월급 3배 올려준 타일시공, 실내 계단 만들어 월 1500만원 등 그의 채널에 있는 영상 제목이 이해됐다.
그렇다고 이게 최고니까 이걸 하라는 건 아니라고. 창현씨가 말했다.
"누군가에겐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선호할만한 직업군으로서 선택지가 없었는데, 이런 게 있다, 그렇게 동일선상에만 올라와도 좋지요. 전형적으로 꿈꾸는 일은 문이 좁은데, 거길 못 가는 인력은 남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 가고 싶어 하는 길이 다양해서 자리가 다 채워지면 얼마나 좋아요."
끝으로 기술을 배우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면, 진짜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장점과 단점은 뭔지, 내게 맞는지 아닌지를. 어느 회사에 들어가려면 토익 점수를 만들고 며칠씩 준비해야 하듯, 간절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바뀌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인터뷰 내내 하고픈 것 같았던 말이 여기에 다 있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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