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자본이 기부하는 공간
도시는 무수히 다양한 기능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거주할 집, 사업을 영위할 사무공간과 공장과 같은 제조시설,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상점 등 우리가 먹고 사는데 필요한 시설들이 갖추어져야만 제대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공간들만 지닌다면 도시의 조건을 만족시킨다고 할 수 있을까? 교양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학교, 도서관, 육체적 건강함을 유지시켜줄 체육관, 공공 행정 서비스와의 접점이 되어줄 관공서, 문화 생활의 욕구를 해소해 줄 미술관 등 무수히 많은 공공시설들이 마련되어야지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의 면모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도시의 복합체를 구성하는 이 다양한 공공시설들은 어떻게 공급이 될까? 집과 사무공간, 상점 등은 수익형 부동산으로서 자본 증식의 방편이 되어 대부분 자연스럽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수익과 연계되지 않지만, 도시를 완성하기 위해 빠질 수 없는 공공시설들은 비영리성 탓에 공공이 공급하는 게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경제권으로서 사회가 성장하게 되면 그에 따라 기대하는 공공서비스의 질은 올라가게 된다. 공공이 국민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이 기대 수준의 상승에 발맞춰 팽창한다면 공공시설의 공급이 원활하겠지만, 아쉽게도 국가의 예산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서비스의 수준을 따라잡기 점차 버거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에서 공공시설을 공급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차 신사옥 개발, 압구정 아파트 재건축 등은 기부채납 공공시설 조성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기부채납은 민간이 도시 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상응하는 공공시설을 제공하여, 서로 윈윈(win-win)하자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를 통해 공공은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공급하기 어려운 공공시설을 확보하여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민간은 원하는 밀도의 도시 개발을 통해 수익성을 담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적 도시 관리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논란이 되는 사례들처럼, 민간과 공공의 협상은 그 균형점을 찾기 어렵기 마련이다. 이렇게 서로 간의 이득과 손해를 계산기로 두드리며 조성되는 장소에 시민들을 위한 공공공간의 철학이 온전히 담겨있을지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봄 일본 도쿄에 방문하여 살펴본 여러 공간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MUFG PARK'라고 하는 공원이었다. 일본의 3대 대형 은행 중 하나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이하 MUFG)이 소유하고 있는 곳으로, 도쿄의 서쪽 무사시노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공원은 본래 MUFG가 1952년 그룹의 연수소로 사용하던 대규모 녹지이다. MUFG는 오랫동안 녹지로 보존된 천혜의 환경을 인근 주민들과 공유하자는 취지로 지난해인 2023년 6월 MUFG PARK로 새단장하여 일반에게 개방하였다. MUFG PARK는 도심의 귀중한 녹색환경, 시민의 건강증진환경, 커뮤니티의 교류환경 등 세 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심에는 마을도서관인 '마치라이브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나지막한 검은색 경사지붕 아래 자리한 넓지 않은 크기의 '마치라이브러리'는 전면에 넓은 잔디마당을 마주하고 있다. 잔디마당과 도서관 사이는 문턱을 제거한 투명한 유리창이 경계를 지우며 책을 읽는 공간과 공원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넓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도서관과 잔디밭을 자유롭게 오가며, 주민들이 기부한 책을 꺼내 읽거나,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오후를 만끽하면서 말이다.
MUFG PARK의 사례를 보며 민간의 기획력과 자본은 현대사회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기업의 사명과 공공공간의 기부가 일치할 때 얼마나 훌륭한 결과물을 생산해 낼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는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민간을 공공의 섹터에 초대하고 기여하는 과정이 어떻게 하면 서로 간의 이득을 계산하며 뺏고 빼앗기는 과정이 아닌,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사업자의 사회기여 활동으로 연결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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