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이 일기장에 있다 [프리스타일]

김다은 기자 2024. 6. 2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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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진이(가명)는 정신이 쏙 나가 있다.

유진이는 "평소랑 똑같은데 왜 그래?" 한다.

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사진이나 연락처를 주면 안 된다고, 부모는 유진이에게 신신당부를 해놓은 터였다.

유튜브 채널을 삭제하던 날, 유진이는 일기장에 뭐라고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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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요즘 유진이(가명)는 정신이 쏙 나가 있다. 유진이는 “평소랑 똑같은데 왜 그래?” 한다. 부쩍 ‘다이소’를 자주 들락거린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달라고 조른다. 휴대전화를 계속 의식하고, 뭘 하다가도 몰래 화면을 켠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유튜브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히는, “나도 친구들처럼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어”였다.

초등학교 3학년인 유진이의 친한 친구들은 거의 ‘유튜브 크리에이터’이다. 주로 다이소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사서 언박싱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영상에 친구들 얼굴이 나오진 않지만 목소리나 손을 보면 숨길 수 없이 어린 티가 난다. 그러다 비슷한 종류의 영상을 만드는 ‘언니 오빠들’이 말을 걸어왔다. 서로 채널을 구독해주고 오픈 채팅방도 만들어서 놀자고 했다. 그 오픈 채팅방에 유진이도 초대됐다.

친해진 언니가 있었다. 귀여운 선물을 보내주고 싶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유진이 얼굴이 궁금하다며 사진도 보내달라고 했다. 유진이는 언니가 특별하게 대해주는 게 좋아서 사진도 보내고 전화번호도 알려줬다. 언니에게 포카(포토카드)와 스티커를 선물하려고 ‘당근’ ‘번개장터’ 같은 중고거래 앱도 깔았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 몰래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연합뉴스

여기까지가 며칠 전 지인에게 들은 ‘유진이의 보름천하’ 이야기다. 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사진이나 연락처를 주면 안 된다고, 부모는 유진이에게 신신당부를 해놓은 터였다. ‘그루밍 범죄’ 등 혹시 모를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언니’라는 말에 유진이는 쉽게 경계를 풀었다. 어린이가 타인을 쉽게 믿는다는 건 그만큼 좋은 어른들이 주위에 많았다는 얘기일 거다. 작은 실수들로 소매 끝이 젖어도 얼른 닦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준 이들 덕분에 익숙하게 애정과 믿음을 타인에게 나눠준 것이리라. 여름이 오면 볕이 충만해지고, 겨울이 오면 별 무리가 짙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런 마음들은 이제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꾸깃꾸깃 접어 주머니에 넣어두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 역시 조금 슬픈 일이다.

유튜브 채널을 삭제하던 날, 유진이는 일기장에 뭐라고 썼을까. 나쁜 어른과, 그들을 경계하는 보호자의 머릿속과는 달리 그곳엔 조금 더 온화한 낱말들이,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응당 줘야 하는 것들이 들어갔기를. 여름의 첫 복숭아 기다리기, 주말에 한껏 낮잠 자기, 비 오는 날 보송한 이불 속에 누워 있기 같은 것들. 세상의 빛과 어둠이 어린이들의 일기장 속에 있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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