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와 밀착한 북, 중국 거리두기? ‘두만강 하류’ 삼각협력이 가늠자
북한·중국·러시아 3국이 접경(국경) 협력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5월16일 베이징 회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지난 19일 평양 회담이 핵심 동력원이다.
협력의 무대는 3국이 만나는 두만강 하류.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류를 거쳐 바다로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건설적 대화”를, 북·러는 ‘두만강 국경 자동차 다리 건설’을 합의했다. 북한의 나선특별시, 중국의 훈춘시, 러시아의 하산지구를 잇는 두만강 하류의 삼각지대는 ‘북방 경제의 핵심 지역’이 될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3국 협력의 속도와 향배를 가늠할 쟁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이 조-중 수교 75돌인 올해 중국을 방문하느냐다. 둘째, 3국이 대미국 전략을 둘러싼 미묘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느냐다. 서로 얽힌 두 문제가 어떤 궤적을 그리느냐에 두만강 하류 3국 협력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관측이 많다.
■ 중-러 ‘5월 합의’ 중·러 정상이 시동을 먼저 걸었다. 공식 문서인 ‘공동성명’에 “쌍방은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류를 거쳐 바다로 나가 항행하는 사안과 관련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건설적인 대화를 진행할 것이다”라고 명기한 것이다. 태평양과 이어진 동해로 나갈 뱃길과 항구를 확보하지 못한 중국의 어려움을 3국 협의로 풀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압록강·두만강을 끼고 북한과 1334㎞에 이르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지린성 훈춘시 팡촨이 동쪽 끝 국경이다. 팡촨 너머 동해에 이르는 두만강 하류 16.93㎞는 중국의 주권이 닿지 않는 북-러 국경이다. 청나라가 제2아편전쟁 패배로 영국·프랑스·러시아와 맺은 1860년 베이징조약에 따라 제정러시아에 동해와 맞닿은 연해주 땅 60만㎢를 빼앗긴 탓이다.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3국은 이 문제와 관련한 숱한 협의·합의를 했지만 중국의 동해 출해는 아직 ‘현실’이 아니다.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이 ‘동해 출해’를 “역사의 꿈”이라 한 까닭이다.
■ 북-러 ‘6월 합의’ 북-러 정상회담 뒤 공식 발표엔 ‘중국 선박의 동해 출해’ 관련 내용이 없었다. 그 대신 북한 국토환경보호상과 러시아 운수상이 ‘두만강 국경 자동차 다리 건설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두만강 하류를 낀 북-러 국경을 잇는 교통로는 흔히 두만강철교라 불리는 ‘우정의 다리’ 하나뿐이다. 1952년 나무다리로 시작해 1959년 철교로 개건돼 지금에 이른다. 북·러의 새 협정은 두만강역과 러시아의 하산역을 이을 국경 교량을 건설해 왕래·교역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3국 협력이 아닌 북·러 양자 협력이다.
■ 김정은의 대중국 ‘지렛대’ 북쪽이 ‘중국의 동해 출해’에 반대한 게 아니냐고 미리 단정할 일은 아니다. 북-중 관계에 밝은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25일 한겨레에 “중국의 동해 출해 문제는 김정은이 시진핑을 상대로 쓸 수 있는 중요한 협상 레버리지(지렛대)”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수교 75돌인 올해 안에 방중해 시 주석과 마주앉으려면 ‘협상 카드’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해석이다. 더구나 지금 북-중 관계는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1월1일 ‘조중 친선의 해’를 공동 선포했음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와 별개로 두만강철교가 높이 7m의 낡고 낮은 다리라 대형 선박의 항행을 막는 구조물이라는 사실에 이번 북-러 협정이 3국 협력의 기반을 닦는 선행 조처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반미연대’의 균열? 대미 전략 차이는 3국 협력의 향배를 가를 핵심 변수다. 중국도 북-러 조약에 명기된 “일극세계질서”를 대체할 “다극화한 국제질서” 지향에 동의한다. 하지만 중국은 북·러가 강조하는 “반미연대”에 전적으로 함께할 처지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고강도 제재 탓에 미국·서방과 경제 연계가 사실상 끊긴 북·러와 달리 중국은 탈냉전기 ‘지구적 경제질서’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 미국·서방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은 미국과 친구가 될 준비가 돼 있다. 지구는 두 나라가 모두 성공할 수 있을 만큼 넓다”고 역설한 터다. 북·러의 ‘반미연대’와 방향이 다른 ‘공존 모색’이다. 스탈린 사후 1950년대 후반 불거진 중-소 분쟁기 소련의 ‘평화 공존’ 대 북·중의 ‘미 제국주의와 비타협적 투쟁’ 구도가 뒤집어진 모양새다.
다만 ‘동해 출해’ 문제는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추진해온 ‘두만강을 활용한 북극항로’ 개척의 선결 과제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두만강 하류 3국 협력은 북·중·러 전략 협력의 가늠자이고 중국의 동해 출해권 확보 여부는 두만강 하류 3국 협력의 가늠자”라며 “김정은의 올해 안 방중이 성사된다면 중국의 동해 출해 관련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 북-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가 북·중·러 3국 협력의 1차 가늠자라는 지적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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