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섬가이즈-B급 정서 충만한 요절복통 잔혹 소동극[시네프리뷰]
2024. 6. 26. 06:01
오래간만에 영화를 보며 신나게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시사회를 통해 나온 반응은 고무적이지만 극단적인 흥행 결과가 반복되는 시장 상황에서 과연 이 영화가 어떤 평가와 성과를 거둘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영화시장의 분위기상 코미디 영화는 기세가 약하다. 일단 다른 감정에 비해 웃음에 관한 사람들의 기준과 폭이 다채롭다 보니 다수의 공감을 자아내려는 시도 자체가 큰 도전이다. 엔간해선 관객들을 ‘웃기는’ 게 아니라 ‘우스운’ 취급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행히 그럭저럭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는 데 성공적인 완성도를 갖췄다 하더라도 (몇몇 대작에만 희박한 가능성이 주어진) ‘대박’ 아니면 나머지는 ‘쪽박’으로 양분된 유통 생태계 안에서 눈에 띄는 것 자체가 힘들다.
물론 기적 같은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객 1600만 명으로 국내 상영 영화 중 역대 흥행 2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나름 전설로 대접받는 <극한직업>(2019)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극장가가 직격탄을 맞은 2022년 8월 개봉한 <육사오(6/45)>는 관객 198만 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겨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개봉 직전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기에 그 결과가 더욱 놀라웠다. 심지어 베트남에서도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역대 한국 영화 관객 수 1위 및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사실 한국인들은 영화를 볼 때 ‘눈물’만큼이나 ‘웃음’을 좋아한다. 영화 작업 현장에서는 성공하기 위해서 장르 불문하고 반드시 유머 코드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존재할 정도다.
서구식 난도질 코미디의 성공적 현지화
형제애보다 끈끈한 우정으로 뭉친 재필(이성민 분)과 상구(이희준 분)는 목수다. 드디어 목돈을 모아 오랫동안 꿈꿔온 숲속의 오두막으로 이사한 날, 하필이면 근처에 놀러온 젊은이들이 선량한 이들의 일상에 끼어들면서 제대로 지옥문(!)이 열린다.
이 작품은 2010년 공개된 캐나다, 미국 합작영화로 일라이 크레이그가 연출한 <터커 & 데일 vs 이블>의 공식 리메이크작이다. 원작 영화는 통속적 유머와 잔혹한 묘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국내에서도 소수 열혈 팬을 확보한 작품이다.
험악한 외모로 인해 살인마로 오해받은 순박한 두 주인공이 연이어 발생하는 연쇄적 죽음에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입되는 중반까지는 큰 틀에서 비슷한 설정과 흐름으로 진행된다. 후반을 치달으며 새롭게 손본 주변 인물들의 구성과 비중이 빛을 발하고, ‘염소 귀신’을 필두로 한 악마의 현신이라는 원작에는 없는 오컬트적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웃음과 재미를 추가했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남동협 감독은 오랜 기간 여러 작품의 조감독을 거치며 현장에서 단련한 인물이다. 사이사이 아쉬움도 눈에 띄지만,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단점보다 도드라지는 장점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발칙한 연출·뻔뻔한 연기의 충만한 시너지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조용한 가족>(1998)이나 한국 공포 코미디의 컬트(소수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작품)로 자리매김한 <시실리 2㎞>(2004)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감독이나 작가가 앞선 작품들을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시실리 2㎞>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또 <시실리 2㎞>에서 모태 노안(老顔)으로 등장해 큰 웃음을 선물했던 배우 우현이 이번 작품에 ‘김 신부’로 등장하는 것 역시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하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이성민·이희준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고 전해진다. 초창기 무대 연극을 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두 사람 협연은 <남산의 부장들>, <마약왕>, <로봇, 소리> 같은 영화에서도 이어졌다. 이런 관계이다 보니 어느 때보다 두 사람의 앙상블이 중요한 이번 작품에서는 좀더 유리하게 작업할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영화를 보며 신나게 웃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시사회에서 나온 반응은 고무적이지만 극단적인 흥행 결과가 반복되는 시장 상황에서 과연 이 영화가 어떤 평가와 성과를 거둘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제목: 핸섬가이즈(Handsome Guys)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1분
장르: 코미디, 공포
감독: 남동협
출연: 이성민, 이희준, 공승연, 박지환, 이규형, 우현
개봉: 2024년 6월 2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위기의 한국 영화계가 선택한 대안, 리메이크
최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영화계가 선택한, 눈에 띄는 자구책 중 하나는 ‘리메이크’다. 이미 재미와 흥행에서 검증받은 작품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기본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상식적인 기대와 계산에서 발현된 대안이다. 거기에 한국 시장에 부합하는 적절한 각색만 더해진다면 성공의 확률은 높아진다.
홍콩 영화 <천공의 눈>(跟蹤·2007)을 각색한 <감시자들>(2013)이나, 이탈리아 작품 <퍼펙트 스트레인저>(2016)를 원작으로 만든 <완벽한 타인>(2018)의 성공은 이런 기대에 확신을 안기는 낙관적 전례다.
얼마 전 개봉했던 강동원 주연의 범죄스릴러 <설계자>는 홍콩 영화 <엑시던트>(意外·2009)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오는 7월 개봉 예정인 조정석 주연의 <파일럿>(사진)은 스웨덴 영화 <파일럿>(Cockpit·2012)을 현지화한 작품이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항공기 조종사가 궁여지책으로 여장을 선택하고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을 그린 코미디다.
아르헨티나 영화 <노키즈>는 권상우·문채원 주연의 <우리들은 자란다>, 아이슬란드 영화 <램스>는 <정가네 목장>으로 각색됐고, 국내에서도 흥행한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도 한국판으로 만들어져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은 리메이크 작품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도 업계의 통념이다. 그래서 홍보하면서 굳이 리메이크라고 밝히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차라리 원작 영화가 있음을 소극적으로라도 밝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누가 봐도 기존 작품과 유사함에도 아예 판권 문제를 묵과한 채 공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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