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서는 무너지고, 신질서는 감도 못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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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조선의 적대성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1990년을 전후한 미·소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적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남북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구질서'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반면에 '신질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럼 '신질서'는 무엇인가? 한국과 조선은 1991년 8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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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조선의 적대성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1990년을 전후한 미·소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적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체의 대화와 소통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주적'이라고 부르고 '건들기만 해봐라'며 으르렁거린다.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정치군사적으로는 가장 적대적인 현실이야말로 한반도 구성원들에겐 가장 큰 불행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은 2024년 들어 불쾌지수를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는 양측의 풍선 살포와 확성기 방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깝기에 풍선에 전단이나 쓰레기를 넣어 상대에게 보내거나 비방 방송을 하는 것이 수월하다. 또 적대적이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오늘날 남북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구질서'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반면에 '신질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구질서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부터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합의들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이들 합의가 위태로운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오늘날만큼이나 그 토대가 무너진 적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되살릴 수 있는 여건이 유실된 적도 없다. '통일지향적인 남북관계 특수론'이 사실상 파탄난 것이다.
그럼 '신질서'는 무엇인가? 한국과 조선은 1991년 8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국제법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족과 통일 담론이 너무나도 강했던 나머지 일반적인 의미의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은 두 국가로 고착되었다'며 민족과 통일 지우기 나서고, 윤석열 정부는 이를 ‘반민족·반통일’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유의 북진과 통일을 더 강하게 부르짖고 있는 현실이다.
올해 2월의 일이다. 한국이 쿠바와 수교하면서 상당수 언론들은 "유엔 회원국 가운데 남은 미수교국은 이제 시리아만 남게 됐다"고 보도했다. 챗GPT에 물어봤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미수교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시리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불일치'가 아닐 수 없다.
상대가 싫다고 해서 나라 전체를 어딘가로 옮길 수도 없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특수관계론'에 입각한 구질서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길게는 분단 이후, 짧게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통일 지향적인 남북관계 수립'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 내부에서부터 '신질서'에 대한 논의를 차분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신질서는 유엔 헌장을 비롯해 남북이 함께 가입하고 인정한 국제법에 기초해 남북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법적 접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대성을 완화하고 평화 공존의 토대를 만드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를 '일반적이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두 국가'로 만들려는 노력이 힘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남북관계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남북이 유엔 헌장을 존중키로 한다면, '한국의 유사시 무력통일론'과 '조선의 유사시 무력편입론'을 함께 해소함으로써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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