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우리는 매번 같은 답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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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벌거벗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과 아이들이, 다른 한쪽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다.
겁에 질린 한 아이는 어머니를 향해 도망치고 다른 아이는 임신한 어머니에게 얼굴을 묻는다.
그런가 하면 맨 뒤에서 발포 명령을 내리고 있는 군인의 칼과 갑옷은 중세의 것으로 보인다.
몸을 돌리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은 폭력의 보편성과 익명성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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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벌거벗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과 아이들이, 다른 한쪽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다. 녹회색조로 그려진 거칠고 황량한 풍경은 깊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상징과 기하학적 형태로 견고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그림은 ‘게르니카’(1937), ‘시체 구덩이’(1944)와 더불어 소위 ‘피카소의 3대 반전 작품’으로 꼽힌다. 제목에서부터 잘 드러나듯이 ‘한국에서의 학살’은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제작됐다. 일반적으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혹은 신천군 학살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피카소가 특정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뤘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작품의 구도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1814)과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8)을 연상시킨다. 피카소는 이 구도를 다시 사용함으로써 전쟁과 그에 수반되는 폭력행위를 고발한 선배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고야·마네와 마찬가지로 피카소 역시 역사 속 기념비적인 전투 장면을 그리기보다는 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야만적인 전쟁의 참상을 담아내고자 했다. 겁에 질린 한 아이는 어머니를 향해 도망치고 다른 아이는 임신한 어머니에게 얼굴을 묻는다. 두 팔을 아래로 벌리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체념한 순교자처럼 보인다. 피카소는 희생자들을 누드로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무고함과 순수함을 강조했다. 머리에 투구를 쓴 병사들은 금속으로 만든 살상 로봇처럼 보이지만 역시 누드로 표현돼 고대의 전쟁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맨 뒤에서 발포 명령을 내리고 있는 군인의 칼과 갑옷은 중세의 것으로 보인다. 몸을 돌리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은 폭력의 보편성과 익명성을 나타낸다. 피카소는 특정 전쟁의 참상은 물론 반복되는 무차별적인 폭력의 반인류적 본질을 고발코자 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학살’이 제작된 지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전쟁과 무력 충돌로 인한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군비 경쟁과 공포 조장으로 인해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목숨과 가족, 삶의 터전을 잃는다.
반복되는 것은 잔혹한 전쟁의 역사일까, 매번 같은 답만 고르는 우리의 선택일까.
박재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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