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전공의 모집' 서두르는 정부…복귀 마중물 될까
전공의들 ‘시큰둥’…"지방서 빅5에 대거 지원" 전망도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정부가 수련병원에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이달 말까지 속히 처리하라고 채근하고 나섰다.
전공의는 사직서가 수리돼야 다른 수련병원에 취업할 수 있다. 곧 있을 하반기 레지던트 모집을 통해 전공의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수련병원의 인력난을 동시에 해결하는 복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물론 의대 교수들도 이 같은 정부의 방책에 "현장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수련규정을 바꿔가면서까지 전공의를 다시 모집해도 현장에 돌아갈 전공의는 극소수에 불과할 거란 전망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25일)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수련병원들에 "복귀가 어려운 전공의에 대해 조속히 사직 처리해 6월 말까지 병원 현장을 안정화시켜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약 넉달간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보내오던 정부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곧 있을 하반기 레지던트 모집 일정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수련병원들은 매년 3월 전공의를 선발해왔지만 중간에 사직 등으로 자리가 비는 경우 각 병원들은 예외적으로 9월에 충원을 선발 과정을 운영해왔다. 정부는 바로 이 선발 과정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복병이 있다. 전문의 수련 규정에는 '전공의가 사직하는 경우 1년 이내에 같은 과목, 같은 연차로 다시 복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사직 전공의들은 내년 하반기 모집 때에나 복귀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수련병원들의 정식적인 전공의 선발은 3월이므로 2026년 3월까지는 전공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복지부도 이를 모를리 없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4일 중대본 브리핑에서 "사직을 하는 전공의는 내년 이맘 때까지는 복귀가 어렵다고 규정돼 있다"면서 "자리가 비는 경우에는 9월에 다시 충원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추가적으로 더 필요한지는 상황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전공의들의 복귀가 여전히 7%대에 그치자 복지부는 하반기에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길로 이 방안을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다.
권병기 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은 전날 열린 중대본 브리핑에서 "사직서 수리가 된 전공의에게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 기회를 부여할 계획인지에 대해서는 수련병원 등 의료계의 요청이 있어 현재 검토 중에 있다"면서 "9월 모집 절차를 진행하려면 전공의 근무 상황이 확정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6월 말쯤에 사직서 처리 현황이나 상황을 점검해 관련 조치들을 준비하고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공의들과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수련 규정을 개정해 이번 가을 모집으로 다른 병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전공의들은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사직 전공의는 "지금까지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각종 명령을 내리면서 진료지원(PA) 간호사들로도 의료 공백이 없었다고 자랑해놓곤 이제와서 뭐하러 이렇게라도 돌아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나도 안 가고 대부분이 안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전공의들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상당수가 해결이 잘 되면 복귀해서 다시 트레이닝을 받고 싶다고 하더라"면서 "문제는 지금은 해결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복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방 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들이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빅5 등 수도권 대형병원에 진입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사직서 수리가 되고 자유로워진 전공의들로선 다른 수련병원에서 자신의 전공과 연차에 맞는 의사를 구하면 수련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특히 지역에서 근무하던 전공의들이 대거 올라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도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가 지방병원에 들어가진 않을 것이고 지방 병원 사직 전공의는 큰 병원 또는 빅5 병원에 지원하지 않겠느냐"며 "그러면 수도권 병원에는 소수라도 조금 더 찰 여지가 있고 지방은 찰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등 기피과는 빅5도 항상 미달이었는데 이런 데야 이번에도 옮겨오지는 않을 것이고 인기과의 경우는 일부 지방에서 서울로 오고 싶어 하는 전공의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들과 의대 교수들은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병원 특성상 다른 병원으로 옮겨 수련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사직 전공의는 "수도권 전공의들에게 '너희 자리가 이렇게 없어질 수도 있다'며 돌아오라는 협박용이거나 근거없는 갈라치기라고 본다"며 "특히 의료 수련은 도제식으로 이루어지고 전공의는 사실상 병원에서 사는데 선배, 교수들의 눈치밥을 먹으면서 견디기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의대 교수도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병원을 옮겨 수련을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상황도 상황이지만 병원마다 시스템도 달라서 저 병원에서 내과 2년차를 마쳤다고 해서 이 병원에서의 2년차와는 동등한 경험이나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일신상의 이유로 쉬었다가 다시 복직하더라도 자기 병원으로 복직하지 병원을 옮긴 경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모든 가능성을 다 풀어준다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건 알겠는데 정부가 내세운 의료 개혁 목표랑 얼마나 부합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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