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개혁하고 의료정책 바꿔야 산다 [이종철 소장의 의료정책 톡톡]<4>
급여화 부분 늘려 사보험 규모 줄여야
우리나라 실손보험은 의료 과소비와 과잉 진료를 사전에 막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더구나 의료비를 책정할 때도 상호 협의 없이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매긴다. 과소비 과잉 진료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미국 사보험의 경우 ‘자기부담금’ 제도 때문에 보험가입자(환자)가 사전에 정한 일정 액수의 진료비 총액에 도달할 때까지 전액을 본인이 지불해야 한다. 이후 일정 액수가 넘어가면 공동보험으로 보험자와 가입자가 일정 부분씩 진료비를 부담한다.
이때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하면 보험회사가 가격 협상을 한다. 보험회사는 병원 청구액에서 평균 30% 정도로 협상을 한다. 이 때문에 보험회사와 가입자가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면 가입자가 지불하는 돈은 병원에서 청구된 액수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실손보험도 미국 사보험에서 볼 수 있듯이 의료 과소비와 과잉 진료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보험등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실손보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상품을 하나하나 정하고, 어떤 질환에 얼마나 사용 가능한지 상품에 따라 명시돼야 한다. 등재 가능한 상품은 공보험이든 사보험이든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상품이어야 한다. 임상시험을 거치거나 현재 사용하는 상품과의 비교 임상 연구를 거친 상품이면 더 좋다.
둘째, 병원에 가격결정권을 주더라도 보험사가 그 가격을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국민건강보험 단일 보험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실손보험은 보충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충형의 진료는 전체 진료량의 얼마까지 사용이 가능한지 미리 정해둬야 한다. 독일과 같은 30% 정도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넷째, 사보험에 사용되던 많은 돈이 국민건강보험으로 이전돼 필수의료가 살 수 있는 수가 제도가 돼야 한다. 즉, 많은 부분을 급여화해 사보험 규모를 줄여야 한다.
또 현재 제한된 건강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환자들의 병원 이용을 줄여나가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된다. 무엇보다 대학병원급 응급실에 환자들이 몰리지 않고 원활한 응급의료 공급 체계를 갖추도록 현재의 보건소가 응급 1차 의료기관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된다.
응급진료는 어느 한 과가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과가 많은 장비를 가지고 입원병실 없이 운영해야 한다. 민간에 의료를 대부분 맡긴 우리나라에선 비용이 많이 들어 응급실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공공에서 응급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엔 공공 1차 의료기관인 보건소가 전국에 250곳 이상 있다. 이곳에 시설을 갖추면 공공 의료기관에서 의료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 지역 대학병원과의 협업을 통한 응급의료 운영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현재 미국엔 이러한 역할을 하는 1만5000여 개의 긴급진료센터(UCC)가 있다.
다음으로 권역별 의료 전달 체계를 부활시켜야 한다. 이제 KTX, SRT 등 교통수단이 편리해 지방의 1차 의료기관을 거친 환자들이 쉽게 서울의 3차 의료기관을 찾는다. 물론 지역 3차 의료기관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다른 곳의 진료도 받을 수 있고, 다른 의견도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먼저 본인 지역의 3차 의료기관을 거치는 게 맞다. 요즘은 의사들의 수준이 평준화돼 있고 지방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시설도 세계 상위권이다. 이것이 지역 의료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끝으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전공의 교육 수련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 의료는 공공성을 갖는 만큼 전공의 교육 수련 비용은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 비용을 각 병원에서 부담하게 했고 이들에게 진료뿐 아니라 진료 보조 업무도 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게 하는 구조가 됐다. 이를 감안해 진료보조인력(PA)을 제도화해 진료 보조 기능을 분리하고 전공의는 교육 수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진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종철 서울 강남구보건소장 (전 삼성서울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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