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엉겅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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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초 물을 마신다.
뽕잎은 뽕나무만 심어 놓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엉겅퀴는 그렇지 않았다.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엉겅퀴를 뜯어 먹는 것보다 그걸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고 어린 모종을 살리기 위해 애쓴 것이 건강에 더 좋지 않았을까? 어찌 엉겅퀴뿐이랴! 뽕나무도 처음에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애를 쓰다가 하동으로 놀러 갔을 때 우연히 길가 아스팔트 균열된 틈에 어린 뽕나무가 몇 포기 뿌리 내린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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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초 물을 마신다. 생수 대신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여 마신 지가 꽤 오래되었다. 약초라고 이름을 붙여서 그렇지 특별한 비방은 아니다. 내가 가꾸는 텃밭에 있는 평범한 것들이다. 뽕잎 어성초 인진쑥 풍년화 으름 가막살나무 오가피 느릅나무 싸리나무 모시풀 엉겅퀴 등이다.
이런 재료를 주전자에 넣고 끓이는데 눈짐작으로 대충 하기 때문에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때는 너무 진하게 끓여 마셨더니 아내가 간에 무리가 간다고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요새는 연하게 해서 마시고 있다. 이런 약초 물을 꾸준히 마셔서 그런지 여태 큰 병 안 걸리고 건강하게 살아왔다.
앞에서 언급한 약초 가운데 두 가지만 꼽으라면 뽕잎과 엉겅퀴다. 뽕잎은 뽕나무만 심어 놓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엉겅퀴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번식시켜 놓았지만 한때는 보기조차 어려웠다. 엉겅퀴에는 실리마린이란 성분이 많은 데 간 건강에 도움을 준다. 이름 그대로 피를 엉기게 해서 지혈시키기 때문에 혈관 건강과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 예전에는 도시 근교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보기가 무섭게 뽑아 가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한 번은 어느 약초꾼을 따라 진해 해군기지 근처까지 갔는데 오지라서 그런지 엉겅퀴가 많이 있었다. 그날은 가방 가득 엉겅퀴를 채워 왔지만 그분이 이사 가고 나니 혼자서는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찾아가 보았지만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또 한 번은 재약산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엉겅퀴 군락지를 발견했다. 노다지를 발견한 듯 무척 기뻤다. 가방을 내려놓고 한 아름 뜯어왔는데 2~3년 뒤에 가보니 군락지가 텅 비어 있어 허망했다. 나는 엉겅퀴를 보더라도 꽃대나 줄기만 뜯어오는데 남들은 뿌리째 뽑아가니 온전할 수가 있겠는가?
결국은 내가 직접 엉겅퀴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등산을 갈 때마다 혹시 엉겅퀴가 있는지 눈여겨보았다. 부산 주위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아 양산이나 밀양 쪽으로 자주 갔다. 산길을 걷다가 엉겅퀴를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많은 곳이라도 두어 포기만 캐서 배낭에 담아와 텃밭 귀퉁이에 심었다. 아내는 채소가 아니면 잡초 취급을 하는 사람이라 이상한 걸 심는다고 자꾸 변방으로 밀어내었다. 엉겅퀴는 서자 신세가 돼 나무 그늘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시들어 죽고 말았다. 어찌나 안타까운지 마음이 아팠다.
양지바른 밭에 심지 않으니 번식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죽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이젠 엉겅퀴에 귀한 성분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초보 농부도 아닌데 자꾸 죽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사람이 마음먹고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기필코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엉겅퀴를 열심히 보살폈다. 여러 차례 실패한 끝에 드디어 몇 포기가 살아났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씨앗이 바람에 날려서 스스로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귀하디귀한 엉겅퀴 꽃이 가득 피어나자 큰 보람을 느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보랏빛 꽃물결이 일렁거리는 것을 바라보니 한없이 기뻤다. 내가 굳이 저걸 뜯어 먹지 않더라도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처럼!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엉겅퀴를 뜯어 먹는 것보다 그걸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고 어린 모종을 살리기 위해 애쓴 것이 건강에 더 좋지 않았을까? 어찌 엉겅퀴뿐이랴! 뽕나무도 처음에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애를 쓰다가 하동으로 놀러 갔을 때 우연히 길가 아스팔트 균열된 틈에 어린 뽕나무가 몇 포기 뿌리 내린 것을 보았다. 그걸 뽑아와 심었더니 잘 자라서 지금은 내 키보다 훨씬 더 크다. 모시풀은 양산 어느 산자락을 오르다가 뽑아와 심었는데 두 번이나 죽어서 세 번째 심은 뒤에야 간신히 살렸고….
오늘도 채소밭 너머에 있는 약초들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눈 맞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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