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1> 일본 대마도 고구마 ‘고오코이모’ 그리고 ‘센’
- 식재료 귀한 섬의 ‘효도작물’
- 일어 ‘고우코이모’라 불린 것이
- 고귀위마→ 고금아→ 고구마로
-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전분 뽑아
- 그 반죽을 경단처럼 만들어 보관
- 국수·모찌·전·간식 등으로 활용
- 부산의 ‘빼떼기’와 비슷한 역할
흔히들 일본 대마도를 ‘국경의 섬’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을 사이에 두고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마도의 역사를 보면 차라리 경계의 섬이 더욱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의 지역. 한때 대마도는 독립된 국가이기도 했고, 대마도의 다양한 시대상 역사적 여건 등으로 조선에 속하거나 일본에 속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부산에서 직선거리로 50여 ㎞.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더 가까이 위치한 사정도 그러할 것이다.
대마도는 평야가 적고 대부분 척박한 토양의 산간 지역이라 먹을 것이 늘 귀한 지역이었다. 이때 대마도 사람들을 거둬 먹인 식재료가 고구마이다. 고구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구황작물로 널리 이용되던 작물이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인 고구마는 콜럼버스 시절 유럽으로 전래되고, 아시아에는 필리핀을 통해 중국으로, 일본에는 류큐국(현재 오키나와)을 거쳐 규슈 가고시마로 전래된다.
▮허기 달래준 ‘효도작물’
대마도에는 하라다사부로에몬(原田三郞右衛門)이 규슈 남부지방인 가고시마에서 몰래 종자를 밀반입, 대마도에 식재함으로써 널리 보급에 이르게 된다. 당시 대마도는 일본의 영토로 인정되지 않아 고구마의 대마도 전래를 금하고 있었다. 이를 하라다사부로에몬이 몰래 대마도로 반입해 재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 대마도는 이 고구마를 구황작물로 널리 활용하기에 이른다.
원래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사츠마 지방(현재 가고시마)을 통해 전래되었다고 ‘사츠마이모(サツマイモ)’라 부른다. 그러나 대마도에서는 대마도 사람들에게 널리 먹여 ‘효도하는 작물’이라는 뜻에서 ‘고우코이모(孝行芋, 효행마)’라 부른다.
조선통신사 조엄이 1764년 제11차 조선통신사 사행 중 이 효행마를 조선으로 반입해 부산 영도에서 시배한 것이 한반도 고구마 전래의 역사이다. 당시 ‘고귀위마(古貴爲麻)’라 음차하여 부르던 것이, 유희가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어휘사전 ‘물명고’에 한글로 ‘고금아’로 기록한 것이 지금의 ‘고구마’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 고구마는 동아시아에서는 기근을 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작물이었다. 특히 대마도와 조선은 이 고구마로 인해 많은 사람이 허기를 면했을뿐더러,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해 먹기도 했다.
고구마는 맛이 달고 부드러워 먹기도 좋고 영양소도 풍부하다. 그러나 쉬 상하기에 오래 두고 먹을 수가 없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대마도 사람들은 이 고구마를 저장해서 두고두고 먹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센(せん)이다. 센단고(せんだんご), 콧고우단고(鼻高だんご)라 부르는데, 고구마를 발효시켜 만든 전분을 경단 모양으로 말려놓은 것이다. 이 말린 센을 겨우내 저장해 두었다가 물에 풀어 반죽해서 떡이나 국수, 간식 등으로 만들어 먹었다.
▮1000번의 정성 거친 ‘센’
센은 만드는 과정에 손이 많이 가고 여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식재료이다. 3개월에 걸쳐 여러 공정을 반복해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잘 씻은 고구마를 잘게 썰어 물통에 넣고 그 물을 체에 걸러 전분을 만들어 낸다. 이 전분을 한 달 정도 발효시킨 후 손으로 공 모양을 만들어 햇볕에 말린다. 말려 둔 전분을 다시 물에 죽처럼 녹여서 고운 체에 거르고 찌꺼기를 제거한다. 몇 주 후 곱게 침전된 전분을 천에 넣고 물기를 짜서 반죽을 만든다. 이 반죽을 경단으로 만들어 세 손가락으로 콧대 모양으로 콕 집어 눌러서 햇빛에 잘 말리면 비로소 센이 완성된다.
이렇듯 추운 겨울 수개월에 걸쳐 손을 녹여가며 일일이 정성을 다해야만 만들어지기에 ‘천 번의 수고’가 따른다고 ‘센(千, 천)’이라고 부르고, 경단 모양이 높은 콧대처럼 오똑하다고 ‘콧고우(鼻高, 비고)’라 한다는 것이다.
대마도 사람들은 이 센으로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고구마 국수인 로쿠베(ろくべえ)이다. 가루를 낸 센단고를 뜨거운 물에 반죽해 ‘로쿠베에즈키’라는 구멍 뚫린 철판의 국수틀에 반죽을 놓고 손으로 밀어 면을 뽑는다. 일본은 거의 면을 칼로 잘라 국수를 만드는 절면 방식인데 한국 재래방식인 국수틀에 넣고 뽑는 방식이라 독특하다.
뽑은 면을 삶아서 대마도 토종닭이나 벵에돔, 표고버섯 등의 육수에 함께 넣고 일본의 찐 어묵 ‘가마보코’를 올리면 고구마 국수 ‘로쿠베’가 완성된다. 면이 국수틀에서 짧게 끊어져 나오기에 마치 강원도의 ‘올챙이국수’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래서 젓가락보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편한 국수이다. 면발은 쫄깃쫄깃하고 육수는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감돈다.
그 외에도 센 반죽으로 쪄낸 떡, ‘센모찌(せんもち)’와 센모찌 안에 팥이나 고구마 앙금을 넣고 떡갈나무 잎으로 싸서 찐 ‘센치마키(せんちまき)’, 센모찌에 흑당시럽(黑蜜)을 올린 간식 ‘쿠로미쯔가케(くろみつかけ)’ 등이 있고, 센 전분물을 프라이팬에 얇게 구워 흑설탕을 넣고 돌돌 말아서 먹는 ‘��(しゅん)’이라는 간식도 있다.
▮부산은 말려서 ‘빼떼기’로
이 대마도의 고구마는 우리에게도 고마운 구황작물로 아주 소중한 식재료였다. 예부터 부산과 대마도는 오래도록 선린우호의 교류를 이어왔고, 조선통신사의 일본 첫 기착지였던 까닭에 고구마와 같은 식재료로 다양한 음식문화를 공유해 오기도 했던 것이다.
대마도에 ‘센’이 있다면 부산을 비롯한 남부지방에서는 고구마 저장 음식으로 ‘빼떼기’가 있다. 고구마를 얇게 썰어 바짝 말린 것이 ‘빼떼기’다. 고구마를 말리면 수분이 증발해 빼빼 말라비틀어지는데, 이 상태를 ‘빼떼기’라 한다.
이 빼떼기를 넣고 팥이나 콩 찹쌀 등을 섞거나 이마저도 없을 땐 밀가루를 풀어 죽을 쒀 만든 음식이 ‘빼떼기죽’이다. 빼떼기 가루와 밀가루를 잘 반죽해 멸치육수에 끓여 먹는 ‘빼떼기 칼국수’나 ‘빼떼기 수제비’, 밀가루나 쌀가루와 섞어서 동그랗게 절편처럼 쪄낸 ‘빼떼기 개떡’, 떡 사이에 팥고물을 얹어 쪄낸 ‘빼떼기 시루떡’ 등도 만들어 먹었다.
고구마 전분을 저장해 뒀다가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대마도의 센당고와 고구마를 잘라서 말린 후 여러 음식의 식재료로 활용했던 우리네 빼떼기. 만드는 방법과 조리해 먹는 음식은 달라도 저장해서 두고두고 식재료로 활용한다는 방식은 같다.
이렇듯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몇몇 사람이 반입한 고구마는, 양국의 서민들을 거둬 먹이는 애민정신의 효자 식재료가 됐다. 이 고구마로 만든 다양한 음식으로 춥고 주린 겨울을 그나마 따뜻하게 보내게 됐다.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부산과 대마도. 이 고구마를 통한 양국의 ‘우호선린의 역사’가 새삼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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