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쿄도지사 선거포스터, 한 사람 얼굴로 도배
“똑같은 후보 포스터가 왜 이렇게 잔뜩 붙어 있는 거야?”
지난 22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 성인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좁은 길 옆에 시민 5~6명이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웅성였다. 이곳엔 내달 7일 치러지는 도쿄도지사 선거 입후보자 포스터 게시판이 설치됐다. 그런데 포스터 48칸 중 절반(24칸)이 한 사람 얼굴로 도배됐다.
현재 도쿄에 설치된 도지사 선거 포스터 게시판은 약 1만4000개. 이 중 상당수가 미나토구처럼 한 사람의 포스터로 도배되고 있다. 알몸의 여성이 풍속점을 홍보하거나, 반려견 한 마리만 인쇄되는 식으로 선거와는 거리가 먼 포스터도 보인다. 도쿄 한인타운 신오쿠보 인근 게시판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는 일본 땅”이라 적힌 포스터도 잔뜩 있었다.
일본 도쿄의 수장을 뽑는 도쿄도지사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도쿄 곳곳에 있는 입후보자 게시판이 난데없는 포스터들로 어지럽게 도배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보도했다.
‘범인’은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이하 NHK당). 공영방송 NHK의 수신료 징수 문제와 내부 비리를 폭로하며 2013년 출범했고 한때 국회에도 입성했던 단체다.
최근 이 단체 다치바나 다카시(57)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 소속 정치인 24명이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직전 선거였던 2020년 전체 입후보자(22명)보다 출마 후보 수가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정치 경력이 전무하다. 일본에선 30세 이상 자국민이면 누구나 공탁금 300만엔(약 2600만원)을 내고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목적이 선거가 아닌 다른 데 있다는 데 있다. 일본 선관위 규정에 따르면 후보들은 타 후보에 대한 맹목적 비난이나 허위 내용만 아니라면 자신의 포스터를 맘대로 꾸밀 수 있다. NHK당은 이를 악용해 포스터 게시판 절반을 차지하는 24명의 후보를 출마시켜, 이들의 포스터 공간을 일반 시민에게 돈을 받고 팔고 있다. 이에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나 풍속점·정치단체까지 NHK당에 돈을 내고 도쿄도지사 후보 게시판을 이용해 자신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NHK당은 포스터 이용 대가로 하나당 2만5000엔(약22만원)씩 받고 있다. 1만4000개 게시판이 모두 거래된다면, 3억5000만엔(30억4000만원)의 수입을 거두게 된다. NHK당이 이렇게 ‘딴 주머니 욕심’을 부려 후보를 24명이나 출마시키다 보니, 이번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수만 56명이다.
도쿄도가 보유한 포스터 게시판은 최대 48칸. 입후보 순서가 늦은 후보들은 별도의 아크릴판을 게시판 아래에 부착해야만 포스터를 걸 수 있다.
한편 2024 도쿄도지사 선거는 자민당 등 여당 지지를 받는 고이케 유리코(72) 현 지사와 입헌민주당 등 야당 지원으로 출사표를 던진 연예인 출신 렌호(57)의 대결 구도로 흐르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선 보기 드물게, 두 여성 정치인이 맞붙었다.
3선에 도전하는 고이케 지사는 지난 8년간 자신이 펼쳤던 코로나 대책, 육아 지원의 실적을 강조한다. 렌호는 저출산 해결 공약을 전면에 내거는 한편, 최근 집권 자민당이 소속 의원들의 비자금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을 강조하면서 “자민당 천하를 끝내자”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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