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스마트폰 바깥의 세상

최정희 아리랑TV 미디어홍보부장 2024. 6. 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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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모님을 모시고 트로트 콘서트장에 갔다. 손에 표를 들려 드리고 콘서트장 입구에서 헤어졌는데, 두 분은 좌석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직원에게 부탁해봤지만 직원은 ‘직접 찾아야 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막막해진 부모님이 지폐 한 장까지 건네며 사정하자 돕겠다고 나선 직원이 있었는데, 정작 그도 좌석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맸다고 한다. 웬만한 공연장에선 요즘 요청이 없어도 좌석 안내를 해주는데, 관객 대부분이 고령인 콘서트에서 그 정도 서비스를 기대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지 의아했다.

이따금 시외버스 터미널 승차홈에 노인들이 쪼그려 앉아 있는 걸 본다. 대부분 티켓을 예매하지 못해 취소되는 좌석이 나올까 기다리는 분들이다. 한번은 그렇게 운 좋게 버스를 타게 된 어르신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 고향집에 갈 일이 생겨 저녁 6시 40분 버스를 탔는데, 4시부터 터미널에 나와 3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차에 오른 할아버지 옆에 앉은 것이다. 그는 겨우 가게 됐노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조심스레 “휴대폰으로 예매하면 된다”고 하자, 아들한테 몇 번 배운 적 있는데 자꾸 까먹고 번번이 다시 알려달라기도 미안해 무작정 나와서 출발 직전 취소되는 좌석을 기다린다고 했다.

나도 아버지께 휴대폰 사진 전송 기능을 몇 번 알려 드린 적이 있는데, 매번 새로운 걸 배우는 듯 같은 걸 반복해서 묻곤 하셨다. 교직 생활 40년을 하신 분인데 이렇게 번번이 까먹는 학생들을 평생 어떻게 가르쳤을까. 이제는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기 힘든 걸까. 요즘은 주차장 자동차 앞유리에도 전화번호 대신 큐알코드를 놓는 추세라는데, 이걸 알아보고 차 좀 빼달라면서 스마트폰을 갖다 댈 노인이 얼마나 될까.

영화 ‘그린마일’에는 초능력 현상으로 긴 수명을 얻게 된 주인공이 “세상은 점점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하는 이는 모두 떠났다”며 탄식하는 장면이 있다. 그 정도로 긴 수명을 살지 않더라도 노인들에게 휴대폰으로 돌아가는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세상은 점점 좁은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고 휴대폰 밖 세상엔 노인들만 남은 것 같다. 나도 언젠가 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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