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찾는 사람들] “예일대생들, ‘조용한 고통’ 안고 명상실 찾아오죠”

김한수 기자 2024. 6. 2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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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불교 지도법사 수미 런던 김
좌선하고 있는 수미 런던 김. 예일대 불교 지도법사인 그는 "명상은 마음을 업데이트함으로써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수미 런던 김 제공

“명상을 배우는 것은 운전이나 수영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이케아 책장을 조립하는 것보다는 어렵다. 명상을 하는 데 필요한 특별한 자질은 없으며 누구나 명상을 배울 수 있다.”(‘예일대학 명상 수업’ 중)

미국 예일대 불교 지도법사(Buddhist Chaplain) 수미 런던 김(Sumi Loundon Kim·49)은 50년 가까이 선(禪)과 명상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선(禪)불교에 심취해 명상센터에서 생활하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 지식인 사회에 선불교와 명상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평화로운 어린 시절이었을 것 같지만 실제는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육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가 어려움을 이겨낸 배경은 어린 시절 익힌 명상의 힘이었다. 그는 윌리엄스대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베리불교연구소 부소장을 지냈고, 듀크대에서 9년간 불교 지도법사를 지냈다. 2018년 한국인 남편 김환수(일미 스님) 교수가 듀크대에서 예일대 종교학과로 부임하면서 함께 옮겨왔다. ‘청바지를 입은 부처’ ‘붓다 그 첫 만남’ ‘수미, 일미를 만나다’ ‘수미 런던의 가족을 위한 명상’ ‘잘 자, 내 사랑!’(어린이 그림책) 등의 저서가 번역돼 있다. 작년 국내 번역된 ‘예일대학 명상수업’(원제 Meditation Handbook)은 실제로 그가 예일대에서 학생들에게 명상을 지도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예일대학 명상수업’은 비매품으로 사단법인 마인드 아카데미에서 무료 나눔 이벤트 중. mindacademy.org). 유아부터 94세 어르신까지 명상을 지도했고, 현재는 예일대에서 “학생들이 겪는 인생의 고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그를 지난주 이메일로 만났다.

-예일 대학교의 불교 명상실에는 어떤 학생들이 찾아오나요?

“불교 신자는 5분의 1 정도입니다. 5분의 2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힌두교도 등 다른 종교 배경, 나머지는 전혀 종교가 없는 가정 출신입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반반 정도이고요. 제가 2018년 시작했을 때, 약 10명의 구성원이 있었는데 요즘은 1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고, 우편물을 받아보는 사람은 1200명 정도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왜 불교와 명상을 찾나요?

“고통(Suffering)! 명상실에 찾아오는 거의 모든 학생은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나 고통을 유발하는 무언가를 겪고 있습니다. 그들은 즉각적인 대처법 또는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가혹한 부모, 나쁜 이별, 불안, 완벽주의, 정신 건강 문제, 가족의 죽음, 낮은 자존감 등 ‘조용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이곳에서 그들은 ‘고통은 인간 경험의 일부’라고 명백하게 설명하는 ‘영성의 길(spritual path)’에 대해 듣게 됩니다. ‘나만 고통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가 잘못해서 유독 고통받는 것도 아니며, 사실 고통은 일반적(normal)인 것이다.’ 이런 내용을 배우며 큰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영성의 길은 고통을 관찰하고, 고통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고통을 성장의 수단으로 삼고, 심지어 해탈에 이르는 실용적이고 단계적인 방법론을 제공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방법은 바로 명상입니다.”

예일대 불교명상실에서 학생들이 명상하고 있다. /수미 런던 김 제공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는 명상 방법은 어떤 것인가요?

“매년 가을 학기 초에 가장 먼저 배우는 명상법 중 하나는 청각에 관한 것입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거나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를 듣는 데 주의를 기울입니다. 가장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점차 청취 범위를 가까이 가져와 중간 거리의 소리, 주변 방에서 들리는 소리, 옆에 앉은 사람의 소리,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보통 꼬르륵 하는 소리나 숨소리)를 듣습니다. 마지막 몇 분 동안은 우리 자신의 생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소리들이 더 큰 소리 풍경의 일부가 되도록 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작년 가을, 저는 평소처럼 이 명상을 이끌면서 ‘마치 지금 이 순간 예일대학교의 교향곡인 것처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 후 한 2학년 학생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가와 ‘생각도 소리처럼 지금 이 순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통찰이었습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I am, therefore thinking is happening.)’라는 통찰이지요. 그 후 그녀는 꼬박꼬박 명상 워크숍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학생의 이런 ‘아하(aha)’ 순간이 평생 지속되는 수행의 시작이기 때문에 항상 기쁜 마음이 듭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학생들의 명상을 대하는 자세에 변화가 있었나요?

“봉쇄에서 벗어나면서 명상에 대한 관심이 급증해 정말 놀랐습니다. 그 동기는 복합적입니다. 학생들은 한편으론 대면 접촉을 절실하게 바랐고, 다른 한편으론 봉쇄 기간 더 내면적 사색에 잠기게 됐습니다. 봉쇄기간 온라인과 앱을 통해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봉쇄가 풀리자 불교명상실은 학생들에게 가벼운 사회적 접촉, 명상을 실습할 기회, 서로를 지지해주는 느낌, 그러면서도 빠른 속도로 대화를 강요받지 않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사람들은 녹음을 들으며 혼자 하는 명상의 한계를 느꼈던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여 명상하는 라이브 강의가 명상 수행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저서 ‘예일대학 명상수업’에서 무엇인가 기다리는 짧은 순간 하는 ‘미니 명상’을 강조합니다.

“미니 명상, 즉 ‘비공식적(informal) 수행’은 어떤 활동이나 언제든지 할 수 있으며, 특히 집중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 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빨래 개기, 설거지, 식탁 닦기 같은 집안일을 할 때, 양치질, 손 씻기, 양말 신기 같은 일을 할 때 또는 마트에서 줄 서기, 차에 기름을 넣는 동안, 회의 시작을 기다리는 시간 등은 ‘미니 명상’을 하기 좋은 시간들이죠.”

-”명상은 스마트폰을 업데이트하듯 마음을 업데이트해준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업데이트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스마트폰을 업데이트하면 버그(프로그램 오류)가 수정되고 스마트폰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명상을 하면 사물을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음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을 세분화하여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이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모르는 낯선 사람이 입고 있는 옷에 대한 생각은 중요하지 않고, 동생에게 상처받은 느낌에 대한 생각은 우리 사이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나중에 동생에게 화를 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일대 불교학생모임. /수미 런던 김 제공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끝없는 두더지 잡기 게임’이 되기 쉽다며 대신 생각을 관찰하라고 하셨지요.

“뇌는 신체의 한 기관입니다. 심장이 혈액을 펌프질하고 위장이 음식을 처리하는 것처럼 뇌도 항상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뇌의 활동을 정지시키려는 시도는 현실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벌어지는 주변의 소리, 몸의 감각, 호흡의 움직임 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과 감정을 듣거나 보아야 합니다. 생각과 감정을 편견 없이 명확하게 보거나 들을 때 엄청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얽매임과 고통으로부터 가장 큰 마음의 해방을 경험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멀티태스킹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며 가능하면 전자 기기를 끄거나 치우라고 하셨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치워두는 편입니다. 명상할 때는 확실히 꺼둡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휴대폰을 꺼두거나, 자녀가 집에 함께 있다면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3만 피트 상공에서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지루하거나 무언가를 기다릴 때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기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순간은 시선을 안쪽으로 돌려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주변 환경과 세상을 감지하면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뉴스나 소셜 미디어 앱을 스크롤할 때와 조용히 앉아 자신과 주변 세상을 바라볼 때 실제로 어느 쪽이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관찰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아래(스마트폰 화면)를 내려다보지 말고 위를 보거나 안을 들여다보세요.”

‘예일대학 명상수업’ 중에서

“열여섯 살이면 차를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하듯이, 마음챙김 훈련으로 마음과 감정을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개울에 나뭇가지를 꽂으면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생각의 흐름, 방향, 속도 등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게 해준다.”

“양치질을 할 때 치약의 자극과 칫솔의 쓸림, 빨래를 개면서 옷을 접을 때 팔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병에 물을 채울 때 물소리를 들어보자. 마음이 방황하고 힘들면, 몸으로 돌아가자.”

“무엇이든 규칙적으로 연습하면 더 잘하게 된다. 그러니까 화가 나는 대로 화를 내고 분노가 나를 삼키도록 놔두면 나중에도 점점 더 쉽게 화를 내면서 반응하게 된다.”

“용서 명상은 내가 피해를 줬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나 자신을 용서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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