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유월은 비파가 익어가는 시절…[고두현의 문화살롱]

고두현 2024. 6. 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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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파의 생태인문학
남해안서 자라는 아열대 과일
특이하게도 한겨울에 꽃 피워
악기 비파 닮은 데서 이름 유래
"살구도 아니고 매실도 아닌데…
모든 과일 중 우두머리네" 칭송
치료제로 각광…'약 나무 중 왕'
고두현 시인
비파나무는 10~12월에 꽃을 피우고 이듬해 6월 황금빛 열매를 매단다. 맛이 좋고 약용으로도 쓰인다.

남녘에서 아주 특별한 소포가 왔다. 초여름 햇볕에 잘 익은 황금빛 열매, 남해안 일대에서만 나는 아열대 과일 비파(枇杷). 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에 있는 김달진 시인의 생가에서 천 리 길을 달려왔다. 김달진문학관 바로 옆 생가 마당의 비파나무는 해마다 살구 크기만 한 ‘황금 열매’를 조랑조랑 맺는다. 비파는 가을에 꽃망울을 밀어 올리고, 겨울에 꽃을 피우며, 봄에 열매를 매달고, 여름에 노랗게 익는다. 사계절 기운을 두루 갖춘 덕분인지 향이 좋고 맛도 달다.

 중국·일본 사신 갔다가 반한 맛

비파잎 닮은 악기 비파(왼쪽)와 비파형 동검.

비파에 얽힌 사연도 갖가지다. 생태학적 특징부터 인문학적 이야기까지 다채롭기 그지없다. 비파라는 이름은 잎과 열매가 현악기 비파(琵琶)와 닮은 데에서 유래했다. 발음도 한국과 중국, 일본이 비슷하다. 청동기 시대에 쓰인 비파형 동검 역시 생김새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비파형 동검은 중국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전역에서 발굴된 제례 의식용 장신구다. 칼의 하단부가 둥글게 퍼져 있어 악기 비파를 연상시킨다.

비파 열매는 기원전 2세기부터 ‘비파십과(枇杷十果)’라고 해서 중국 남부의 10대 과일로 꼽혔다. <천자문>에 ‘비파는 늦게까지 푸르고 오동은 일찍 시든다(枇杷晩翠 梧桐早凋)’는 구절이 나오듯 사철 잎이 푸른 상록수다. 온난한 기후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경남 남해 거제 통영, 전남 완도 목포 순천, 제주 등 남부에서만 볼 수 있고 중북부에서는 보기 어렵다.

이렇게 특이한 비파를 시인들이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두보는 ‘전사(田舍)’라는 시에서 “굴피나무 가지 가냘프게 드리우고/ 비파 열매 나무마다 향기를 풍기는데/ 가마우지는 서산 지는 해 받으며/ 어량에 모여 젖은 날개를 말리네”라며 한가로운 시골집의 비파 향을 노래했다. 백거이는 노란 열매가 달린 비파나무숲을 묘사한 시뿐만 아니라 비파를 연주하는 여인의 슬픈 사연을 담은 ‘비파행(琵琶行)’까지 썼으니 둘 다를 아우르는 명시를 남겼다.

고려 말 정몽주가 명나라에 갔을 때 쓴 시 ‘양주식비파(楊州食枇杷)’도 흥미롭다. “타고난 성품이야 남방에서 자라는 것이나/ 곧은 자태는 추운 겨울도 지낼 수 있네./ 잎이 무성하여 물총새 깃 섞인 듯하고/ 열매는 익어서 금방울이 모인 듯하네./ 약봉지에 넣어 두면 쓰임이 있을 테고/ 찬 쟁반에 담아 올리면 먹을 만하리./ 초나라 강가에서 새 비파를 맛보니/ 씨앗 품고 가 동쪽 나라에 심고 싶어라.” 하지만 고국에 돌아와 씨앗을 심은들 개경에서는 키우기 어려웠으리라.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조선 초 문신 송희경은 비파 그림 부채에 “황금 탄환 밀랍 탄환이/ 살구도 아니고 매실도 아닌데/ 겨울에 꽃 피고 여름에 열매 맺으니/ 모든 과일 중 우두머리네”라는 시를 적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간 문신 조경은 비파 맛을 “이빨로 깨물자 입에 침이 고이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가슴이 산뜻해지네”라고 표현했다. 이들에게 비파는 신비한 이국의 과일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국내에도 비파 재배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 정조 때 조현범이 쓴 <강남악부(江南樂府)> 오림사(五林詞) 편에 비파 숲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따르면 연산군 때 목사를 지낸 신윤보가 1545년 을사사화 후 낙향해 순천에 오림정(五林亭)이란 정자를 지었다. 오림정은 송매비유죽(松梅枇柚竹: 소나무, 매실나무, 비파나무, 유자나무, 대나무)의 다섯 종류 나무로 조성한 숲속 정자를 뜻한다. 이 지역에선 16세기에 벌써 비파나무 숲이 있었다는 얘기다. 순천과 가까운 남해에서도 “내 고장 유월은 비파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며 이육사의 시를 패러디하곤 했는데 그때 추억이 아련하다.

비파나무는 뛰어난 약효까지 지녔다. 고대 인도에서 비파나무는 약 나무 중 으뜸인 대약왕수(大藥王樹), 비파잎은 모든 근심을 없애는 무우선(無憂扇)으로 불렸다. 우리에게도 “비파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세종 때 편찬한 <의방유취(醫方類聚)>에는 위암을 낫게 하는 약재로 비파잎이 등장한다.

 비파 활용한 요리법도 갖가지

남송시대 화가 임춘이 그린 ‘비파산조도’.

소설 <동의보감>에도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위암에 걸렸을 때 친구 김민세가 비파잎 냄새를 맡고 금방 알아채는 장면이 나온다. “한 가지 묻세. 내 몸에 반위(위암)가 생겨난 걸 어찌 짐작했는가?” “그대 입에서 비파잎새 삶아 먹은 냄새가 났네. 지금도 나고 있고….”

화가들도 비파 열매와 잎을 그림 소재로 즐겼다. 장승업과 안중식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에 묘사된 비파가 눈길을 끈다. 이한복의 ‘비파난화’도 유명하다. 김홍도는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에서 베옷 입은 선비가 비파 악기를 타는 모습을 그렸다.

비파나무는 병충해에 강해 따로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란다. 단맛이 나는 열매를 물에 헹궈서 그냥 먹으면 된다. 오래 보관하기는 어려우므로 주스나 차, 잼, 통조림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학계의 연구가 이어져 향긋한 풍미의 비파 와인과 비파 식초, 아토피 치료에 효과적인 화장품까지 개발됐다. 중국 이민자가 하와이에 비파를 전파하고, 일본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브라질로 옮긴 뒤 지금은 남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퍼져 다양한 비파 요리법이 생겼다고 한다.

오는 10월 12~13일 진해에서 열리는 김달진문학제에는 외국 시인을 비롯해 문인들이 대거 모인다. 이 기간에 김달진 시인 생가 마당의 비파나무 가지 끝에 맺힌 꽃망울들을 볼 수 있다. 부드러운 갈색 털에 싸인 알알의 망울들이 앙증맞다. 이들 애기꽃이 날씨가 추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엄동설한에 원추꽃차례마다 팝콘처럼 흰 꽃을 앞다퉈 피워내는 모습도 장관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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