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13. 파독광부와 태백
파견 전 장성·도계광업소 현장서 훈련
“석탄 캐는 방법 독일어 배운 기억 새록”
함태광업소 3년 근무하다 독일로 파견
“한국 떠나기 전 교육 받고 태동한 곳”
태백시 순직산업전사위령탑 성역화 사업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협 동참의사
“외화 벌어 ‘한강기적’ 국가 발전에 일조
석탄산업 주역 한자리 의미 남다를 것”
“태백과 삼척은 파독광부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파독광부들 중 독일로 떠나기 전 태백과 삼척 등 강원도를 거치지 않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태백 장성광업소와 삼척 도계광업소는 국가가 이들이 독일로 떠나기 전 광부로 태동하게 한 곳이다. 파독 광부들은 지금도 태백 장성광업소와 삼척 도계광업소를 생각하면 향수에 젖어들곤 한다. ‘마음의 고향에 묻히고 싶고, 이곳에서 기억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강원도에서 태동한 파독광부
1963년~1977년 독일로 파견된 광부들은 독일로 떠나기 전 태백과 삼척의 광업소에서 한 달 반 정도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당시 파독광부 지원자 10명 중 9명이 광산을 구경해본 적 조차 없었기에 국가는 이들을 독일로 파견하기 전 태백 장성광업소와 삼척 도계광업소 등에서 안전사고 예방 교육 및 현장 실습 훈련을 시켰다.
전길태랑(81)씨는 1970년 독일로 떠나기 전 태백의 광업소에서 한 달 반 정도 훈련을 받았다. 독일에서 16년간 일했다는 전 씨는 아직도 훈련을 받던 날이 생생하기만 하다. 전길태랑씨는 “광부 모집에 합격하니까 나를 태백으로 데려가더라”며 “광산 지하에 들어가서 현장 답사하면서 탄 캐는 것을 배우고, 독일어 선생님에게 독일어를 배운 기억이 난다”고 했다.
1977년 독일로 떠난 김춘동(81)씨와 복창수(82)씨는 삼척 도계광업소에서 훈련을 받았다. 김춘동씨는 “우리는 한 팀에 40명 정도 있었는데 광산 경험 있는 사람이 딱 1명뿐이었다”며 “신문에서 광부 모집한다는 것만 보고 가서 당시 석탄이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으니 거기서 탄광 일을 배우면서 광부가 된 것”이라고 했다. 복창수씨 역시 도계광업소 막장에서 탄 캐는 것을 처음 배웠다. 복씨는 “광산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거기서 먹고 자고 실습하면서 탄 캐는 걸 배웠다”며 “먹고 살려고 지원하다보니 거기 있던 사람 대부분이 광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민석기(73)씨는 태백 함태광업소에서 3년간 일하다 독일로 파견됐다. 태백 황지읍 소도리에 위치한 함태광업소에서 3년 동안 근무했다는 그는 당시 드문 광산 경험자였다. 민씨는 “1977년 떠나 10년 넘게 독일에서 일했는데 아직도 태백 함태광업소에서 일했던 때가 생각난다”며 “태백은 참 눈도 많이 오고 추운 동네였는데, 거기서는 특이한 게 출근할 때마다 꼭 우유를 한 컵씩 줬다. 우유랑 계란 2개 타 먹고 일을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내가 광부로 태어난 곳이 태백이니 태백은 내 마음의 고향”이라며 “그곳에 묻히고 그곳에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파독광부도 마음의 고향서 기억되고 싶다
파독 광부들은 자신들이 태동한 곳, 마음의 고향인 강원도에서 기억되고 싶다. 김춘동씨는 “파독 광부들 중 태백과 삼척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거기서 광부 교육을 처음 받았으니 애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에 살고 있는 파독 광부뿐 아니라 독일에 살고 있는 파독 광부들도 고향 땅에 묻히고 고향 땅에서 기억되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관련 작업도 진행 중이다.
현재 태백시는 순직산업전사위령탑 성역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태백시 황지동에 위치한 순직산업전사위령탑 일대에 문화체험관, 위패안치소, 석탄산업 기념관 등이 들어선 기념문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해당 사업이 완성되면 기존 위령탑 대비 7.6배 확장된 규모에 광부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순직산업전사위령탑은 순직한 광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으로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건립됐다.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협회는 최근 해당 사업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협회는 지난해 9월에 이어 올해 3월 태백시를 방문, 폐광지역 순직유가족협회를 만나 “우리가 독일로 떠나기 전 교육을 받고 태동한 곳이 태백”이라며 “우리도 석탄의 본고장인 이곳에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성역화사업 추진 관련 단체들은 긍정적인 입장이다. 박창규 폐광지역 순직산업유가족협회장은 “파독 광부들까지 해서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주역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면 의미가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황상덕 석탄산업전사추모 및 성역화추진위원회 위원장도 예산만 확보된다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 위원장은 “행정적으로나 구체적으로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같이 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했다.
태백시 역시 확답을 하진 않았지만 파독 광부들을 외면하진 않았다. 태백시 관계자는 “파독 광부들이 성역화 사업에 함께하는 것에 대해 관련 단체들과 협의가 이뤄진다면, 시에서도 이에 대해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파독광부에 대한 관심·지원 부재
현재 파독광부는 한국에 살고 있는 회원만 800여명에 전세계까지 하면 1만여 명이 있다. 이들이 순직산업전사위령탑 성역화 사업에 함께하게 되면 앞으로 태백시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 시너지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재 확보된 태백시의 성역화 사업 예산으로는 파독광부 기념비 건립 비용까지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이에 협회는 올해 초 상위기관인 고용노동부와 재외동포청에 순직산업전사위령탑 성역화 사업에 관한 자료를 전달한 것에 이어 지난 5월 14일 고용노동부 측과 만나 태백시 성역화 사업에 동참, 이곳에 파독 광부들을 위한 기념관·기념탑을 건립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재정 여건상 지원이 어려우니 태백시와 상의 후 협회 측에서 알아서 하라’는 말뿐이었다.
2021년 6월부터 시행된 ‘파독광부간호사법’ 제4조와 5조에 따르면 국가는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를 위한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에 대한 비용을 보조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이렇듯 요원하기만 하다. 이외에도 현재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협회는 직원 2명의 월급과 건물 보수관리비를 제외한 운영비·식비·사업비 등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파독 광부들은 분통하기만 하다. 민석기씨는 “우리가 더 죽어야 보상해주려나 싶다”며 “1960~70년대 당시 우리나라가 참 못살지 않았나. 우리가 피땀 흘려 벌어온 외화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고 한강의 기적까지 이뤘는데 국가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춘동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협회장은 “지난해 10월 4일 파독광부 60주년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말씀을 했다. ‘여러분의 노고와 헌신을 국가에서 예우하고 기억하겠습니다. 국가가 여러분들을 보살필 때가 왔습니다’”라며 “파독 광부들은 이때 한 대통령의 말을 믿고 있다. 우리 파독 광부들의 염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과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현정 hj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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