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아름답던 날이여, 안녕” 물수리에게 잡힌 복어의 마지막 세상구경
”복어 독에 면역 체계 갖췄을 것” 관측도
첨벙 전신을 담그는 과감한 사냥법
흰머리수리 등 다른 대형 맹금류 압도
평생을 물속에서 살면서 아가미를 펄럭였던 물고기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은 어떨까요? 구름위로 빛나는 햇살과 마주하면서, 물결이 일렁이는 수면을 내려다보며 경이로운 감정에 사로잡힐지 모르겠습니다. ‘오오오…물 밖에는 이런 신세계가 펼쳐있구나! 내가 살던 물속은 얼마나 폐쇄적인 곳이었나. 이 놀라운 세상을 지금에야 보게 되다니!’ 인어공주의 에이리얼과 동질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몸이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복어가 얼핏 보면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이 복어에게 물 밖 세상 풍경은 처음 접하는 신세계일 것입니다. 인간이 태양계 밖 행성으로 초장거리 우주여행을 떠나고, 한발 더 나아가 타임슬립 시간여행을 하는 것에 비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환상의 경험을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우선 조류 생태 사진가 마크 스미스(Mark Smith)가 미국에서 촬영한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이 복어는 동족들은 꿈도 못 꾸던 고공 비행을 하는 대신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목숨을 내놨습니다. 사실 이 복어의 공중 비행은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진행됐습니다. 날카롭게 갈고리진 물수리의 발끝에 채여 수면위로 솟구쳤습니다. 사냥당하고 말았어요. 결말이 뻔히 보이는 복어의 서글픈, 처음이자 마지막 공중 비행 겸 세상 구경입니다. 종착지인 물수리의 둥지에 도달하고 나면, 물수리 사냥감이 된 여느 물고기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최후를 맞게 될테죠. 아래 동영상(Port Lincoln Osprey)처럼 말입니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귀여운 몸집, 회로 먹어도 먹고 끓여먹어도 좋은 싱싱한 먹거리, 맹독을 품은 치명적 위험... 복어 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이죠. 복어는 한편으로는 무서운 사냥꾼입니다. 아래턱과 위턱에 각각 한 쌍의 이빨 판이 있고, 다시 자잘한 이빨이 나 있어요. 이런 구조 덕에 물고기 입에선 가장 뛰어난 분쇄기능을 갖고 있죠. 단단한 껍데기로 무장한 가재나 조개 등을 청소기처럼 흡입한 뒤 순식간에 부숴버립니다. 맹독인 테트로도톡신을 품고 있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황천길로 갈 수 있기에 덩치 큰 포식자들도 기겁해 피해가곤 하죠. 몸을 빵빵하게 부풀려서 몸집을 커보이는 것 역시 사냥당할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는 생존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각종 생존수단으로 무장한 살상병기인들 그보다 더 강한 포식자를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덧없어지고 맙니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예요. 창졸간에 물밖으로 끄집어내진 복어가 위협을 느끼고 몸을 최대한 부풀리고, 독성 점액을 몸 밖으로 분비하며 최후의 저항을 해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물수리는 괘념치 않은 채 농구공처럼 부풀어오른 몸뚱이를 움켜쥐고 훨훨 날아갑니다. 대세는 끝났어요. 얼마 안남은 어생(魚生)을 마무리하기전에 세상구경이나 많이 해두라고 위로를 건네는 수 밖에요. 물수리가 복어 독에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짧은 마지막 세상 구경을 마치고 물수리 둥지에 당도한 복어의 마지막을 담은 아래와 같은 동영상을 보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면역 체계를 갖춰가고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봅니다.
물수리의 사냥 장면에선 본능적 킬러들이 우글대는 수리매류 중에서도 독보적 사냥솜씨를 가진 놈의 카리스마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수면을 향해 내려앉으면서 발톱을 쭉 뻗어 큼지막한 물고기를 낚아채는 사냥법은 수리매류의 사냥 패턴 중 하나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로 먹잇감을 구하는 종류로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 종류의 수리인데요. 우선 사는 곳은 완전히 다르지만, 짙은 갈색의 몸에 머리·가슴팍은 눈처럼 흰색인 아프리카물고기수리와 북아메리카의 흰머리수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보다 몸집이 훨씬 왜소한 물수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냥의 정교함과 파워, 치명적 살상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단연 물수리가 으뜸 중 으뜸입니다. 아프리카물고기수리나 흰머리수리는 물고기를 잡을 때 두 발을 뻗어 수면위에 올라와있는 물고기를 잡아챕니다. 대개 두 발톱에 충분히 걸릴 정도로, 너무 크지 않은 적당한 사이즈의 물고기가 잡히죠. 멋있지만 과감하진 않아요. 잡힌 물고기가 푸드덕거리면서 저항을 해보지만, 발톱으로 움켜쥐어 제압할 수 있습니다. 성질머리급한 흰머리수리는 둥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비행 중 물고기를 두 동강 내서 통째로 삼킬 정도죠. 하지만 물수리의 사냥은 급이 다릅니다. 이 새가 물에 빠져죽는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몸의 전부를 물속으로 풍덩 입수시키다시피합니다. 몇번의 날갯짓 끝에 힘겹게 수면위로 솟구칠 때 자기 몸으로 가누기 어려울 것 같은 초대형 월척이 낚여있습니다.
잡힌 물고기의 저항은 필사적입니다. 사냥꾼 물수리 입장에서는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만, 잡힌 물고기 입장에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거든요. 이 강력한 저항이 먹혀들면서 드물게 물고기가 물수리 발톱을 벗어나 목숨을 건지는 일도 일어나지만, 대개는 물수리의 승리로 끝납니다. 제 몸으로 버거운 몸뚱이의 물고기를 채가면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거든요. 기가 막힌 위치 선정입니다. 물고리를 채가는 물수리의 자세는 한결같습니다. 두 발을 최대한 앞뒤로 벌려서 컴퍼스를 최대한 넓혀요. 먹잇감을 최대한 균형있게 움켜쥐는 거죠. 그리고 자신의 눈과 물고기의 눈이 나란히 앞을 앞을 보도록 위치를 조정합니다. 이렇게 방향을 잡으면 먹잇감의 중심이 앞으로 탄탄하게 쏠리게 됩니다.
물수리와 물고기의 몸 방향이 반대였다면 몸통을 꾸불텅댈 때 뒤로 힘이 확 쏠리면서 물수리가 비행 중 비틀거릴 수도 있거든요. 놈들은 물수리의 종으로 분화된 뒤 이렇게 잡은 커다란 물고기를 과학적으로 운반하는 노하우를 대를 이어 본능으로 전수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운반방법은 먹잇감에게 의도하지 않은 자비를 베풀어줍니다. 물고기 입장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세상 구경을 황망하게 하면서 자기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지 전방을 주시할 수 있거든요. 어차피 운명의 방향은 정해져있지만,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상황에서 어생(魚生)의 마지막을 맞는게 그나마 위안이 되지 싶어요.
그렇게 물수리 둥지로 운반된 월척들은 푸드덕대면서 최후의 몸부림을 칠테지만, 이는 놈들의 입맛만 돋궈줄 뿐입니다. 물수리의 식사법을 보면 놈들도 ‘생선은 대가리맛, 어두일미’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아요. 몸부림치는 물고기 몸뚱이를 발로 고정시킨뒤 뻐끔거리는 눈과 입, 펄럭이는 아가미부터 야금야금 뜯어먹습니다. 이런 식사 패턴이다보니 이미 물고기 몸뚱이의 상반신은 조각조각 뜯겨나가 사라졌는데도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꼬물거리며 생의 의지를 피력하는 가슴 아픈 장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식사가 진행될수록 물고기의 몸뚱아리는 보름달이 초승달이 되듯이 점점 줄어들테고, 움직임도 서서히 잦아들면서 결국은 완전히 멈출테죠.
몸을 부풀리며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발톱을 벗어나지 못한 복어도 이와 비슷한 신세가 됐을 공산이 큽니다. 빵빵했던 몸은 농구공이 바람빠지듯 푸스슥하면서 찌그러져들어갔을테죠. 몸속에 품었던 맹독은 포식자 물수리에게 최후의 복수를 했을까요? 아니면 복어회에 곁들이는 와사비같은 감칠맛의 요소로 소비됐을까요? 분명한 것은 이렇게 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물수리와 복어를 비롯한 물고기들은 느리지만 분명한 속도로 진화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잡히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물고기, 그리고 그 몸부림을 제압하고 끝내 잡아채려는 사냥꾼 새의 상호 진화 경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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