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96] 벌교 낙지초물회
낙지가 가장 좋아하는 달은 6월이다. 6월 전후해 지역별로 시기를 정해 자율적으로 낙지잡이를 멈춘다. 산란을 앞둔 어미 낙지를 보호해 자원을 증식하기 위한 결정이다. 이 시기에는 연승, 통발, 맨손 등 모든 낙지잡이가 금지된다. 또 유통업체도 불법으로 잡은 낙지를 유통할 수 없다. 식당에서는 낙지를 판매할 수 있지만 금어기 이전에 포획 채취한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수입이라면 원산지를 정확하게 표기해야 한다. 우리 바다에 나는 낙지를 먹고 싶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갯벌이 발달해 펄낙지를 많이 잡는 전라남도는 6월 21일부터 7월 20일까지 낙지를 잡을 수 없는 시기이다.
금어기 직전에 벌교 갯벌에서 잡은 낙지로 만든 ‘낙지 초물회’를 만났다. 벌교라면 꼬막을 떠올리겠지만 여자만(汝自灣)에 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뻘배어업으로 낙지, 가리맛조개, 짱뚱어도 잡는다. 가을에는 그물을 이용해 전어도 잡는다. 벌교에는 이러한 제철 해산물을 이용한 계절 한정식을 차려내는 식당들이 있다. 벌교 갯벌은 순천만 갯벌과 함께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에 등재된 갯벌이다. 벌교처럼 가까운 곳에 밥상에 올릴 수 있는 다양한 해산물을 내주는 건강한 갯벌을 갖춘 지역도 흔치 않다. 여자만은 여수, 순천, 보성, 고흥과 접한 내만으로 펄갯벌이 발달했다. 펄갯벌은 고운 진흙으로 이루어진 갯벌로 낙지의 발이 가늘고 길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낙지 초물회는 여자만에서 잡은 산낙지를 사용한다. 독특한 것은 산낙지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보통은 낙지를 살짝 데쳐 얼음을 띄운 물회를 만든다. 그런데 물도 얼음도 넣지 않는다. 그래서 무안이나 신안에서 먹었던 낙지물회와 다르다. 낙지탕탕이처럼 살아 있는 낙지를 다진 후 양념과 식초를 더했다. 물회처럼 먹을 수 있고 낙지탕탕이처럼 안주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따뜻한 밥 위에 올려 비벼 먹으면 식사로도 훌륭하다. 금어기가 끝난 후 벌교 여행을 할 기회가 있다면 낙지 초물회를 먹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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