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日 최초 13점차 뒤집었지만…'5시간 20분' 헛심공방, KIA-롯데 시즌 최장 경신→역대 최다 득점 무승부 [MD부산]
[마이데일리 = 부산 박승환 기자]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가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KBO 역대 세 번째 15-15 무승부 경기로 이는 최다 득점 무승부로 연결됐다.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KIA는 다잡았던 경기를 놓쳤던 터라 충격이 배가 됐을 경기. 반대로 롯데는 비록 역전에 성공한 뒤 1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으나, 확연히 기울었던 경기를 무승부로 만들어냈다.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는 2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팀 간 시즌 9차전 맞대결을 가졌다. 이날 양 팀은 무려 5시간 20분의 혈투를 펼쳤으나, 끝내기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15-15 무승부를 기록했다.
▲ 선발 라인업
KIA : 서건창(2루수)-소크라테스 브리토(좌익수)-김도영(3루수)-최형우(지명타자)-나성범(우익수)-이우성(1루수)-최원준(중견수)-한준수(포수)-박찬호(유격수), 선발 투수 제임스 네일.
롯데 : 황성빈(중견수)-윤동희(우익수)-고승민(2루수)-빅터 레이예스(좌익수)-나승엽(1루수)-이정훈(지명타자)-정훈(3루수)-박승욱(유격수)-손성빈(포수), 선발 투수 나균안.
▲ 국가대표 출신 나균안의 몰락
KBO리그를 대표하는 포지션 전향의 성공사례. 2020시즌부터 본격 투수로 전향한 나균안은 2021시즌 처음 1군 마운드에 섰다. 당시 나균안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23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6.41의 성적을 남겼고, 이듬해 39경기에 나서 3승 8패 2홀드 평균자책점 3.98을 기록하며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5경기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34를 기록하며 생애 첫 월간 MVP 타이틀을 손에 넣었고, 이 기세를 바탕으로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나균안은 조별리그 3차전이었던 태국전에 나서 4이닝 동안 4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는 등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큰 힘을 보탰고 병역 혜택의 기쁨을 맛봤다. 그리고 정규시즌에서도 6승 8패 평균자책점 3.80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국가대표에 승선하고 병역혜택까지 받으면서 승승장구의 길을 걸을 것만 같았던 나균안. 하지만 올 시즌 흐름은 최악이다. 시즌 초반에는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역할을 해줘야 할 때는 제몫을 해주는 모습이었는데, 지난 5월 5경기에서 3패 평균자책점 13.50으로 '바닥'을 찍은 뒤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날 투구는 커리어 최악이었다. 나균안은 1회 경기 시작부터 선두타자 서건창에게 볼넷을 내주며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소크라테스 브리토에게 던진 2구째 139km 커터가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몰리자, 이는 우월 투런홈런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나균안은 안정을 찾지 못했고, 김도영-최형우-나성범으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을 상대로 세 타자 연속 피안타를 허용하면서 실점은 4점까지 늘어났다. 이후 나균안은 최원준을 1루수 파울플라이, 한준수를 삼진 처리하면서 한숨을 돌리는 듯했지만, 아니었다.
나균안은 이어지는 2사 1, 3루 위기에서 박찬호에게 적시타를 맞으면서 5실점째를 기록, 서건창에게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를 자초한 후에야 소크라테스를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웠다. 나균안이 KIA 타선을 상대로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내는 데까지 소요한 시간은 무려 26분이었다. 하지만 이닝이 지나도 나균안의 컨디션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균안은 2회에도 선두타자 김도영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또다시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최형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나성범까지 투수 땅볼로 묶어내며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쌓았다. 그런데 이우성을 상대로 볼넷을 내주더니, 후속타자 최원준에게도 볼넷을 헌납하면서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리고 이때 폭투로 한 점을 내주더니, 한준수에게는 우측 담장을 직격하는 2타점 2루타를 맞았고, 나균안의 실점은 8점까지 치솟았다. 이어 나균안은 후속타자 박찬호에게 볼넷을 내준 후에야 마운드를 내려갈 수 있었다.
그래도 나균안의 추가 실점은 없었다. 나균안에 이어 마운드를 넘겨받은 현도훈이 서건창을 삼진 처리하며 이닝을 매듭지은 까닭. 따라서 나균안은 1⅔이닝 동안 투구수 83구, 7피안타(1피홈런) 6볼넷 2탈삼진 8실점(8자책)으로 등판을 마무리했고, 평균자책점은 8.08에서 9.05까지 대폭 상승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큰 힘을 보탰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던 등판이었다. 이에 1루 관중석을 가득 메운 롯데 팬들은 나균안이 강판될 때 이례적으로 '야유'를 쏟아냈다.
▲ 전세계 '최초'로 탄생한 13점차 뒤집기 승리, 주인공은 롯데였다
이날 경기 초반 분위기는 마치 지난 2022년 7월 2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KIA-롯데의 맞대결을 연상시키는 듯했다. 당시 KIA는 2회부터 2점을 뽑아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하더니, 3회 3점, 4회 6점을 보태며 무려 11-0까지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5회 타선이 대폭발하면서 10점을 쓸어담으며 승기를 잡은 것은 물론 쐐기까지 박았고, 8회초 공격에서 두 점을 더 보태면서 23-0으로 완승을 거뒀다. 이는 KBO 역대 한 경기 최다 점수차로 연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가 마치 당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경기의 흐름이었다.
KIA는 1회부터 롯데 선발 나균안을 쉴 틈 없이 두들기며 5점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1회말 롯데가 황성빈-윤동희의 연속 안타 등으로 마련된 찬스에서 빅터 레이예스의 적시타로 한 점을 추격하자, 2회초 공격에서 나균안이 마운드를 내려가기 전까지 3점을 더 보태며 1-8까지 달아났다. 그리고 KIA는 3회초 소트라테스의 2루타 등으로 마련된 1사 3루에서 롯데의 바뀐 투수 헌도훈을 상대로 나성범이 적시타를 터뜨리며 한 점을 더 달아나더니, 4회초 공격에서 다시 KIA의 타선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KIA는 4회초 최원준을 시작으로 한준수-박찬호-서건창-소크라테스가 롯데 현도훈을 상대로 무려 5타자 연속 안타를 폭발시켜 4점을 더 보탰다. 그리고 이어지는 1사 2루에서 최형우의 땅볼 타구 때 롯데 1루수 나승엽의 포구 실책의 도움을 받으면서 1-14까지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2022년 7월 24일 사직 롯데전과 마찬가지로 이대로 경기의 흐름이 끝까지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착오였다. 롯데가 4회말 공격부터 갑작스럽게 힘을 내기 시작했다.
롯데는 4회말 선두타자 나승엽이 KIA 3루수 김도영의 실책으로 출루하더니, 이정훈이 '에이스' 제임스 네일을 상대로 2루타를 터뜨리며 2, 3루 기회를 손에 쥐었다. 여기서 롯데는 정훈의 2루수 땅볼로 한 점을 만회하더니, 박승욱이 추격의 적시타를 터뜨렸다. 그리고 황성빈의 2루타와 윤동희의 볼넷으로 마련된 2사 만루에서 고승민이 네일의 3구째 144km 투심 패스트볼을 힘껏 잡아당겼고, 우월 그랜드슬램을 폭발시켰다. 고승민의 개인 통산 두 번째 만루홈런. 이로 인해 간격은 순식간에 7-14로 좁혀졌다.
이미 기울어진 경기를 뒤집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롯데의 추격은 계속됐다. 롯데는 5회말 선두타자 이정훈이 안타로 출루하더니, 후속타자 정훈이 좌익수 방면에 2루타를 폭발시키며 2, 3루 기회를 잡았다. 이어 박승욱의 땅볼과 황성빈의 적시타를 바탕으로 롯데는 9-14까지 KIA를 뒤쫓았다. 그리고 경기는 이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롯데가 6회말 공격에서 나승엽과 이정훈의 연속 안타로 마련된 득점권 찬스에서 정훈이 KIA의 바뀐 투수 김도현을 상대로 스리런포를 작렬시킨 것. 이로써 간격은 2점차까지 줄어들었다.
롯데의 맹렬한 추격으로 인해 경기 중반부터 떠오르는 경기는 지난 2013년 5월 13일 문학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의 맞대결이었다. 당시 두산은 1회 시작부터 SK 마운드를 폭격하며 9점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3회 두 점을 보태면서 무려 10점차의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5회부터 SK가 조금씩 고삐를 당기기 시작하더니 9회말 김성현이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며 13-12로 10점차의 열세를 뒤집고 역전승을 손에 넣은 바 있다. 이는 KBO 한 경기 최다 점수차 역전이었다.
그리고 롯데가 이를 해냈다. 롯데는 7회말 선두타자 대타 최항이 안타를 터뜨리며 물꼬를 튼 후 황성빈이 KIA 김도현과 무려 9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중견수 방면에 연속 안타를 쳐냈다. 이어 윤동희의 희생번트로 마련된 1사 2, 3루 찬스에서 KIA는 어떻게는 리드를 지키기 위해 곽도규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그런데 이때 고승민이 곽도규의 초구 140km 투심 패스트볼을 공략해 중견수 앞에 절묘하게 떨어지는 안타를 생산했고, 이때 두 명의 주자가 모두 홈을 파고들며 14-14로 균형을 맞췄다. 여기서 KIA는 자멸했고, 롯데는 분위기를 탔다.
김동혁의 투수 앞 땅볼 타구 때 KIA 야수진들의 연쇄 실책이 발생, 나승엽의 볼넷으로 롯데가 만루 찬스를 쥐었다. 이때 KIA가 다시 한번 김사윤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으나, 이정훈이 자신의 아웃카운트와 한 점을 맞바꾸는 천금같은 희생플라이를 터뜨리며 주도권이 롯데 쪽으로 넘어갔다. 이는 한미일을 통틀어 역대 최다 점수차 역전. 메이저리그는 2001년 8월 6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서 시애틀이 12점차를 뒤집고 승리, 일본은 2017년 7월 26일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10점차를 뒤집은 바 있다. 롯데는 무려 13점차를 엎으면서 세계 '최초'의 기록을 작성했다.
KIA도 뒤늦게서야 힘을 냈다. KIA는 8회초 이창진의 안타와 희생번트로 마련된 2사 2루에서 홍종표가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후 KIA는 1, 3루 찬스를 이어갔는데, 김도영이 친 타구를 윤동희가 다이빙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펼치면서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양 팀은 정규이닝 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연장 승부에 돌입했다. 그리고 롯데가 10회말 1사 만루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서 경기는 지난 3월 31일 사직 NC-롯데전의 5시간 7분을 뛰어넘으며 올 시즌 최장 경기를 경신했고, 결국 KIA와 롯데는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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