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약 조직 소탕하려면 초국가적 협력 강화해야
한국 사회가 냉전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발맞춰 세계화의 흐름을 받아들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다양한 국가와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고 대외적 위상이 높아지는 성과를 거뒀지만, 강대국 중심의 무역 질서 재편과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과제를 떠안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막대한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는 마약, 보이스피싱, 사이버 도박, 그리고 인터넷 사기 등 국제 조직범죄 피해로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마약은 특정한 직업군에 속하는 일부만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청정국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검찰청 집계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이 2022년 1만8395명에서 2023년 2만7611명으로 증가해 1년 만에 50% 급증했다. 특히, 전체 마약류 사범 중 청소년을 포함한 30대 이하 젊은 층의 비율은 60%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가 마약에 직접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은 3153명으로 전체 마약류 사범 가운데 11%를 차지하는데, 이는 2013년의 393명에서 10년 만에 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동안 우리 수사기관은 마약 유통과 판매를 비롯한 여러 국제 조직범죄를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세계화와 함께 국내에 진출해 있던 일본 야쿠자와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 범죄 조직을 통해 마약과 총기를 비롯한 위해 물품들이 들어오면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 개정을 통해 국제 조직범죄 대응 업무의 근거가 마련됐고, 1994년 국가정보원에 국제범죄정보센터가 설립된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일례로 인구 60만명의 중남미 소국 수리남에서 2000년대 중반에 마약 범죄자 ‘조봉행’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사건을 들 수 있다. 그는 한국 출신의 여행객에게 콜롬비아로부터 조달한 코카인을 유럽으로 운반하도록 사주했다. 이에 2007년에 그를 체포하려는 특별 임무가 착수되었고, 수십 년간 축적된 내외 정보망과 해외기관의 공조 체계가 활용됐다. 또한 미국 마약단속청(DEA)과 브라질 연방경찰의 국제 공조로 끈질기게 ‘조봉행’을 추적했고, 마침내 마약 거래를 미끼로 2009년 7월에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으로 유인해 검거했다. 이 사건은 2022년에 넷플릭스에서 방영돼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수리남’의 소재가 되었다.
또 다른 사건에서, 나이지리아인 마약 조직 총책 프랭크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인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했다. 그가 2002년 한국에서 도피해 독일에서 검거되고 덴마크에서 탈옥한 이후에도 추적이 계속됐다. 프랭크는 2007년 2월 중국 선양에서 중국 공안과의 공조로 검거됐다. 2023년 4월에 발생한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유통 사건의 공급 총책인 ‘리○○’은 1년 후인 지난 4월에 캄보디아에서 체포됐다. 국정원이 핵심 정보를 제공하고 경찰·검찰과 협력하면서, 캄보디아 경찰이 헌신적으로 추적한 국제 공조가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국제 범죄 조직은 저비용·고수익의 신종 마약을 개발하고, 단속을 피해 상상을 초월하는 밀수 기법을 사용한다. 또한 IT(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국적을 초월하여 범죄 조직 간 연계를 꾀하는 등 범행 수법은 더욱 첨단화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텔레그램과 다크웹을 이용한 밀거래를 철저히 추적하는 사이버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암호화폐와 핀테크를 이용한 결제 과정을 신속히 파악하는 수사 기법도 확보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외국의 수사기관들과 초국가적인 업무협조를 공고히 다지고, 동남아를 비롯해 마약 거래가 시작되는 원점을 타격하는 정보 수집 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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