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승련]기생충에 꿰맨 양말까지… 北 궁핍 만방에 알린 오물풍선

김승련 논설위원 2024. 6. 2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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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물풍선 공세에 골머리를 앓던 우리 당국이 선택한 대응법은 저강도 심리전에 가깝다.

통일부와 군 당국은 그제 오전 오물풍선이 또 날아올 정황을 파악한 뒤 풍선 속 오물의 실체를 일부 공개했다.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제 밤 5번째로 풍선 350여 개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1개월 동안 날아든 2000개 안팎의 풍선에는 공작을 주도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예상치 못한 북한의 속살이 여럿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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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물풍선 공세에 골머리를 앓던 우리 당국이 선택한 대응법은 저강도 심리전에 가깝다. 통일부와 군 당국은 그제 오전 오물풍선이 또 날아올 정황을 파악한 뒤 풍선 속 오물의 실체를 일부 공개했다. 인분이 든 퇴비, 칼로 난도질한 청바지, 다 쓴 건전지, 체제 선전물 조각 등이었다.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제 밤 5번째로 풍선 350여 개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1개월 동안 날아든 2000개 안팎의 풍선에는 공작을 주도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예상치 못한 북한의 속살이 여럿 담겨 있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오물에선 사람의 DNA도 나왔다. 인체에 있던 회충 편충 등 기생충이 토양에 섞인 것으로 당국은 추정했다. 퇴비에 인분을 썼거나, 화장실 부족으로 일어난 일일 것이다. 7년 전 판문점에서 북 병사가 귀순했을 때도 기생충이 뉴스가 됐었다. 총상을 수술한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가 수십 cm 길이의 기생충 수십 마리를 제거한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영양 상태가 좋았을 최전방 병사에게서 벌어진 일이다. 풍선에는 찢어진 걸 몇 겹이고 기운 장갑, 구멍 난 곳을 여러 번 덧댄 양말, 옷감을 겹쳐 조악하게 만든 마스크도 있었다.

▷북 당국이 정보 노출을 막으려고 신경 쓴 흔적이 없지는 않았다. 병뚜껑에선 안쪽이 뜯겨 있었고, 플라스틱 병에선 라벨을 일일이 떼어낸 듯했다. 하지만 물자 부족을 드러낼 물건들을 전수 조사로 걸러내지는 못했다. 특히 오물의 DNA 분석까지 할 것으로는 북측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풍선 속에서 훼손된 김정은 찬양물이 나왔다는 점이다.

▷풍선에는 “김일성 대원수님의 교시”와 같은 선전물이 있었다. 쓰레기와 함께 담겼다는 것도 경을 칠 일이지만, “위대한 령도자(…)”에서 잘려 나간 것도 있었다. 북한에선 신성모독과 다를 바 없는 일로, 형법상 사형까지 가능하다. 2016년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체제 선전물을 훼손한 혐의로 장기간 억류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떠올려 보라. 엄격한 처벌을 모를 리 없는 북쪽의 누군가가 ‘령도자’ 관련 인쇄물을 훼손했고, 그걸 남쪽으로 내려보내는 과정도 꼼꼼하게 걸러지지 않았다.

▷상상도 못 할 오물풍선 공작은 탈북자 단체가 북으로 날려보낸 대북전단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 북한 매체들은 탈북자들을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해 왔으니 북한 나름대로는 형식 논리를 갖췄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물풍선은 우리 불안감은 고조시켰지만, 북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헤집고 돌아다닐 때처럼 남남갈등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헛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지금의 긴장이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는 점에서 긴장해야 한다. 북은 남북이 더 이상 단일 민족이 아니라고 선언했고, 러시아와 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격상시켰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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