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반부패 청렴 기관 권익위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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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와 관련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이튿날인 11일부터 청탁금지법 질의응답 게시판에는 500여 개의 조롱성 질문과 항의성 글이 올라왔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는 결론에 대해선 "선생님인데 배우자는 명품 백을 받아도 되나", 외국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설명과 관련해선 "외국인 친구를 통해 선물을 전달하면 되냐"고 묻는 조롱성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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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와 관련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이튿날인 11일부터 청탁금지법 질의응답 게시판에는 500여 개의 조롱성 질문과 항의성 글이 올라왔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는 결론에 대해선 “선생님인데 배우자는 명품 백을 받아도 되나”, 외국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설명과 관련해선 “외국인 친구를 통해 선물을 전달하면 되냐”고 묻는 조롱성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꼬박꼬박 답변을 달아야 하는 권익위 직원은 울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명품 백-출산지원금 등 상식 밖 행보
권익위는 잘못된 행정이나 제도로 인한 국민 고충을 처리하고 부패를 방지하는 정부 안 ‘내부 고발’ 조직이다. 당연히 공무원 입장에선 껄끄럽고 불편하다. 그렇다 보니 인력도, 예산도 넉넉한 적이 없었지만 2016년부터 시행된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주무 부처로 접대 문화를 바꾸는 등 그 역할을 다해 왔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 구석구석 뿌리 내린 나쁜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상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법을 만든 권익위가 명품 백 수수 건 처리 과정을 통해 합법적인 청탁 통로를 온 나라에 공표했다. 이런 자기부정이 없다.
반부패 청렴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헷갈리는 듯한 권익위의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권익위는 출산지원금 1억 원을 주면 아이 낳을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응답자 63%가 긍정적이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저출산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 작업이라고 설명했지만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의 1월 취임사를 보면 그 배경이 짐작된다. 유 위원장은 “노동·교육·연금의 3대 구조 개혁, 저출생 문제 등 국정 현안 등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져 달라”며 윤석열 정부 3년 차 성과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이고, 명품 백 수수 건으로 열린 전원위원회의 표결에 직접 참석했다.
최근에는 권익위가 전국 대학교 기숙사에 1인실을 확대하도록 권고할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민간 대학에 ‘감 놔라, 배 놔라’ 주문하는 것이라 행정기관을 상대하는 권익위 업무와는 거리가 있다. 대학생의 사생활 보호 차원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해야 맞을 것이다.
2000원 생일 케이크도 금지했는데
명품 백 수수에 면죄부를 주는 논란의 결정이 있기 전 청탁금지법 질의응답 게시판을 훑어봤다. 드문드문 올라온 게시글 중에 고등학생의 질문이 있었다. ‘저희 반 친구들이 담임쌤 생일 때 2000원씩 모아서 생일 케이크를 사드리려고 한다. 김영란법에 걸릴 것 같아 케이크를 선생님과 학생들이 나눠 먹을 계획이다’라고 쓴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선생님이 이로 인해 많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까요.’
선생님을 걱정하는 기특한 질문에 권익위의 답변은 야박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므로 원칙적으로 청탁금지법상 허용되기 어렵다.’ 아마도 선생님의 생일 파티는 열리지 않았지 싶다. 당시 상심했을 학생들이 명품 백 수수 건에 대한 권익위의 답변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체 우린 이들에게 뭘 가르치고 있는 건가.
권익위는 이번 명품 백 수수 건을 종결 처리로 손을 털 일이 아니다. 현재 배우자는 금품을 받을 수 없지만 이에 따른 처벌 조항이 없어 김 여사는 면죄부를 받았다. 이제라도 청탁금지법의 빈틈을 메우는 개정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2000원 생일 케이크조차 선생님께 누가 될까 봐 걱정하는 학생들이 지금 권익위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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