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월마트식 유통혁신 한국은 안 되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평가받아
쿠팡 PB밀어주기 제재와 대조적
과도한 유통규제 혁신 가로막아
미국 유통 공룡 월마트와 타깃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최근 수년째 오픈마켓 중개 비즈니스와 자체 브랜드(PB) 사업을 활발하게 키운다는 점이다.
치열한 경쟁 관계인 두 회사는 PB상품을 앞세워 소비자를 공략한다. 1983년부터 PB사업을 시작한 월마트는 해당 상품만 2만9000개에 달하고 브랜드는 20개 카테고리에 315개를 보유하고 있다. 타깃도 PB브랜드가 50여개다. 월마트는 5달러 미만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주로 팔고 타깃은 홈 인테리어 상품군에 집중하는 게 차이점이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PB상품 대결의 새 시대’라는 제목의 기사(5월 2일)에서 다양한 가격대 상품 라인을 구축하는 이런 트렌드가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고 평가했다. PB를 통해 마케팅 비용을 낮춘 기업이 상품 가격을 낮추면 소비자도 이득이다.
선진 유통기업은 이렇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다양한 상품을 늘려 소비자 편익을 늘린다. 한국은 그런 환경이 못 되는 것 같아 아쉽다. 월마트식의 ‘다양한 유통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에서 ‘이중적 지위’이자 차별로 간주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쿠팡의 PB상품 밀어주기에 대해 제재를 내리면서 유통사의 ‘이중적 지위’를 문제 삼았다. 가성비 높은 PB상품을 검색 상단에 먼저 추천해 노출하는 것은 상품도 많고 판매자도 많은 경쟁 사업자인 오픈마켓 판매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자기 상품과 입점업체의 중개 상품 판매에 있어 이해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중적 지위에 관한 글로벌 제재 사례로 유럽연합 경쟁 당국이 직매입과 오픈마켓 비즈니스 모델을 병행하는 아마존에 문제 삼은 건을 예로 든다. 소비자가 아마존에서 검색으로 상품을 골라 구매하려고 들어가면 아마존이 직매입한 상품 1개를 검색 다음 단계인 ‘바이 박스’에 우선 노출했다는 건이다.
하지만 이는 위법 판정이 없는 자진 시정으로 해결됐다. 아직 미국을 포함한 해외 경쟁당국에서 유통업체의 이중적 지위에 따른 납품업체 차별 문제로 위법을 확정한 사례는 없다. PB상품 비중이 절반가량이라는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도 그런 전례가 없다고 한다.
오픈마켓 판매자가 만약 단 하나의 유통채널만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자사상품에 밀려 이중적 지위가 문제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정이다.
디지털경제포럼의 이커머스 생태계 보고서(2022년)에 따르면 전체 판매자 48만여명은 네이버·쿠팡·지마켓·11번가 등 평균 4.9개의 쇼핑 플랫폼에 복수 입점해 있다. 판매망을 늘려야 매출이 늘어서다. 10곳이 넘는 쇼핑채널에 입점한 판매자도 많다.
이들이 다양한 광고 상품을 이용해 자기 제품을 상위에 노출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A채널에서 내 상품에 맞는 소비층이 없으면 B쇼핑몰에 집중한다.
반면 PB상품은 자기 유통채널에서만 판매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PB상품은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고 시장 가격 경쟁을 촉진해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 또 이들 PB상품은 대부분 중소 제조사가 만든다.
공정위의 쿠팡 제재 타당성은 추후 행정소송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다만 글로벌 1위 월마트나 아마존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중적 지위에 따른 규제가 한국기업 쿠팡에 대해서만 이뤄지고 있다는 게 우려된다. 시장에 대한 규제는 기업의 경영위축은 물론 외국인 투자 감소, 산업 발전 저해, 소비자 권익 침해, 물가 불안 자극 등의 다양한 부작용을 부른다. 이번 쿠팡 사례가 한국 유통산업 경쟁력과 혁신을 갉아먹는 사고방식을 바꿀 기회가 되기 바란다.
나기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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