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의 ‘훈장’…6·25 참전 간호장교 이야기 [보훈기획]②
[앵커]
6.25 전쟁 당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보살핀 천3백여 명의 여성 간호장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지키는데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면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세대로서 후세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이유민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6·25 전쟁 발발 3년째였던 1952년.
고 박옥선 씨는 고등학생의 나이로 전장에 뛰어들어 장병들을 간호했습니다.
[고 박옥선/6·25 전쟁 참전 간호장교/2017년 : "당당했어요. 저는 군인이라는 게. 여군 그때 한참 손가락질 하고 이럴 때 아닙니까. 당연히 하는 거다. 여자도 하는 거다…."]
포화가 멈추고 나서도 군인 정신으로 참전 유공자들을 돌봤습니다.
[김영곤/고 박옥선 씨 친구 : "자기가 돈 가진 건 전부 (6·25 참전 유공자) 회원들을 위해서 그렇게 써요. 쌀이 부족하다든가, 돈이 좀 생활비가 좀 부족하겠다 싶으면 가요. 찾아가요."]
같은 시기, 전쟁터에 몸을 던졌던 또 한 명의 소녀.
이제 구순이 넘은 신현재 씨는 열여덟에 전쟁을 겪으며 국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신현재/6·25 전쟁 참전 간호장교 : "여자니까 가서 도울 수 있는 게 간호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간호 후보생 뽑는다니까는 거기 간 거지."]
학교에서 공부하던 소녀는 간호장교가 돼 수술실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신현재/6·25 전쟁 참전 간호장교 : "(환자들이) 다 드러누워 있으니까. 댕기면서 마취 다 해야 된다고. 총상 맞았기 때문에 개복 수술을 해야 되는 거고."]
수술방에서 맞이한 휴전 소식, 분단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신현재/6·25 전쟁 참전 간호장교 : "(분단 상황이) 지금도 끝난 거 아니잖아요. 남북이 가로막힌 게 답답하죠."]
동족상잔의 참상을 목격한 간호장교들은 평화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신현재/6·25 전쟁 참전 간호장교 : "아이들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니까는, 그거를 엄마 아버지가 겪은 거 알아줬으면… 6·25를 기억을 꼭 했으면 좋겠다고…."]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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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 기자 (to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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