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차량 결함으로 의심되는 급발진 교통사고의 문제점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급발진 교통사고의 원인은 이론상 운전자 과실이거나, 차량 결함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운전자 과실인 경우와 차량 결함인 경우, 운전자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 불명확한 경우 총 세 가지로 나뉩니다. 그중 운전자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 불명확한 경우, 그 위험부담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가 입증책임의 문제인데, 지금은 소비자인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는 급발진 교통사고로 입증책임의 문제가 다시 불거졌는데요. 지난 2022년 12월 6일 강릉시에서 60대 A 씨가 손자를 태우고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차량 결함으로 의심되는 급발진 사고로 결국 손자는 사망하고 운전자도 크게 다치는 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차량 결함으로 의심되는 급발진 교통사고에 대한 입증책임은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에 전환하자는 취지를 담은 도현이법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인 도현이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품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하면, 제조사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제조사에 무과실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제조물이므로, 차량 제조사에 과실이 없어도 책임을 물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결함 여부는 소비자가 밝혀야 하는데, 이러한 급발진 의심사고는 법원에서 차량 결함이 밝혀진 것이 아니라고 보아 현재까지 차량 제조사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도현이법은 제조물 책임법 중 차량 결함이 의심되는 급발진 사고의 경우,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에 전환하자는 취지로 발의된 것입니다. 하지만 도현이법은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습니다.
이에 유족 측은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개정) 국민 동의 청원에 나섰으며, 6월 25일 현재 청원 동의 수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청원 규정상 청원서 공개 이후 30일 이내에 동의 수 5만 명을 넘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합니다. 따라서 22대 국회에서도 도현이법은 발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생각하면 이번만큼은 결정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민사소송 원칙에 위배된다’, ‘입법례가 없다’,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라며 입증책임을 전환하면, 마치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민사소송은 기본적으로 주장자가 자신의 주장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만, 제조물의 경우에는 달리 봐야 합니다. 자동차의 경우, 사람의 생명,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고, 사고로 인해 증거 확보도 어렵기 때문에 민사소송 일반 원칙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입법례가 없다는 말은 변명입니다. 입법례가 있으면 당연히 도입해야 할 것이고 없으니까 이렇게 논의하는 것입니다. 또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3조는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유럽연합(EU)에서도 제품 결함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과도하게 어려운 경우, 결함과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입증책임을 제조사에 지우는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또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입장은 소비자와 제조사 중 제조사 입장만 고려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입증책임을 전환한다고 해도 큰일이 나지 않습니다. 급발진에서 입증책임은 운전자의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 불명한 경우, 그 위험부담을 최종적으로 누가 가지느냐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제조사에 입증책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조사는 입증하여 책임을 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운전자가 착각해서 급발진이라 주장하거나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교통사고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제품 불량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교통사고가 없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그런데 실제 재판에서는 차량 결함을 인정해 확정한 급발진 사고가 한 건도 없습니다.이와 같이 이론상으로는 반드시 존재해야 마땅한데도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는 제조사 책임인 급발진 건은 결함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 규정인 제조물 책임법의 문제인 것입니다. 즉, 제조물 책임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입법의 문제뿐만 아니라 법원의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최근 강릉 급발진 교통사고의 민사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제조사 측에서는 국과수의 사고 당시 EDR 분석과 마찬가지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아 급가속해 발생한 운전자의 과실로 발생한 교통사고라는 입장을 지속해서 밝힙니다. 운전자 측에서는 이 부분을 반박하기 위해 당시 사고상황을 재연하는 국내 첫 시험 감정으로 국과수 분석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제조사 측에서는 재연 감정이 사고 상황과 같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이에 대해 운전자 측에서는 당시 차량 자동변속장치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고, 모닝 차량 추돌로 인해 구동력에 영향을 줄 만한 손상이 없어 동일한 조건이라는 등 주장, 반반, 재반박, 재재반박이 이어지는 날 선 공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입증책임을 두고 문제는 운전자의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 불명확한 경우입니다. 과연 강릉 급발진 교통사고가 운전자의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 불명확한 사례에 해당하는지 의문입니다. 법원에서 이 정도 사안이라면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로 보고 제조사에 차량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대법원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2심 항소심에서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인정된 2018년 5월 호남고속도로 급발진 교통사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19나54506판결)와 비교해 보더라도 본질적인 차이는 없고 오히려 강릉 급발진 사고가 차량 결함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급발진 사고는 입증책임의 전환이라는 입법적인 문제로 해결이 기대됩니다. 단 급발진을 직접 판단하는 법원에서 차량 결함으로 의심되는 급발진 교통사고를 일률적으로 운전자의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 불명인 경우로 보는 잘못된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법원의 급발진 사고에 대한 전향적인 판결도 기대해 보며 대법원판결 요지를 인용하며 끝을 맺습니다.
“사실의 인정과 그 전제로 행하여지는 증거의 취사선택 및 평가는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사실심법원의 전권에 속하는 것(대법원 2015도14312 판결, 대법원 2016다227694 판결)이며,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민사소송법 제202조).”
글 /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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